수희(대안문화연대 군축반전평화행동)
얼마 전에 사진 한 장을 봤다. 하늘에서 별똥별 같은 것이 떨어지는 사진이었다. ‘와 예쁘다~’ 하며 들여다 봤더니,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과 그 반격과 관련된 기사였다. 우주쇼처럼 밤하늘을 사선으로 가르는 무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는 이곳에서는 하늘에서 빛나는 무기의 소음도, 폭격 후 사람들의 비명도,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을 가르는 저 무기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를 죽이고 있는 것일까. 누가 죽고 있는 것일까.
무기박람회 전에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은 부산에서 지역시민단체의 연대를 요청하는 간담회도 하고, 강연회도 개최하였다. 무기박람회저항행동이 10년이나 지속되어온 운동인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무기가 어디에 팔리고, 얼마를 버는지가 아니라 한국이 만든 무기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를 밝히고 무기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박람회를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무기박람회 다크투어는 대안문화연대 회원들과 젠코(ZENKO) 동지들과 함께 참가했다. 벡스코의 넓은 마당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는 군인들이었다. 4-5명씩 줄을 서서 걸어다니며 경비(?)하고 있었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제복을 입은 사람은 무섭다. 멋지지 않고 무서운 것은 그들이 제복을 입고 손에 무엇을 잡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뭔가 쫄았다. 이번 무기박람회에는 이스라엘 해군도, 이스라엘 무기 회사도 온다는데 나는 프리 팔레스타인 티를 화사하게 입고 있어서 조금 후회하고 움츠러 들었다. 표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무기박람회 저항행동 끝나고 나니까, 역시 아무도 나한테 주목하지 않는데 혼자 쫄았네 쫄았어… 했지만.
커다란 벡스코 건물에 들어갔는데, 개인정보도 입력해야했고, 소지품 검사와 신체 검사도 해야했다. 이전에 다른 전람회에 왔을 때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개인정보는 왜 입력해야하고, 소지품 검사와 신체 검사도 왜 해야하는 건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미 쫄았으므로 그 시스템에 따라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굉장한 규모의 전시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놀란 것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들 이렇게 무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인가? 큰 전광판에서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스펙터클한 영상들로 자신이 만들고 있는 군함과 드론의 종류, 비행기의 종류가 전시되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커다란 전광판에, 초계기 사고로 사망한 공군에 대한 조의의 문구가 크게 뜨고 있었다. 멋진 무기와 사람의 죽음은 다르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아무 관계도 없는 것처럼. 무기박람회에서 스펙터클한 영상과 웅장한 소리는 실제로 오키나와와 군산의 그 참을 수 없었던 소음 문제와는 전혀 달랐고, 게임처럼 멋있는 헬리콥터나 비행기는 실제로 오키나와 대학 캠퍼스에 떨어지기도 하는 사고를 내거나 이번 초계기와 같은 비극이 벌어지게 한다.
다크투어는 엄청난 것이었는데, 이 무기 장사꾼들이 모이는 장날(?) 장 전체를 누비며 무기들이 어떤 전쟁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부스마다 다니며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물처럼 전시장을 누비며 스펙터클 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었다. 시간, 공간의 렌즈가 바뀌면 이 전쟁 무기들이 실제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다크투어는 그 시/공간을 바꾸어주는 장치 같은 것이었다. 가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스펙터클을 즐기는 공간과 죽음의 전쟁과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내는 소음의 시공간 사이를 나는 끼어 있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개는 사실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버스이다.
부마항쟁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인상적이었던 사진은 시내에 탱크가 막 돌아다니는 사진이었다. 그런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다 민간인에 감정이입을 한다. 국가가 보낸 무기는 민간인들을 향했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도 그 탱크에 탄 군인에 감정이입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부산의 87년 6월 항쟁 사진에도 뿌연 최루탄 속에서 죽어간 학생들이나 그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에 감정을 이입하지, 최루탄을 어떻게 쏘더라~ 하면서 군경에 감정이입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무기박람회는 그런 구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실물 전시관이었다. 탱크에 직접 타보고, 전차에 직접 타보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저 총구가 누구를 향하는지, 탱크가 어디를 향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도록 이 장소에는 어떤 시공간을 떠올리는 배경이 없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해를 체험해 본다. 내가 탄 탱크의 총구 저쪽에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이가, 친구가 있을 것이라는 서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적’을 향해 있는 이 전시물들에 올라 사람들은 가해에 가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해에 가담하는 것을 받아들인 나의 몸과 기억을 곧 잊어버릴 것이다. ‘당연한 것’이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이 없어지고, 성폭력이 일어나고 하는 것을 받아들여온 역사가 전쟁으로 점철된 세계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니 다크투어가 만들어낸 멀티버스의 감각은 너무 필요하다. 스펙터클을 즐기며 누군가를 겨눈 전차에 타는 것이 사실은 나를 겨누고 있는 것임을 감각하는 그런 멀티버스를 눈치채는 감각 말이다.
사실은 국가가 주체인 이 무기 산업에 국가(군인)들이 돌아다니고 국가(군인)들이 구매를 한다. 반인도적인 무기 판매가 계속되는 것도 국가는 그건 기업이 파는 건데? 하고 책임을 감추고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이슈에서 그거 민간업자가 했는데?!라는 말 너무 많이 들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 준비, 그리고 그 무기 하청을 목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지정학의 시대, ‘어쩔 수 없다/ 전쟁이니까 할 수 없다’를 넘어서는 방법은 결!단!밖에 없는 것 같다. 가해에 가담하지 않겠다! 전쟁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길로 가겠다!는 결단. 국가에게도, 기업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이 싸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