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프랑스 온실가스 보고서에 빠진 군사 배출량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각국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를 제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데이터들은 우리가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고서들에는 중요한 공백이 있다. 바로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프랑스의 2023년 온실가스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이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온실가스 배출량 현황: 표면적인 성과
먼저 프랑스의 전반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현황을 살펴보자. 프랑스 대기오염연구기술협회(Citepa)가 작성한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2021년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415 Mt CO2e로 1990년 539 Mt CO2e에 비해 상당히 감소했다. 이는 약 23%의 감소율로, 표면적으로는 상당한 성과처럼 보인다.
배출량을 부문별로 나누어 보면 에너지 부문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가장 큰 배출원이고, 그 다음으로 농업(16%), 산업 공정(10%), 폐기물(4.4%) 순이다. 특히 에너지 부문에서 도로 교통이 전체 배출량의 28.2%를 차지하는 단일 최대 배출원으로 나타났다.
이런 수치들을 보면 프랑스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꽤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 보고서가 프랑스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을 완전히 반영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배출원: 군사 부문
답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는 바로 군사 부문의 배출량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 배출량 전문 연구기관인 ‘The Military Emissions Gap’의 평가에 따르면, 프랑스의 군사 배출량 보고는 “보고서 격차 심각(Significant gap in reporting)”, 그리고 “데이터 접근성 나쁨(Poor)”으로 평가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프랑스의 실제 군사 탄소 발자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보고된 데이터보다 5배 이상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 오류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현재 프랑스의 보고서에서는 군사 연료 사용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가이드라인의 카테고리 1.A.5(기타, 다른 곳에 명시되지 않은 곳)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군사 부문의 실제 탄소 발자국은 연료 사용을 훨씬 넘어선다. 군사 장비 생산, 군사 기지 건설과 운영, 군사 훈련, 무기 제조 등 방대한 군사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 모두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기밀이라는 이름의 불투명성
더 큰 문제는 투명성 부족이다. 군사 부문은 크게 고정식(기지, 건물 등의 에너지 사용)과 이동식(전투기, 함정, 탱크 등의 연료 사용)으로 나뉘는데, 프랑스는 군사 이동식 배출량(1.A.5b)을 “기밀 문제”를 이유로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군사 배출량을 고정식 카테고리(1A5a)에 합쳐서 보고했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 군사 이동식 배출량은 실제 군사 활동의 규모와 성격을 보여 주는 핵심 지표다. 전투기 출격 횟수, 함정 운항 거리, 군사 훈련 규모 등이 모두 이동식 배출량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를 고정식과 구분하지 않으면 군사 부문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어떤 활동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는지 알 수 없다.
2021년 프랑스의 1.A.5 총 배출량 2,144 kt CO2e가 모두 1A5a(고정식)로만 분류된 것은, 상당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배출량이 완전히 숨겨졌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가이드라인은 각 배출원을 가장 세분화된 수준으로 보고하도록 권장하지만, 동시에 군사 정보 보호를 위해 모호한 기준을 두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규정이 군사 배출량의 투명성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내 보고서에 숨겨진 단서들
프랑스 내부에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국회 국방위원회는 2021년 5월 “국방부의 생태 전환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국회 내부의 정보 제공 및 검토를 위한 문서로, 국제 협약에 직접 제출하는 공식 보고서는 아니다. 이 국회 보고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제출하는 공식 보고서와는 달리 군사 부문의 환경 영향과 과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군사 배출량 연구에서 프랑스의 국내 군사 배출량 정보를 찾을 수 없을 때 이 국회 보고서를 참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되어 있는 보고서에는 군사 배출량 데이터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공식적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보고서에서는 기밀을 이유로 불분명하고 부족하게 집계되어 버린 군사 부문 정보가, 국내 국회 보고서에는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변화를 위한 과제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가이드라인이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군사 부문에 대한 예외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성과 완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밀 유지와 기후 투명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프랑스처럼 국내적으로는 군사 부문의 기후 영향을 인식하고 대응하되, 국제적으로도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프랑스 국회 국방위원회의 보고서처럼 국내적인 논의와 국제적인 보고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를 볼 때 군사 부문의 배출량이 어떻게 보고되고 있는지, 혹은 보고되지 않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완전한 그림을 위하여
프랑스의 사례는 현재 기후변화 대응 체계의 중요한 한계를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상당한 배출량 감축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배출원이 누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 실제 군사 탄소 발자국이 보고된 것보다 5배 이상 높을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계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 규모는 더욱 클 것이다.
정확한 현황 파악 없이는 효과적인 대응책을 세울 수 없다. 기후변화 대응은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데, 중요한 배출원이 누락되어 있다면 전체 전략 자체가 잘못될 수 있다.
진정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모든 배출원이 투명하게 보고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군사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기밀 유지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이것이 기후 투명성을 완전히 가로막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군사 부문의 배출량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후정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