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녹색당원)

 

비상! 비상! 나도 바로 그것이 되어버렸다. ‘선배 활동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신입 활동가를 모셔왔다. 이곳이 첫 직장이라는 그에게 최선을 다해 환대를 하고 싶은데 어쩐지 조금 삐걱댄다. 지나칠까 어색하고, 모자랄까 걱정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잘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잘해드리고 싶어서 바짝 긴장을 하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막내였다. 태어나보니 막내 딸이었고, 고등학교 때 자원활동을 하던 사회적기업에서도, 성인이 되어 시민사회 영역에서 의제 활동과 지역 활동을 할 때도 언제나 가장 어렸다. 20대 초반의 페미니스트는 어린 여자처럼 굴고 싶지도, 어린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다 나이가 들통났을 때면 어김없이 ‘대단하다’ ‘나는 그 나이 때 술이나 퍼마셨는데’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아, 네. 그러세요. 그런데 나이는 저를 이루는 전부가 아니걸랑요?

그런데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나이를 말할 수 있게 됐다. 왜냐, 드디어 3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견하다’는 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올 수 있겠으나, 나에게 서른이 된다는 것은 곧 해방이었다.

언니들이 그랬다. “여자는 30대가 시작이야!” 많은 것에 초연해졌고 이러한 상태에서 다가올 새로운 순간들이 기대가 되곤 했다. 그런데 아차,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내가 이제 누군가에게는 ‘선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에 걸맞는 태도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내가 봐온 대다수의 선배들과는 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1~3년차 활동가들과 네트워킹을 할 기회를 얻었다.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전국의 저연차 활동가들과 종종 만나 근황을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나와 비슷한 세대의 활동가들 사이에 관통하는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운동권’이라고 정체화하지 않는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 나올 때면 어쩐지 울컥하고 ‘바위처럼’을 듣게 될 때면 ‘아~싸 아싸아싸 예!’를 기다리며 몸을 들썩이지만…) 학생운동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동년배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선택할 때 활동에 자발적으로 휘말린 우리들은 교집합이 별로 없다. 단결하기도 좀 어려운 듯 하다. 자신의 영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여념이 없다.

저연차 활동가들이 20년차 선배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열렸다. 그곳은 점차 성토대회로 바뀌어갔다. 일이 너무 많다는 투정은 별로 없다. 활동가들은 일이 많다. 일이 끊이질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유로 힘들어하는 활동가는 드물다. 적은 월급을,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하며 기꺼이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호소하는 것은 무엇인가? 높은 확률로 조직문화 때문이다. 혹은, 바로 그 조직문화가 불필요하게 높은 강도의 노동을 만든다.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의 중요성을 아직도 모르는 ‘운동권’ 리더십, 그리고 그들을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이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간 탓에 텅 비어있는 ‘허리 연차’, 그리고 혼자서 쩔쩔매며 어떻게든 일을 해내는 저연차 활동가.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기가 막힌 상황에서 생존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너무 많다. 1년차 활동가에게 모금 기획을 맡긴다는 곳의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나 분통이 터지던지! 모금이란 자고로 단체의 방향성을 긴 호흡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기부자에게 약속하는 과정이다. 신입 활동가에게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에게 지금 당장 날아서 먹이를 가져오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신입 활동가에게 필요한 것은 몸 담은 단체가 무엇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지 층층이 쌓아놓은 합의와 기록들을 잘 소화하는 시간이다. 그 이후에 어떤 것을 해보고 싶은지 질문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실패도 해보면서 노하우를 익혀갈 권리가 있다. 그런데 돈보다 사람이라고 하는 곳들도 종종 이 당연한 과정을 생략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떨어져 나가지. 처음부터 날 줄 아는 새는 없는데 말이다.

위기청소년의 주거를 지원하는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의 주제가 각자의 조직 내에서 서로의 소진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동료를 꼽았다. 옆에 앉아있는 동료와 서로 힘든 것을 털어놓다 보면 금세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렇다. 힘든 상담을 하고 나온 동료에게 ‘고생했다’ 한 마디를 건네는 것, 내가 눈에 총기를 잃어가고 있을 때면 ‘괜찮냐’는 말을 듣는 것이 출근할 힘을 내게 한다.

활동가 돌봄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꼭 필요하다. 활동을 하다 지칠 때는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세요? 활동을 하다 아프고 싶지 않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에 대화가 곧잘 이어지는 건 놀랍게도 선배 활동가들보다 저연차 활동가들이다. 일상을 지키는 방법을 서로 나누다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한다. 우리 꼭 이 일 오래 해요. 새로운 사람들을 이곳에 초대할 때 떳떳해질 수 있도록 해요. 이 일은 분명히 좋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요.

동료 사이에서 서로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건 간단하다. 궁금해 하기. 당신이 지금 어떤지, 괜찮은지, 우리 지금 잘 가고 있는지 수시로 궁금해 하고 늦지 않게 물어보았으면 한다. 서로를 궁금해 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활동은 얼어붙는다. 얼어붙은 활동이 세상을 좋게 할 리 없다.

내일 출근을 하면 동료들 한 명 한 명에게 지금 괜찮은지 궁금하다고 말해보아야지. 새로 모셔온 분께도, 실은 내가 당신을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려 한다. 돌봄의 시작은 궁금해 하는 마음. 활동도 사실은 세상이 궁금해서 시작한 것이니까.

 

(표지 이미지 설명: 한국여성민우회 ‘돌봄 크로스 워크숍’ 현장에 띄워져 있던 문구)

 

jewel

저에게 전쟁없는세상은 실패를 인정할 줄 알고, 경험을 전수할 줄 아는 ‘선배’ 활동가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전쟁과 퀴어, 전쟁과 기후위기, 비인간동물 등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데 어디서부터 말할 수 있을지 고민될 때 속시원히 긁어주는 곳이기도 하죠. 이런 곳 대한민국에 몇 없다?

— 소라 (2025 전쟁없는세상 후원의 밤 “평화의 항해” 홍보위원)

공부를 멈추지 않는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곳,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주세요!

전쟁없는세상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