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우리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과 군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했다. 이들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했고, 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삶이 얼마만큼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마음 아팠고, 그런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무력행위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많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지금의 군사적 긴장상황을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온 국민들이 충격과 분노에 빠져있는 동안, 남북의 당국자들은 서로 보복과 응징을 천명하며 한반도를 전쟁의 긴장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으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이 시점에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물리적 대결 의지를 밝혔고, 북한 역시 위협을 반복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연평도에 K-9 자주포 6문과 함께 MLRS(다연장 로켓 시스템) 6문을 실전배치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와 함께 언론은 MLRS의 로켓탄 1발에는 수류탄 1개 위력을 갖는 소폭탄 500여개가 들어 있어 축구장 세 배 면적을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막강화력’을 자랑스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MLRS에 사용되는 이 폭탄이 바로 집속탄이라는 언급은 없다. ‘죽음의 비’라고 불리우는 집속탄이 어떤 무기인지 정말 모르는가. 마치 대인지뢰처럼 전쟁 이후에도 수많은 불발탄들을 남겨 민간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위험을 초래한다.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며 그 중 1/3은 어린이들이라고 하는 가장 대표적인 비인도적 살상무기이다.
분단상황을 이유로 집속탄 보유를 주장해온 한국과 북한이 서로를 향해 집속탄을 사용하게 된다면, 한반도는 그 불발탄이 수십년 후까지 남아 우리 후손들의 삶의 영역에서 끊임없는 비극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간들뿐 아니라 자연과 그 속에 기거하는 다른 생명들의 삶 역시 파괴될 것이다. 2006년 이스라엘이 침공한 레바논에는 400만 개가 넘는 소폭탄이 사용되었고 그 중 약 100만 개가 불발탄으로 남아있으며, 수십년 전에 투하된 집속탄의 불발탄 때문에 라오스에서는 지금까지도 희생자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집속탄 생산,수출,비축국인 것도 모자라 사용국의 오명까지 얻으려고 하는가! 더이상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
매 전쟁때마다 사용된 집속탄의 끔찍한 피해가 알려지면서 집속탄의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로 올해 8월부터 집속탄금지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이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얼마전 1차 당사국 회의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 협약은 현재까지 46개국이 비준을 마쳤고 108개국이 서명을 했으며 참가국은 계속 늘고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집속탄을 생산해 분쟁지역에 수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한국이 이런 전세계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집속탄을 사용하게 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CMC(집속탄반대연합)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집속탄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하며 한국의 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더 강한 무기를 사용하면 소중한 목숨들을 다시는 잃지 않도록 지켜낼 수 있는 것인가. 북한의 GDP에 해당하는 돈을 국방비로 쓰면서도 우리의 군인과 민간인을 지킬 수 없었던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봐야 한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없이 군사력에만 의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전쟁위협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군사적 긴장감과 전쟁위기로 인해 더 늘어난 국방예산은 집속탄을 생산하는 한화와 풍산, K9 자주포를 만드는 삼성 등 무기를 만드는 기업들의 이득챙기기에만 도움이 될뿐 우리의 안전과 평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강한 무기들은 오히려 주변국의 평화를 위협하고 더 강한 무기를 준비하게끔 하여 군비경쟁의 악순환에 빠뜨릴 뿐이다.
한국정부는 당장 집속탄 사용 시도를 중단하고, 집속탄을 연평도에서 즉각 철수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집속탄 사용국의 국민이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집속탄의 생산과 수출, 수입과 비축 역시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군사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전쟁위기와 군비경쟁을 심화시키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 우리의 삶이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도 소중하고 잃고 싶지 않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죽음에 아파하고 분노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이 우리가 사용한 무기로 인해 죽어갈 사람들의 마음과도 연결되기를 바란다.
2010년 11월 30일
무기제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