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을 예외없이 처벌해왔습니다. 병역거부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전까지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았고, 반복처벌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 구타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001년 이후 재징집되지 않을 최소형량인 1년 6월을 선고받게 되었지만, 병역거부자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감옥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은 개인청원((Individual Communication)으로 유엔의 문을 두드렸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한국정부가 자유권규약을 위반하고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보상을 포함한 유효한 구제조치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2006년 2명(Communications No. 1321/2004, 1322/2004), 2010년 11명(Communications No. 1953~1603/2007)에 이어 2011년 4월에는 100명(Communications No. 1642~1741/2007)이 같은 결정을 받았고, 이는 국제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입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는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했지만, 동시에 국회에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을 보호하는 조처를 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2004. 8. 26. 2002헌가1) 그리고 유엔은 병역거부권 인정 입장(1993년 일반논평 22호, 1998년 77호 결의안)을 명확히 하고있고, 한국정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권고(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2006년 대한민국 3차 정부보고서에 대한 검토 및 최종견해, 유엔인권이사회 2008년 보편적 정례검토(UPR) 권고, 개인청원 결정 등)도 반복해서 내리고 있습니다. 헌법 6조에서 국제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자유권 규약에 가입하고 유엔의 회원국이 된 한국은 이에 따라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입법자인 국회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2004년 임종인, 노회찬 의원이 각각 발의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폐기되었고, 그 이후 거듭되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대안 마련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2010년 4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로부터 권리구제를 권고받은 병역거부자 11명(오태양, 나동혁, 유호근, 염창근, 임치윤, 임태훈, 임성환, 최진, 임재성, 정의민, 고동주)이 입법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회를 상대로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지 않아 병역거부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대체복무제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복무제도 없이 군복무만을 강요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감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19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평등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1조에서 인정하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에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입법하지 않은 것은 위헌임을 헌법재판소가 확인해줄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병역법 88조 1항과 향토예비군설치법 15조 8항에 대한 위헌여부 심판을 앞두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보다 적극적인 결정으로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을 멈추어 주기를 요구합니다.
올해 2011년은 한국에서 병역거부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다녀온 사람만 1만 6천여명이 넘습니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입법을 권고한지 거의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체복무제는 마련되지 않았고, 2007년 대체복무 허용 계획을 발표했던 국방부는 정권이 바뀐 뒤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습니다. 병역거부로 인해 한해 6-700명이 감옥에 가고있고, 지금도 약 9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이번 소송이 대체복무제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