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가 수감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정부가 국민적 공감대 핑계로 대체복무제도 도입 약속을 뒤집은 이후 젊은이들의 감옥행은 계속되어, 현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약 750여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책임을 회피한 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오늘 2010년 11월 9일 이태준씨는 입대하는 대신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사회당 당원인 이태준씨는 대학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 하면서 전쟁과 파병을 보며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군사주의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보며 최종적으로 병역거부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의무는 총과 칼로서 예비적 폭력과 적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가난하고 배제당한 이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달려가 그들과 함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평화적 수단만으로 쟁취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비록 지금은 사회복무형태로 인정받지 못하고 감옥을 가게되는 선택이 되겠지만, 역사는 그의 선택이 인간과 평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병역거부 소견서] 평화와 공존을 위해, 군대가 아닌 다른 길을 걷겠습니다

지금껏 지녀온 양심과 행위를 모두 폐기하라.

침묵과 복종. 그것이 제가 군대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파병을 국익으로 포장해서 미화할 것을 요구하는 조직,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은 뒷전인 채 전쟁불사를 외치는 조직, 저는 그 조직에서 평화의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또한 불온도서를 지정하고 특정 신문조차 읽지 못하게 하는 검열 속에서 국방일보를 맹신하고 군대선전물을 낭독하며 국가주의를 습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차별을 철폐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대학캠퍼스에서, 바람개비인연맺기학교에서, 대학생사람연대에서, 사회당에서,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 속에서, 지금껏 해온 모든 행동들이 반사회적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곳에는 침묵과 복종만 있을 뿐, 이성적 사유와 평화․공존의 노력은 정지됩니다.

폭력과 정상남성이데올로기를 찬양하라.

또한 민중을 향해 겨누게 되는 총검술을 습득하거나, 기본권을 요구하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방패와 곤봉으로 찍어 누르는 기술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군대의 거대한 관료조직 안에서 내가 하는 모든 업무와 역할은 결국 국가폭력을 위한 합목적성을 갖습니다. 성적 대상화와 마초적 문화에 적응하며 장단도 맞춰야 할 것입니다. 기간은 왜 또 그렇게 긴지, 사회와는 어째서 완전히 격리가 되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어도 그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모든 의문과 주장은 지워야만 하니까요. 이런 군대에 적응을 못해 혹 내 옆의 동료가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해도 저는 그를 능력없는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하고 신속히 기억에서 지워야 합니다. 한마디로 복종하는 법, 침묵하는 법, 눈치 보는 법을 군대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소통하는 법, 질문을 던지는 법, 저항하는 법은 아마 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저는 한 명의 정상남성, 전역증이라는 인증서를 가진 인간으로 생산될 것입니다.

거부합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 남성이 걷는 주류적 길이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이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위해 필요한 길이라면, 나는 흔쾌히 그 길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 경험은 나의 존재와 의식 자체를 뒤바꿀 것을 폭력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기억과 경험이 사회 속에서 ‘정상남성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주류타이틀을 획득함으로서 2중, 3중으로 발생하게 될 폭력과 차별을 견딜 수 없습니다.

공존을 위해

병영국가 대한민국, 경찰국가 대한민국이란 딱지에서 결코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차별과 배제에 신음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여성에게 대한민국의 권력과 주류를 자임하는 사회적 문화는 폭력과 소통의 단절, 침묵의 강요로 그들의 권리를 빼앗고 위험인물로 낙인찍는 법에 더 익숙합니다. 그런 폭력과 침묵의 강요가 파생된 지점이 어디인지 추적해보았을 때 군대가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또한 침략전쟁에 동조한 대한민국 군대가 평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묵인한 채 그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탄 파병에 이어 얼마 전에도 대한민국 군대는 아랍에미리트에 공병대 목적으로 파병을 강행했습니다. 저는 평화를 목적으로 수행된 파병은 여지껏 없다고 봅니다. 모든 파병은 지금껏 탐욕으로 파생된 전쟁을 지원하는, 혹은 잠재적 적대와 전쟁가능성을 부추기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진정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대와 평화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당장 파병을 중단하고 국제원조나 식량지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만 쟁취될 수 있다고 믿는, 지극히 상식적인 평화주의자입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평화를, 평화군축을 추구해야 합니다.

군대가 공적 참여의무의 형식을 독점하고, 국방이 공적참여의무의 테마를 독점해온 한국사회에서 군대문화와 정상남성이데올로기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 당연함의 전제는 이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군인으로(혹은 군사주의를 수용하는 인간) 재생산되어야 한다!” 저는 이제 이 전제를 깨뜨리는 도전을 할 때라고 봅니다. 그 깨뜨림은 결국 군대가 점유하고 있는 과도한 사회적 지분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그 깨뜨림은 자본주의적 폭력 – 전쟁 -을 긍정하는 군대를 뿌리부터 바꾸는 과정입니다. 그 깨뜨림은 국방의 미명하에 자행되는 기본권 탄압에 맞서 싸우는 일입니다. 또한 그 깨뜨림은 군대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공적 참여조건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자유의지와 평화를 전제로 한 사회복무제가 대안입니다.

대체복무제를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 규정으로 인식하던 틀을 뒤바꿔봅시다. 국방 패러다임에서 공적참여 패러다임으로 ‘확대’해보자는 말입니다. 군사분야 외에 복지․생태․의료 등 많은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복무제 형태를 도입하는 것, 그래서 군복무는 그 사회복무제 중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존재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꿈일까요. 대체복무제 형태로 지금껏 거론되어온 분야들 외에도 군인이 꼭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수해복구, 대민지원 등의 분야를 적극적으로 사회복무의 일부로 수렴함으로서 군대 자체도 효율화를 기하고 해당 분야의 가치도 더 증진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사회복무제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과 평화적 신념을 지닌 이들도 부담없이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리고 신체검사로 결격을 판단 짓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의지, 사회의 필요성으로 공적 참여 방식이 결정됩니다. 상업적이지도 않고, 관료적이지도 않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복무제를 통해 기존 징병제가 갖고 있던 평화주의와의 충돌과 정상남성이데올로기라는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평화가 국민 공적 참여의무의 본체이고 불가피한 무력으로서 군대는 최소화시키고 부분으로 존재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저는 현재 한국징병제가 평화적인 방식으로 재편되는 핵심사항이라고 봅니다.

과도한 복무기간과 격리적 복무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덧불여 과도하게 긴 복무기간을 대폭 축소해야 합니다. 현재의 복무기간과 격리조치적인 복무방식은 필요 이상의 기본권 탄압과 비효율성을 야기합니다. 사회복무제를 설령 시행한다고 해도 현재 수준의 복무기간과 복무방식이라면 기본권 탄압의 성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전 세계 83개국의 징병기간은 보통 4~12개월 수준입니다. 공적 참여를 보편적 의무로 규정해놓고 실상 내용과 형식은 전혀 보편적일 수 없는 형태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의무라기보다는 강제동원의 타이틀을 붙이는 편이 더 나을 것 입니다.
군대만이 유일한 공적 참여방식이어야 한다는 군사주의적 편견을 극복하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다른 공적 참여방식의 길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의 길’을 만들어내고자 현재의 군대에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징집영장을 받은 내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평화적․이성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와 공존의 의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참혹한 전쟁으로 죽어간 무고한 생명, 빈곤과 차별이 상식처럼 벌어지고 있는 현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의무는 그 현실에 달려가 고통받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총과 칼, 적대와 전쟁을 준비하는 예비적 무력의 확산이 아니라 고통받고 죽어가는 민중에게 달려가는 겸손한 마음과 평화와 공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무기와 폭력, 그것이 전제되는 의무가 아닌, 평화와 공존이 실현될 수 있는 의무를 말입니다.

그 신념이 비록 지금 대한민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감옥에 가게 된다 해도 굽히거나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그 신념이야말로 나의 전부이니까요. 그 신념이야말로 인간과 역사 앞에 가장 절실한 가치라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