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늘은 여느때완 다르게 호송차를 타고 재판에 오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손목을 통해 느껴지는 수갑의 찬 기운이 저의 행동이 지금 실정법 하에서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현재 남부구치소에서 노역수로 복역 중입니다. 감옥에서 신참은 참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심지어 원하지 않아도 손금까지 몽땅 다 까발려지니까요. 당연히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제가 어떤 숨겨진 사연을 가지고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됩니다. ‘제주해군기지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다 벌금을 받았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 뒤로는 아주 이야기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제주에 해군기지는 짓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그것도 몰랐냐는 핀잔이 뒤따릅니다. 곧 이어 근데 왜 그걸 반대하냐, 우리 나라는 이래서 문제다, 북한이 어떤 놈들인데 등등… 지난 수년간, 정말 수도 없이 들었던 아주 익숙한 얘기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좁은 방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서 그런지 저에게 꽤 동정적인 얘기들도 들립니다. 그래 우리 나라는 복지도 별룬데 그 큰 기지를 새로 짓는 것은 좀 그렇지, 아무리 정부정책이라도 반대할 건 반대해야지, 얘같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그나마 살기 좋은 나라가 된거야, 그럼 견제세력은 있어야지…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은 저더러 힘은 쥐뿔도 없는데 소신만 강한, 자신들과는 틀리게 나랏일(?) 하다 들어온 희안한 제소자라 부릅니다. 물론 저희 엄마를 불쌍히 여기면서 오늘 재판에선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고 얼른 나가라고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삼성물산 앞에서의 시위가 적법한 테두리 내에서, 제주의 현재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효과적인 행동이라 확신했습니다. 당시 제주강정마을은 3월 초부터 계속된 구럼비 바위 발파로 초토화되어 있었지만 제주의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 다른 전국의 미디어들은 거의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저 멀리 바다건저 제주 강정마을이라는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그 정책을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며 집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의 고통, 제주 자연환경의 파괴는 모두 서울 및 본토에서도 낱낱이 알려져야 하며 그에 따라 서울 및 본토의 사람들도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시위는 저희가 애초에 의도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 서있지도 않았겠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삼성 에스원 직원 개인들의 탓으로 이 모든 것을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직원들 메뉴얼이 있었을 것이고 윗선의 명령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재판장님, 이들은 공권력이 아닙니다. 공권력도 아닌 사설용역이 시민들에게 욕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고 밀치고 위협을 하며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경찰이 허가한 장소와 시간에서 경찰의 차벽에 둘러싸여, 아무도 그 안에서 무슨 시위를 하는 건지 모르는 그런 종류의 시위를 시칭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행동의 종류와 시간, 장소를 막론하고 가능한 온전하게 향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