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전쟁없는세상
통영의 히키코모리 독거노인 겸입니다. 한겨레 기사보도 이후 그 후폭풍으로 은둔하며 지내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어제 TV에 이승환이 나와 노래를 부르길래 여옥 생각이 나 안부가 문득 궁금하였는데, 소식지 보니까 사무실에 에어컨 설치를 했다하니 한여름 무더위 속 온갖 일에 치여 살더라도 고놈이 소소한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소. 올여름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사무실에 축복의 바람도 함께 하길!
쉼없는 일정으로 구더기 똥같은 남조선 상황을 유럽에 알리고 돌아오신 분들 고생많으셨습니다. 격주 간격으로 소식지 발송해주시는 병역거부팀에도 감사드립니다. 서신으로 답하진 못했으나 소식지 볼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다 읽어왔습니다. 병역거부팀의 새 멤버 오수환님께 특별 환영인사 드립니다. 이전 소식지에서 커밍아웃한 글을 보고 조만간 ‘전쟁없는세상’이 ‘호모들의 세상’ 혹은 ‘이성애없는 세상’이 되지않을까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조크이니 웃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
그 사이 박지훈님이 수감되셨네요. 오늘 받은 소식지의 편지를 보니 급수받고 이감 준비중이라 하니 이글을 볼 때 쯤에는 다른 교도소에 있겠군요. 소식지에 실린 편지의 고급진 문장력과 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태평양과 같은 사색의 풍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몰의 풍경을 ‘하늘이 붉어지다, 붉어지다 소실점 외각에서 올라오는 쪽빛이 세상을 덮는 순간’이라 표현한 대목에서 치솟는 감동의 눈물을 감추기 힘들더군요. (이런 묘사를 두고 문학적 발견이라 일컫는 거겠죠?) 그리곤 -대지가 없는 남조선 지형의 특성상 서해가 아니면 지는 태양의 소실점은 볼 수가 없다는 사실- 무수히 해돋이를 보아왔으나 이 한반도 땅에서 일몰의 순간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녹색광선>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아름다운 일몰 장면이 등장합니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서는 순간 태양은 붉은 빛이 아니라 녹색빛을 뿜어내죠. 한국에서도 이같은 녹색일몰을 볼 수 있을까요? 어두워지고 있는 오후 7시 45분입니다. 거기는 괜찮나요? 오겡끼데스까? 저의 수준낮은 문학적 오마주를 용서하시길. 6개월 독방에 처박혀 고립돼 지내다보면 이런 유치한 개그를 구사하며 혼자 즐거워하게 됩니다. (동의하시나요들?) 아무튼 지훈씨의 서신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정시살의 문화라던지, 폭력Vs 비폭력의 경계, 진정한 평화란 무엇일까 하는 등의 고민을 수감된 이후 되려 더욱더 질문하게 되기에 공감되는 대목도 여러모로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옥살이에 적응하게 되겠지만, 이같은 질문은 우리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에게는 수감내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감옥이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규율․질서․위계’를 중요시하는 체제이기 때문이기에 24시간 감시의 대상인 재소자에게는 근본적인 억압이 발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억압이 일상화되고 내재화된 이 공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경멸이나 미움, 증오, 폭력의 감정은 도처에 널려있는 공기와 같은 상태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에 기다리고 있을 처벌로 인해 다들 경계하고 조심하고 있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발화점을 항시 느낍니다. 이같은 감정들은 재소자나 교정공무원 각 개인의 인성문제 이전에 감금체제의 근본적인 위계와 억압에 있지않나 싶어요. 그러니 감옥에 잘 적응해서 편히 지낸다는 것이 군생활이 편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요? 오히려 폭력에 대해, 인간과 문명의 본질에 대해 깊이, 아주 불편하게 관찰하고 사유해볼 수 있는 공간이 이곳 감옥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성찰과 더불어 말입니다.
소식지의 서신을 보며 지훈씨는 그러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남부구치소에서 통영구치소로 이감와서 여전히 이감대기중인 재소자들의 사동에서 어중간한 분위기 속에 지내고 있으나, 아마 저와같은 봉변없이 지훈씨는 교도소로 이감갈테니 그곳에서는 좀더 안정감있는 생활이 될거에요.
마음은 불편하더라도 몸은 좀 편한 생활이 되길 바래요. 전국의 병역거부자분들도 모두 건강히 지내고 있으시길.
2015. 6. 22. 통영에서 겸.
P.S. 이렇게 길게써도 소식지에 실을 수 있는건가? 짧게 쓰려 했으나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