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없는세상 여러분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네요. 제가 처음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해남교도소로 오게 되고, 그래도 나름대로 잘 적응해보려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다보니 어느새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네요. 제가 이곳에서 보낸 10개월 동안 밖에서는 대한민국이 뒤흔들리는 큰 사건사고 많았었습니다만 저는 이곳에서 제 몸과 마음을 다잡는 것도 힘들어하는 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제 안에 있는 나약함과 두려움을 알게 되었고, 과거 제가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면서 이곳에 오기까지 굴곡 많은 인생이었으나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 나게겠지요.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서 용석씨나 겸씨나 길수씨, 여러 수감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보게 되고, 많이 찾아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자 그때 나누었던 말들이 더 크게 와닿고 생각납니다. 점점 밖으로 나갈 날이 다가오니 오히려 마음은 초조해지네요. 나가면 무엇을 해야지 하고 계획해 둔 것들도 있으나 출소 후에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감옥 안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저의 모습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만 보이네요. 밖에서 들어오기 전 오른쪽 손가락에 새긴 “FREE”라는 글자를 보면서. 이곳에서 느끼는 밖에서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는지. 공기처럼, 물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일상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것을 여기와서라도 알게 돼서 무척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10개월 동안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에 부딪혀가며 제 안에 무척이나 많은 감정들이 그동안 감춰져 있었고 먼지에 묻혀 있던 분노, 슬픔, 외로움들을 끄집어내면서 더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게 되니 오히려 마음은 뻥 뚫려 한결 시원해진 것 같습니다.
정말 무더웠던 작년 폭염도 지나가고 겨울 바람이 시려 옷을 꽁꽁 싸맺던 시절도 지나가고 벚꽃이 활짝 만대했다가 지고 이제 또 곧 무더운 여름이 오고 단품이 새빨갛게 물드는 가을이 오면 저도 이 쇠창살과 철조망으로 뒤덮인 곳을 나가 자유로이 거닐 수 있겠지요. 매번 보내주시는 소식지와 병역거부수감자 날 때 받은 엽서를 읽으며 많은 힘을 받습니다.
이 외로운 수감 생활을 그래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처음에는 몰랐으나 지금은 정말 많은 격려와 용기가 되어주네요.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알게된 전쟁없는세상의 예비 병역거부자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경찰조사, 심리공판, 선고, 그리고 수감되기까지 정말 많은 도움 받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드립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님은 대체복무제를 꼭 도입해주셔서 젊은 청년들이 빨간 줄의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의 촛불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적을 보여줬던 것처럼 지금 내딛는 한 걸음 한 발자국이 평화에 조금이나마 다가서는 일이 되기를 바라며…
2017.5.17. 해남에서
평화수감자 남윤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