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없세 여러분. 첫번째 편지를 보낸 지도 두 달이 지났네요. 그 사이 여름이 오고, 출역을 나가게 되고, 전없세도 이사를 가고, 나라 안팎으로도 시끄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ㅁ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더울 것 같은데 다들 무더위 건강 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애시당초 일을 나가지 않고 방에서 독서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들어와있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더라고요. 출역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에 마침 저보다 일 년 일찍 들어온 여호와의증인 친구가 나가게 되어 그 뒷자리를 잇게 되었습니다. 보안청소라고, 직원 사무실을 청소하고 오후에는 의료계에서 잡다한 일을 합니다. 서산 교도소는 수용자 300명 직원은 100명 남짓한 작은 교도소여서 바쁘거나 일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현재 환자가 있어서, 환자인 친구와 먹고 자고 방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이제 세 달 째가 되었는데요. 전보다 몸무게가 5kg 정도 줄었고 기운이 생겼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탓인지, 단조로운 일상 때문인지 삶이 건조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킬 때 먹고 자고, 감정을 싣어 붓질을 하던 밖과는 정반대의 생활때문일까요. 바싹 마른 스폰지가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변하고 적응하는 스스로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거울을 처음 본 아이처럼, 문득문득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저녁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나가고 싶다…” 하고 짜증을 내뱉기도 합니다. 의욕이 없어서 퍼질러 누워 있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합니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편지가 오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단조로운 일상은 규칙적인 양치질처럼 몸을 땅땅 떄리고, 그 여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삶은, 자유로이 욕망하는 삶입니다. 욕망의 객체는 내 자신의 신체적인 욕구에서부터 사회적인 변혁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하지요. 막상 자유가 제한된 이곳에 들어오니, 그간 머리로 생각하던 이상적인 가치들보다 나의 습속들에 내 자신이 더 크게 좌우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건, 욕망의 추구보다는 욕망의 절제가 선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자유로운 삶에는. 기초적인 욕망들에 쉽사리 흔들리면서, 이상적인 가치나 원대한 뜻을얘기하는 것은 웃긴 일입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간이 적었던 저에게, 이곳에서의 시간은 참 뜻깊게 다가옵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해도, 스스로를 수용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관찰자나 기자라도 된 것 마냥 우월하게 생각했었는데요,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며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고, 저의 오만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들어와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또래인 친구들과 나가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얘기도 하고, 삼촌뻘 되는 분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걸 받기도 하며 힘든 속에서도 정이 있구나, 느낍니다. 물론 불편한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직워들 중 몇은 수용자란 이유로 예의없게 대하기도 하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꼭 있기 마련이라, 참고 맙니다. 군대의 위계서열관느 또 다른 교도관과 수감자의 관계는, 글쎄요. 난민들이 비슷한 심정일까요? 사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게 허용이 되지 않은 보류 중인 삶. 영화 터미널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리아 난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다지 덥지 않아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8월이 조금 걱정이 됩니다. 여름을 한 번 나고 나가는 데에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감생활중이신 수감자 여러분들 모쪼록 힘내시고 더운 여름 잘 보내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지도 많이 주고받고요. 더운 날에도 활동하느라 고생이신 전없세 활동가 여러분들도 힘내시길 바래요. 이사한 곳에 모기가 많다니, 농약 한 통 보내드려야겠어요.(에프킬라를 농약이라 하더라고요?) 모두들 건강에 신경 쓰셔서 아픈 곳 없이 생활하길 바랄게요.
2017년 7월 19일 수요일 서산에서, 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