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훈(병역거부자, 서울구치소 수감중)

 

제목에 언급된 ‘고동에 대한 답장’은 병역거부자 고동주가 홍정훈 오경택 두 평화수감자에게 쓴 공개 서신에 대한 답장을 의미합니다. 

 

변하는 건 날씨 밖에 없는 세계에서 2021년을 닫게 생겼습니다. 부정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으려 다짐했는데 악몽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탓에 자제할 수 없습니다.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인지 24일 저녁에는 한기가 넘쳐흐르는 복도에 서있다 낯익은 교도관으로부터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꿈이었죠. 물론. 폐지함에 담긴 신문까지 긁어모아 온갖 기사를 뒤져도 추락한 정치인의 이름만 등장할 뿐 제 소식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낙담하긴 일러서 혹은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서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꿈이 예지몽일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며칠만 더 견뎌보려 합니다. 매주 한두 번씩 후원회에서 보내준 탄원서를 꺼내 읽었습니다. 내용은 낯부끄러워 복습하지 못했고 연명해주신 분들의 성함을 하나씩 떼어 오래도록 마음 속에 머금었습니다. 그동안 견뎌온 고통의 시간을 잊게 만드는 거대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이 건네주신 위로에 보답하려면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텐데요. 제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존재 자체가 결과를 정하는 처지라 어떤 다짐도 할 수 없네요. 운이 따라준다면 올해의 마지막 날부터 시작해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섯 글자로는 백문의 일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평화수감자의 날을 기념해서 보내주신 엽서,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상영회를 통해 써주신 엽서 모두 잘 받았습니다. 보통의 편지보다 짧지만 문장 하나를 맺는데 무수한 망설임이 묻어 있는 걸 봅니다. 모든 엽서가 소중하고, 모든 위로와 격려에 묵직한 감동을 느낍니다.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주신다는 약속은 특히 감동적입니다. 저는 웬만해서는 꺼내지 않는 말이거든요. 냄비에 끓인 라면 따위가 특식인 세계에서 맛보는 지긋지긋한 식사를 하루 빨리 끝내고 싶었던 참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황제펭귄과 아델리펭귄을 담은 듯한 그림을 퍼즐처럼 조각할 때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 삶의 모든 모토가 펭귄처럼 사는 거거든요. 혹한의 겨울이 닥친 요즘은 몸집이 펭귄처럼 보일 정도로 껴입고, 한껏 움츠린 채로 뒤뚱 뒤뚱 걷는답니다. 제 느릿느릿한 행동을 닮은 거북이를 그려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맘 속으로 정한 마감일이 한참이나 지났고 엽서를 받은 후로 며칠이나 흘렀지만 감사함에 압도되어 편지에 담을 말들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가뜩이나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잃어가는 탓에 분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주간 경향에 보낸 편지에는 연말에 제가 글을 연재할 자격을 자동으로 잃게 될 것을 간절히 바란다고 썼습니다.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네요. 다음 편지는 꼭 육필이 아닌 손가락으로 쓸 수 있기만을 바라며 마칩니다. 아찔한 추위를 잘 이겨내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12월 26일 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