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혜진(녹색당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세상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사회운동이 발딛고 서 있는 토대도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급격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가치 규범이나 윤리가 성립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부여잡으면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급격하게 변하는 미디어와 기술을 따라가기만도 벅찹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전통적인 방식의 활동과 메세지 전달,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맞는 활동과 메세지 전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3회에 걸쳐 녹색당 홍보활동가 유한혜진 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합니다. 유한혜진님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생각들, 그리고 유한혜진님이 소개해주는 사례들이 아무쪼록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학생들의 기후변화 시위, 호주의 스탑아다니 캠페인으로 이어지다
지난 3월 15일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150만 명의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행진을 했다. 주요 외신들은 지금까지도 이 행진을 중요한 뉴스로 다루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기후파업(Climate Strik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소셜미디어와 각국의 청소년 조직들을 통해 퍼진 이 시위는 스웨덴의 15세 학생 그레타 툰버그가 제안해, 유럽, 아시아, 미주 등 국경을 초월한 학생들의 참여가 이루어졌고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정치인들 겨냥했다. 한국에서도 3월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의 기후파업 시위가 있었다.
세계의 학생들이 학교 대신 거리로 나온 날, 호주에서는 전국 60여 개 지역에서 15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이 외친 요구사항은 크게 3가지다.
하나, 모든 석탄화력 발전을 중단할 것
둘, 202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
셋, 대기업 아다니(Adani)의 광산개발을 막을 것!
이들은 학교파업의 외침에 대해 정치권이 응답하지 않을 경우, 다가오는 선거에서 후보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의지를 직접 점검하고 압박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청소년들의 이런 직접행동들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서 적잖은 보수 정치인들이 당장 부담을 가지고 대면해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인도계 대기업 아다니의 광산개발이다. 아다니는 최대 1만 명의 일자리 창출을 무기로 2010년부터 호주 북동부 퀸즈랜드에서 광산개발 계획을 강행했다. 60년 간 적어도 23억 톤의 석탄을 채굴하고자 하며, 광산지역과 항구를 연결하는 310킬로미터의 철도도 건설할 예정이다. 특히 정치권 로비를 지속적으로 벌여 현 호주 총리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을 비롯해 원내 다수당인 자유당 정치인들의 지지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 운동에 부딪혀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아다니의 광산 개발은 규모만 보더라도 심각한 환경파괴가 예상된다. 게다가 개발 예정지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의 인권과 현지 농민들에게 필요한 수자원 고갈 등 환경적 사회적 재앙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과 유착된 정치권, 금융권의 개발 강행을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연대투쟁, 스탑아다니(#StopAdani) 캠페인이 막아서고 있다. ‘스탑아다니’는 호주녹색당을 비롯해 37개의 시민사회 단체와 지역·환경단체들이 연대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주로 집회와 게릴라 시위 등의 직접행동을 벌이고 있는데, 언론과 SNS에서 이 캠페인의 사진들이 줄곧 회자되고 있다. 특히 아다니 개발 사업을 지지하는 현 총리가 ‘학생들이 있어야 할 곳은 시위현장이 아니라 교실이다’ 라며 학생들의 등교거부 시위를 비판하자, 자연스럽게 호주에서는 기후변화 학생 시위와 스탑아다니 캠페인이 하나의 운동이 되어 진행되고 있다.
정치인을 상대하는 법, 미디어를 활용해 민낯을 드러내기
이 운동에서 활동가들은 어떤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스탑아다니 캠페이너이자 퀸즈랜드 녹색당원인 클레어 오그던(Claire Ogden)은 자신이 진행한 게릴라 캠페인 전술을 이야기하며 ‘정확한 혈자리를 찾아 침을 놓듯’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접행동에 있어서 아다니를 돕는 광산개발의 이해관계자들을 정확히 구분해 겨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다니 이해관계자들을 셋으로 분류했다. 로비자금을 받은 정치인, 투자은행, 개발하청업체.
그 중 정치인을 공략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는데, 캠페이너들은 풀뿌리 시민들이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직접행동을 할 수 있도록 자세히 안내한다. ‘스탑아다니’ 캠페인 사이트에는 우리 지역구의 어떤 정치인들이 아다니 캠페인을 지지하고 반대하는지, 그들의 발언 목록까지 제공하며 이들 정치인을 규탄하거나 설득하는 행동 매뉴얼을 제공한다.
그 중 아다니의 광산개발을 지지하는 자유당 정치인을 집중 공략하는 ‘짖어대는 새(bird dogging)’전술은 정치인들이 여론에 민감한 선거기간에 언론보도를 겨냥한 직접행동이다. 아다니를 지지하는 출마 후보가 연단에 서거나 거리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자리가 있다면, 활동가들이 ‘제발 나한테 기후변화 정책을 묻지 마요.’, ‘환경 따윈 필요 없어요.’, ‘나는 석탄이 그리워요.’ 라고 쓰인 말풍선 피켓을 들고 후보 곁으로 돌진해 기자들에게 기습적으로 촬영 당하는 식이다. 이 행동은 선거기간 일주일 이상 끈질기게 진행된다.
환경파괴 기업을 지지하면서 시민들에게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의 민낯을 밝히는 통쾌한 이 장면은 SNS에서 먼저 회자되고 언론이 받아 보도하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뿐만 아니라 총 50개 지역구에서 160회가 넘는 정치인의 사무실을 점거하는 농성도 이어졌다.
Politics in the Pub 오늘 밤 주점에 우리 지역구 의원을 초대하세요
스탑아다니 캠페인을 돕고 지지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녹색당은 당연하거니와 노동당의 정치인들 중 양심적인 의원들도 아다니 광산 개발에 반대 목소리를 낸다. 활동가들은 이들 정치인들이 꾸준히 의회를 압박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행동을 촉구하는데 집중한다. 특히 지역구 정치인들을 겨냥한 활동은 보다 능동적인 지역공동체 활동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지역구 의원이 스탑아다니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것을 증명할 발언 기회를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마련해 정치인으로서 한번 뱉은 말을 도로 삼킬 수 없도록 덫을 놓는 셈이다.
그 중 한 가지 전술이 일명 ‘펍에서 정치를! (Politics in the Pub)’이라는 전술이다. 퇴근 후 맥주 한잔씩 하는 펍(주점)문화가 친근한 점을 고려해 시민들이 지역 커뮤니티 단위로 스탑아다니 캠페인을 주제로 주점에서 토크쇼 행사를 열도록 독려한다. 특히 해당 지역의 노동당 정치인을 초대한 주점을 열도록 구체적인 매뉴얼까지 공유하고 있다. 적어도 노동당 의원들은 스탑아다니 캠페인를 지지하도록 설득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지역구 주민들이 직접 정치인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렇게 정치인을 초청한 주점행사는 100여개 이상의 지역에서 치러졌고 행사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설문을 취합하고 지역구 의원에게 주민 목소리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22명의 연방 의원들이 공식적으로 아다니 광산개발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는 성과를 이뤘다.
디테일과 창의성을 북돋는 똑똑한 온라인 아카이브
아다니 캠페이너들이 지역의 풀뿌리 행동을 조직할 때, 실행 전술의 치밀함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 단체에서 후원의 밤을 진행했다고 가정해 보자. 행사진행을 위해 실무자의 역할분담을 담은 최소한의 큐시트는 필요하다. 그 안에는 타임테이블과 기본적인 대본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런 실무단위의 자료가 스탑아다니 캠페인 사이트에는 모두 공개되어 있다. ‘펍에서 정치를’ 행사를 예로 들면 초대할 정치인에게 보낼 초청 메일 초안부터 사회자 대본과 질문지, 지역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내는 방법까지 상세히 공개된다.
이런 치밀함의 기반은 똑똑한 온라인 아카이브에 있다. 스탑아다니 캠페인 사이트에는 구글독스(문서 공유 서비스)와 플리커(사진 공유 서비스)를 활용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툴킷(디자인 시안, 행사 진행 매뉴얼, 서명지, 연락처·주소·문서 목록까지)이 쉽게 정리되어 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으니 실행할 사람들만 모이면 된다.
이들은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효과적인 직접행동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캠페이너들은 더 기발한 직접행동의 아이디어를 시민 모두가 제안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구글 문서에 번호를 매겨 실제 집행한 활동 후기를 링크와 함께 정리해 두었다. 현재까지는 67개의 아이디어가 모여 있다.
정치인들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논평을 배포하거나 텅빈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본 활동가들에게는,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제는 다른 접근을 모색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 사례다.
어떻게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갈 것인가
밀양 송전탑, 4대강 사업과 같이 주체가 명확한 개발 사업은 실제 사업이 가능하도록 한 이해관계사들이 비판의 대상에서 한 걸음 빗겨나 있곤 한다. 스탑아다니 활동가들은 아다니 기업의 악명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은 투자사와 하청업체들을 직접행동으로 드러냈다. 아다니 투자은행 옥외 광고 문구를 비판적으로 수정하고, 공개 채용 인터뷰에 면접자로 가장해 규탄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3년간 3천 번 넘게 투자은행들의 지사에서 집회를 벌였다. 그 결과 35개의 금융사에서 아다니 투자 계획을 취소하고 이 움직임과 더불어 퀸즈랜드 주정부는 국고 지원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활동가들은 콤뱅크(CommBank)의 옥외광고 문구를 “파국적인 기후변화로 가는 길을 찾으세요”라고 고치며 콤뱅크가 아다니에 투자하는 것을 비판했다. 콤뱅크는 결국 투자를 철회했다.
아다니캠페인은 처음부터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가도만 밝게 달려온 것은 아니다. 용역에 맞선 현장 점거 농성, 건설기계를 맨몸으로 막는 투쟁, 고공농성과 같은 활동가들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현지 환경운동가들은 여전히 기업 측으로부터 몇 억 원대가 넘는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투쟁이 장기화 되어도 참여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성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비리를 하나씩 밝혀내는 것, 정치인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 목표만큼 서명지를 모으는 것, 지역공동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 우리 활동가들이 하는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주,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온 15만 명의 호주 학생들의 사진이 현지 뉴스지면과 외신을 가득 채웠다. 그 중 붉은 다이아몬드 로고가 세겨진 스탑아다니 티셔츠를 입고 피켓을 든 학생들을 보면, 이 지난한 운동에 매진해 온 활동가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환경운동가가 된 듯한 호주는 곧 선거철이다. 호주 정치사회 전반에 스탑아다니 캠페인이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흥미롭게 지켜보며 이들이 시도하는 작지만 강력한 전술들을 모방해 우리의 운동에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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