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혜진(녹색당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세상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사회운동이 발딛고 서 있는 토대도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급격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가치 규범이나 윤리가 성립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부여잡으면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급격하게 변하는 미디어와 기술을 따라가기만도 벅찹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전통적인 방식의 활동과 메세지 전달,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맞는 활동과 메세지 전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3회에 걸쳐 녹색당 홍보활동가 유한혜진 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합니다. 유한혜진님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생각들, 그리고 유한혜진님이 소개해주는 사례들이 아무쪼록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 매체비를 얼마로 잡아야 하죠?
묻고 싶다. 우리 단체의 홍보팀이 사용할 수 있는 ‘매체비’가 책정되어 있는가? 한해 동안 오롯이 ‘매체’에만 돈을 쓰는 예산 말이다. 페이스북 광고, 인스타그램, 유투브, 트위터, 심지어 검색까지 각종 매체에 우리 단체의 정보를 노출하기 위해 써야 하는 돈. 의외로 시민사회 단체는 매체비를 별도로 책정하지 않고 활동하는 곳이 많다. 영상, 포스터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예산을 투입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매체 예산(흔히 온라인 광고비)’은 우선순위가 밀린다.
하지만 매체를 어디까지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영역은 넓어진다. ‘매체’를 폭넓게 정의해 우리 단체가 표현하는 내용을 비춰주는 도화지, 표면, 또는 전달수단을 포함하면, 기자회견에 필요한 피켓 제작비, 리플렛 인쇄비, 현수막 인쇄비도 매체비로 생각할 수 있다. 단체의 홍보담당자는 통일된 메시지를 관리하고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지면에 예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1인 미디어 역할을 하는 파워블로거의 저작료까지 매체비로 간주하곤 한다.
거리의 가두 현수막 제작비용은 한 장당 3만원이다. 얼마 전 녹색당은 미세먼지 정책을 담은 웹포스터를 페이스북에 광고료를 내고 게시했다. 광고비 총 2만3천원으로 3천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이 포스터를 노출했다. 수중에 3만원이 있다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현수막을 설치할 것인가, 페이스북 광고를 할 것인가. 온오프라인을 통합해 매체비를 산정하면 이 비교가 가능하다.
그들은 광고비 단 1원까지도 철저하게 계산한다 – 미디어믹스 (Media Mix)
우리가 제안하는 정책 내용을 1만 명의 시민들에게 보이려면 얼마의 광고비를 지불해야 할까?
오프라인 행사에 50명을 초청하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행사 웹자보를 최대 몇 명에게 노출시켜야 할까?
천만원 모금을 위해 당원들에게 몇 번 이메일을 발송하고 필요한 기간은 얼마인가?
광고회사에서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면, 광고 제안서의 마지막 장에 필수적으로 항목 하나가 추가되는데 바로 ‘미디어 믹스(Media Mix)’다. 미디어믹스는 광고주 사이트에 들어오는데 드는 클릭당 비용을 일일이 책정하고, 어떤 광고 형태로 어느 지면에 노출시킬지, 수십개의 매체를 만원부터 천만원까지 광고 집행비를 쪼개 제안하는 매체 예산 계획표다. 표가 세부적일수록 철저한 예산 계획을 확인할 수 있었고 광고주의 적잖은 질문이 이 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이 통 크게 프라임타임 TV 광고에 몇 억씩 쓰는 일은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내가 속한 단체가 세운 사업계획에 매체 예산 계획표(Media Mix)도 함께 만드는 건 어떨까. 웹의 다양한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면 작은 예산이라도 단체 고유의 미디어 믹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투브, 각종 언론사 사이트까지. 지면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우리 단체의 잠재적 기부자들이 자주 가는 장소를 찾아 정확한 시각에 정확한 메시지로 노출하는 것. 실무자가 매일 채워나가는 엑셀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수치를 낮추되 확실하게! 타겟 세분화 (Target Segmentation)
“3%의 표를 얻으려면 나머지 97%를 적으로 만들 뚝심이 있어야 해요”
지난 총선 평가 워크숍에서 한 당원이 했던 말이 여전히 내 뇌리에 박혀있다. 1명의 녹색당 후보가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 달성해야 할 비례득표 3%. 공중전에 쏟아야 할 힘을 모두 썼지만 0.76%에 지나지 않았던 뼈아픈 득표율.
홍보담당자는 대부분 숫자 앞에서 나약해 진다. 목표를 통해 우리의 포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그리고 집행기간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느린 목표 달성율을 바라보며 길을 잃는다. 만약 목표수치가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면 타겟을 넓게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르게 말하자면, 타겟팅을 제대로 못하면 목표가 막연해 진다.
지난 2018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서울시장 캠프에서는 ’20대 여성’을 메시지의 주요 타겟으로 잡았다. 그리고 금쪽같은 선거운동 기간 2주를 오직 대학가를 순회하며 유세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여성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가 트위터를 주로 이용하고 있었기에 신지예 서울시장 캠프는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유세현장을 알리고 인증샷을 올렸다. 지방선거 결과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1.5% 득표로 원내정당 정의당을 제쳐 4위를 했고, 청소년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호주녹색당의 선거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뉴사우스웨일즈의 조직팀장 벡 텔봇(Bec Telbot)은 유권자 중 선거운동 대상을 세분화하기 위해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을 알려주었는데 일명 ‘연대의 스펙트럼(spectrum of allies)’이다. 녹색당을 지지하는 정도에 따라 유권자를 5개 그룹으로 세분화해 관리하는 방식(1. 당원 및 봉사자 2.잠재적 지지자 3.관심자 4.무관심자 5.적대자)이다. 이를 우리 단체의 지지자, 잠재적 기부자, 봉사자 등으로 대입해도 무방할 것이다. ‘연대의 스펙트럼’을 토대로 녹색당에 가지고 있는 호감도에 따라 나눈 그룹마다, ‘설득의 메시지’를 다르게 한다. 특히 자원이 한정된 경우, 3번에 해당하는 그룹이 2번 그룹으로 변화하도록 가장 많은 자원을 투여하고, 5번 그룹에게 자원이 낭비되지 않도록 한다.
단, 이 세분화는 주로 자택방문(door knocking : 한국은 정치활동 자유를 제한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자택방문이 금지되어 있다.) 선거운동을 위한 용도로 지역 주민의 주소지를 일일히 데이터화 해 설득의 메시지를 차별화한다. 소셜미디어를 주로 소통 도구로 삼고 있는 녹색당에게는 이 ‘연대의 스펙트럼’을 온라인 소통용으로 구축하는 일이 숙제다.
여전히 언론과 소셜미디어 모두에게 ‘현장’은 유효하다
호주의 의회와 현지 뉴스 사회면을 심심치 않게 달구고 있는 환경 캠페인이 있다. 현재 호주 퀸즈랜드를 중심으로 27개의 시민사회 단체가 연대해 거대기업 아다니의 광산개발을 막는 스탑아다니(#StopAdani)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현장과 소셜미디어, 언론을 절묘하게 활용한 사회운동을 보여준다.(스탑아다니 캠페인에 대해서는 세 번째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일주일에도 두세번 기자회견을 갖거나 정당연설회를 기획해야 하는 캠페이너로서 우리는 여전히 유효한 현장의 장면들을 만들어 가는 동료 단체들의 캠페인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비슷한 에너지가 투여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제품의 효용’을 제공해 구매를 이끌어 내는 상품판매와는 달리, 비영리 단체가 요구하는 행동변화에 대해 시민들이 제공하는 교환가치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거래의 대상이 바로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기간 경험을 축적시켜 누군가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다.
이제 4년차 활동가. 돌아보면 오프라인 현장과 온라인 공간, 영리와 비영리의 관점, 그 사이 미묘한 경계에서 활동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여전히 시민사회의 선배 활동가들이 지닌 측정할 수 없는 헌신과 치열함이 때론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다행히도 그 낯섦은 연대의 현장에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극복된다.
요즘은 뉴스를 보거나 SNS로 세상 이야기를 접할 때면, 문득 아득해 보이는 변화를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활동가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고 나처럼 서툰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다른 활동가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매년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 각국의 마케터들이 모여 한 해의 가장 창의적인 광고에 영예의 상을 주는 경쟁과 축제의 장, 칸 광고제(Cannes Lions)가 열린다. 이 행사는 베테랑 광고쟁이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길 원하는 세계 각국의 젊은 창작자들이 기다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시민사회 운동 현장 곳곳에 있는 활동가들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소통방식을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칸 광고제(Cannes Lions)처럼 우리 활동가들도 각자의 캠페인 전술을 서로 공유하고 배우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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