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혜진(녹색당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세상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사회운동이 발딛고 서 있는 토대도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급격한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가치 규범이나 윤리가 성립되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가치를 부여잡으면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급격하게 변하는 미디어와 기술을 따라가기만도 벅찹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전통적인 방식의 활동과 메세지 전달,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맞는 활동과 메세지 전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합니다. 전쟁없는세상은 3회에 걸쳐 녹색당 홍보활동가 유한혜진 님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합니다. 유한혜진님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생각들, 그리고 유한혜진님이 소개해주는 사례들이 아무쪼록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릴렉서사이즈의 특성이 뭐든 간에 우리가 파는 건 자신감이예요.
라디오 광고를 녹음하는 스튜디오에서 스테이시(주인공)가 성우에게 말한다. 이들이 광고하는 제품은, 착용하면 진동이 일어나 뱃살을 빼주는 ‘복대’다. 1960년대 미국 뉴욕 매드슨 거리에 위치한 광고회사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드라마 ‘매드맨'(Madison Avenue Advertising Men 을 줄여 광고사 직원들은 스스로 ‘매드맨’이라 일컬었다.)의 한 장면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승객들을 향해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노상 판매상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복대가 가득 찬 손수레를 끌고 지하철 승객들을 향해 이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일주일만 착용해 보세요. 초당 20회 진동으로 뱃살이 쏙 빠집니다. 믿을 수 없는 가격! 2만원에 가져가세요!
드라마 ‘매드맨’에는 비싼 수트를 입은 남성 광고쟁이들이 회의실에서 한손엔 시가, 다른 한손엔 위스키 잔을 들고 브레인스토밍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판매하는 제품이 치약이건, 담배건, 립스틱이건, 세제건 간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들은 가히 철학적이다.
트럭 브랜드 ‘람 트럭스’의 광고 캠페인이다. 18세 여성농부 그레이스 에믹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광고는 ‘우리 모두의 농민에게 (Farmers in all of us)’ 라는 슬로건으로 ‘트럭’ 대신 ‘농민의 삶’, ‘성평등’을 이야기한다. 그 뿐이랴. 나이키는 공기가 잘 통하는 운동화 대신 ‘도전정신 just do it’을 이야기하고, 유니레버는 비누 대신 ‘지속가능한 삶’를 이야기한다.
제품 판매를 위해 광고 메시지를 도출해 내는 60년대 매드슨 거리의 광고 기획자들은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철학적 논쟁을 이어간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브랜드를 떠올리면 적어도 그들 자신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생산해 낸 제품보다 더 이상적인 가치를 판매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광고회사 직원에서 진보정당의 홍보 활동가로
11년 전 나는 광고회사에 입사해 새롭게 개설된 검색광고 부서에 배치 받았다. 당시 내가 처음 한 일은 엑셀을 다루는 일이었다. 출근하면 전날 광고주의 웹사이트에 몇 명이 접속했는지 몇 명이 클릭했는지, 접속량이 몇 % 증가했는지, 매일 데이터를 수집했다. CPC(cost per click 클릭당 비용), CPA(cost per action 구매당 비용), CPR (cost per rate 1000회 노출당 비용). 낯선 용어를 구분해 가며 수식을 확인해 그래프를 만들고 엑셀의 빈 공간을 채웠다. 클릭 수가 떨어지거나 구매율이 낮아지면 다음날 광고 문구를 바꾸거나 광고 게재시간을 변경하거나 노출 타겟을 새롭게 설정했다.
네이버와 다음이 검색 결과를 광고주에게 팔지만 않았어도,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과 정보를 손쉽게 검색해 구매하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았어도, 당시 나는 ‘매드맨’의 한 장면처럼 회의실에서 문학과 인류학를 들먹이며 브레밍스토밍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현실 광고쟁이의 모습은 매일 아침 포털사이트 관리자 계정에 접속해 어제의 수치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마케팅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비영리 섹터로 넘어와 진보정당에서 4년 째 홍보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적잖은 기시감을 느낀다.
지난 총선 때 당사로 전화벨이 울렸다. 모 은행 직원이었다.
“녹색당이세요?”
“네. 무슨 일이시죠?”
“다름 아니라 어떤 할머니가 통장 비슷한 것을 들고 오셨는데요. 돈 받으려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시는데 이거 녹색당에서 만든거죠?”
아뿔싸. 그렇다. 그 할머니가 은행에 들고 간 것은 통장이 아니라 녹색당이 만든 리플렛이었다. 기본소득을 주요 정책으로 삼았던 우리는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40만원 입금내역이 인쇄된 ‘가짜 기본소득 통장’을 나누어주었다.
우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을 실제로 받아보는 가상의 경험 (정당이 특정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키기 위해, 시민들에게 해당 정책이 실현될 상황을 미리 체험해 보게 하는 전략을 Pre-figurelic politic라고 한다)을 통해 기본소득의 효용을 피부로 와닿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녹색당의 기본소득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40만원 입금내역’이 아닌 인간의 ‘평등’과 ‘존엄’이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때때로 나는 기업이 발신하는 광고는 가치 중심적 표현들로 가득한 반면, 시민사회 단체들은 실질적 효용을 전달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미세먼지의 고통에 시달리는 시민에게 어쩌면 녹색당은 기후변화 대신 마스크 구입비를 절약하기 위해 우릴 지지해 달라는 전술을 써야할지도 모른다. 정작 마스크 판매로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슬로건으로 하고 있는데 말이다.
메시지 수신자를 이해하는 데 영리기업과 시민사회 단체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단체는 ‘물질적 욕망의 주체’로서의 시민에 대해 이해하려는 반면, 정작 제품을 팔기 위한 영리기업은 ‘가치지향적 자아’로서의 소비자를 영리하게 호출해 오고 있다.
이렇듯 기업들이 기업활동 결과가 초래하는 영향력과 별개로 ‘가치지향적 언어’를 사용하고, ‘공공선’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디어의 변화가 사회운동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이 때, 활동가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우리 잘하고 있는 걸까.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참여’, 그리고 ‘현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애드보커시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 다음 세 가지의 구성요소를 들어 설명했다. 말(주장), 몸(현장), 관점. 그리고 그 결과로서 ‘기억’.
정당에서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위 요소 중, ‘몸’의 의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라인 홍보를 담당하는 나에게는 캠페인을 기획할 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현장’에 투여하는 자원의 크기를 판단하는 게 적잖은 어려움이다.
하지만 시민사회 운동과 권력을 향한 투쟁은 늘 현장이 중심이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산 위에서 송전탑 공사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밀양 할매할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의 천막 농성, 크레인과 굴뚝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몸짓, 촛불을 들고 광장을 메우는 시민들의 발걸음.
같은 시공간을 함께하는 ‘몸’들은 운동에 숭고함을 더한다. 그리고 축적된 ‘현장의 기억’은 역사로 기록된다. 오늘날까지 민주주의 사회에 광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셜미디어가 소통의 주된 도구가 되면서 때론 온라인이 현장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특히, 기업의 소셜미디어 마케팅 관점에서는 SNS 공간이 ‘광장’이 되고 SNS 사용자의 동선을 치밀하게 기획해 각종 ‘온라인 이벤트’가 행해진다. 이렇게 소셜미디어가 제품 마케팅의 보편적 수단이 되면서 광고회사의 제안서에 하나의 개념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참여’다. 시민사회 분야의 핵심 행동인 ‘참여’가 마케팅의 보편적 용어가 된 것이다.
오래 전, 온라인 이벤트를 운영했던 나는 이벤트 헌터(경품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경품 프로모션을 찾아다니며 활동하는 유저)를 솎아내고 댓글, 공유 등 활동에 대한 댓가로 브랜드 메시지와 아무 상관없는 스타벅스 쿠폰을 경품으로 배송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행위를 의심 없이 ‘참여’라 불렀다.
남아공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트레버노아(Trevor Noah)는 소셜미디어가 생겨나면서 ‘소파에 누워 속옷을 입고도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며 ‘현장’ 없는 시민투쟁의 방식을 통렬히 비판한다.
하지만 나는 ‘온라인 참여’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사람 간 소통의 형태, 나아가 관계의 형태까지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내는 우리는 과거와 달리 거대한 대의명분보다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 공통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세대의 활동가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공통의 공감대를 증폭시키고 실질적인 사회 변혁으로 견인하는 것이 우리 활동가의 역할인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운동의 전술엔 온오프라인이 따로 없다.
활동가인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현장 중심의 활동을 하며 온라인 매체까지 다루는 활동가라면 이런 고민은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한다.
큰 돈 들여 유투브 광고영상을 만들었는데 그만큼 후원자가 안 늘까봐 불안한가?
페이스북 광고를 얼마나 집행해야 1만 온라인 서명을 모을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는가?
1천 명의 집회 참여자를 모아야 하는데 도대체 몇 명에게 알려야 할까?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홍보 실무를 맡은 활동가로서 내 고민을 공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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