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이 쓴『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여지우・최정민 옮김, 전쟁없는세상 엮음, 경계, 2018)의 1부의 1장 「왜 젠더가 중요할까」는 병역거부에서 젠더가 왜 중요한지를 논의합니다. 병역거부 연구에 있어 젠더 분석의 이점을 3가지 짚어주며(30~2쪽) 민족주의-군사주의-가부장제가 뒤얽힌 사회적 권력관계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젠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평화운동 내에서 ‘남성’ 병역거부자가, 대안적인 남성 영웅/또 다른 남성 모범 또는 마초 영웅적 남성성과 부끄럽고 굴욕적인 병역기피라는 탈남성화된 남성성이라는 두 가지 전형을 모두 거부하기 위해서도, 젠더 분석은 필요합니다. 젠더 분석을 통해, ‘적’을 상정한 국가의 제도화된 폭력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관습화된 남성의 성폭력은 상호연관성이 있음을, 즉 젠더폭력의 연속성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젠더폭력의 연속성에 대한 페미니즘적 자각은 민족주의-군사주의-가부장제-자본주의가 겹쳐진 복합적인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거나 비폭력 직접행동을 위해서도 우리는 폭력의 복합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폭력의 복합성에 저항하는 이들 사이에도 복합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름’과 ‘차이’를 어떻게 다룰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젠더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경험, 행동양식, 행동경험 등은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젠더도 다를 것입니다. 지정성별과 젠더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거나 일치할 수 있고, 트랜스젠더일 수 있고, 젠더정체성과 젠더표현이 다를 수 있는 등 다양한 젠더(정체성)가 있습니다. 젠더, LGBTQIA+ 등에 대한 인식과 경험, 행위양식, 행위경험 등을 각자 다르게 실행하거나 경험해왔을 것입니다. 젠더는 2개가 아닙니다. 젠더는 정체성이지만 정체성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고정된 것도 아닙니다. ‘젠더는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젠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도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의 중요한 물음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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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는 이러한 차이를 다루는 방법을 하나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개념입니다. 한번 목차를 살펴보겠습니다. 「프롤로그」, 「들어가며」를 지나 본격 논의가 시작되는 1부 첫 문장은 “‘젠더’라는 주제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30쪽) 있다로 시작합니다. 이후 페미니스트 연구자 신시아 코번이 서술한 1장 「왜 젠더가 중요할까」는 ‘젠더의 교차성에 관한 주석’(35쪽)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어서 여성(2장), 인종(3장), 계급(/사회경제적 배경)(4장) 등을 중심으로 다루는 글들이 이어집니다. 5장 ‘특권과 차이 속에서 활동하기’는 교차성 페미니즘 활동가인 필자가 자신의 특권을 자각한 후 차이 속에서 활동하는 것의 어려움과 방안 등을 서술합니다. 6장은 여성, 인종, 계급, 종교, 성정체성, 젠더 등이 교차하는 지점(교차점)에 있는 베네수엘라, 남아공, 콜롬비아, 한국, 이스라엘 병역거부자의 글들입니다. 우리는 6장을 통해 젠더와 여성, 인종, 계급, 종교, 성정체성 등이 국가별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따라 오면 7장 「합의에 의사 결정」은 (이미 5장에서도 서술된) 차이 속에서 활동하기 위한 현실 방안이 제안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 속에서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반군사주의 캠페인을 조직, 실행하려는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1부 제목 ‘함께 활동하기’는 ‘차이 속에서 함께 활동하기’라고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교차성에 대한 논의는 1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3부 ‘병역거부의 확장’의 21~24장은 교차성의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국가로는 터키(21, 22, 23장), 이스라엘(24장)의 사례로, 젠더, LGBT, 계급(사회보장에서의 퇴출), 장애 등이 다뤄집니다. 그리고 24장은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허물 것인가?’(각주1)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24장에서 바르디는 이스라엘 병역거부의 특별한 상황에서 사고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여성 병역거부는 “쉽게 무시하곤”(260쪽) 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쉽게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여/남이 동일하게 병역거부 공개선언을 해도 남성만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규정 변화로 여성의 군 면제가 더 어려워져 여성 병역거부자 수가 늘어난 것을 보고 바르디는 질문합니다. “병역거부가 명확하게 군사 구조와 군대의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이며 주인이 만들어놓은 철창 뒤에서 주인의 집을 허물려는 시도”(260~1쪽)는 아닌가 하고 말이죠. 바르디는 질문을 이어갑니다.

우리는 투옥된 병역거부자들 뿐만 아니라 군에 의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받기 위해 평화주의와 병역거부의 기준을 군사위원회 기준에 맞추려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시도를 목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대가 직접 군 복무에 부과한 권능과 의미를 전술로서 받아들이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진정으로 반군사주의적일 수 있을까?(261쪽)

바르디는 이스라엘의 젠더 차별로 인한 여성 병역거부자와 남성 병역거부자의 상황적 차이는, 결국 군사 구조와 군대의 규칙 변화에 따라 결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바르디는, 이스라엘에서, 여성이면서 병역거부자인 ‘여성 병역거부자’로써의 교차적 특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페미니즘 학자 킴벌리 크렌쇼는 1989년 (상호)교차성 용어를 처음 제안한 논문에서 ‘교차’를 이렇게 설명합니다.(각주2) 크렌쇼는 ‘흑인 여성’의 차별을 분석하고자 (상호)교차성 개념을 사용합니다.

핵심은 흑인 여성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을 겪을 수 있기에, 그들이 차별을 소명할 때 반드시 일방향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모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교차로에서 네 방향 모두로 오고가는 교통 흐름을 생각해보자. 마치 교차로를 지나는 차들처럼 차별은 이 방향에서도 저 방향에서도 올 수 있다. 만일 교차로에서 사고가 난다면, 이것은 어느 방향에서 오는 차로도 일어날 수 있으며 모든 방향의 차가 전부 원인일 때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흑인 여성이 교차로에 있다는 이유로 권리를 침해받는다면, 그것은 성차별 때문일 수도 있고 인종차별 때문일 수도 있다.(각주3)

이러한 교차적 사고를 통해 질문을 만들 수 있고, 지난 한국 병역거부 운동의 여러 지점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퀴어남성’ 병역거부자가 받는 차별은 비퀴어남성 병역거부자와는 어떻게 다를까? ‘퀴어남성 병역거부’는 ‘병역거부’만 주목 받지는 않았을까? ‘퀴어남성 병역거부’가 ‘퀴어남성’으로만 해석되거나 ‘병역거부’로만 해석되지 않으면서 ‘퀴어남성 병역거부’로 해석될 수 있을까? ‘퀴어남성 병역거부’로 해석하며 반군사주의적 실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등으로요. 우리는 2018년에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비건 페미니스트 숲이아의 병역거부 선언을 접했습니다. 숲이아의 병역거부는 어떤 의미일까요? 숲이아의 병역거부가 병역거부 운동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병역거부자이며 인권교육 활동가 날맹은 「장애인도 군대갈 수 있는 게 평등일까?」에서 ‘병역과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남성과 남성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비남성 즉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성, 장애인, 퀴어, 학력‘미달’자 등을 분할해내는 힘”에 주목하자고요. 직접 교차성을 언급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 글을 통해 ‘비남성’으로 범주화되는 이들의 차별과 ‘병역 차별’이 서로 얽히고 맞물리며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차성 개념을 수용하든 아니든, 병역거부 운동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성애 비장애인 시스젠더 남성’으로 병역거부자는 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병역거부자들은 훨씬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정체성들을,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병역거부 운동을 확산할 수 있을지 우리는 ‘오늘’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5장에서 주요하게 인용되는 오드리 로드의 문장은, 여성들 간의 차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 다음 문구가 서로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격려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여성들 간의 분노를 명료히 언어화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말하는 방식을 놓고 자신을 방어하는 만큼의 열의로 적어도 그 내용에 귀 기울인다면, 그로 인해 파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61쪽)

우리가 ‘차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차이 속 연대의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는 이 모색의 길을 함께 할 주요한 참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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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이것은 오드리 로드의 말이기도 합니다. 오드리 로드,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주해연 박미선 옮김, 후마니타스, 2018, 174쪽.

각주2  이 논문과 1991년 논문 「주변부 지도 그리기: 교차성, 정체성의 정치, 그리고 유색인 여성에 대한 폭력」(http://en-movement.net/175?category=718342)에서 ‘교차’, ‘교차성’이란 용어가 처음 제안되었지만 ‘교차적 사고’의 사례는 더욱 오래되었다. “페미니즘 역사에서 젠더, 인종, 계급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교차적 사고’(intersectionality-like thought)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교차성 이론가들은 예를 들어 19세기 노예해방운동에 헌신한 흑인여성들의 말과 글에서 또는 1960-70년대 유색인 여성해방운동에서 교차적 사고의 사례를 발견합니다.”(한우리 외, 『교차성×페미니즘』, 도서출판여이연, 2018, 13쪽)

각주3  킴벌리 크랜쇼, 「인종과 성의 교차점 탈주변화하기」, 웹진 인-무브 페미니즘 번역모임(마리온, 단감, 쏠, 느루, 단호) 옮김, 8쪽. http://en-movement.net/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