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화수감자의 날에 모이신 여러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어색하지만, 낭독되는 걸 듣고 계신 여러분들도 그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2015년에 병역거부를 하고 올해 9월 말부터 수감되어 징역생활을 하고 있는 은종훈이라고 합니다. 처음 3주 동안은 인천구치소에 갇혀 햇볕도 쬐지 못한 채로 지내다가 군산으로 이송되어 관용부 출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화수감자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어 임재성 변호사님이나 전쟁없는세상 홛동가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그분들을 뵙는 게 많이 어색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 어색함은 아마 제가 선택한 결정의 엄중함에 비해 저의 내면이 나약함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일지 모릅니다.
저는 활동력이라는 덕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추진력이 있다면 서른 살인 지금까지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았을 리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병역을 거부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기질적인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대가 요구하는 동작의 부산스러움, 행동의 표면성을 견뎌냈을 거란 확신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하지 못하는 폭력과 살인을 국가를 위해 연습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군복을 입고 훈련을 마친 후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것이라고 참회하기보다 애초에 총을 들지 않는 게 진실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제 나름대로 행위와 양심을 일치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도소에서는 그런 실천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갈등을 피하고 무난하고 무탈하게 지내기 위해 본심과는 다른 웃음을 짓고 본심과는 다른 제스처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져주고, 머리를 숙여야 하는 일은 괜찮습니다. 저 하나만 감당해야 하는 곤란함, 부끄러움, 굴욕, 고통 등은 제가 치러야 할 비용이라 생각합니다. 대개의 경우는 저의 제스처만을 요구하며 저는 그 요구에 기꺼이 복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활하다보면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싶은 상황을 목격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은 저에게 제스처가 아닌 침묵을 요구합니다. 의지만으로 시정할 수 없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부조리들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는 게 현재로선 가장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나마 생활하기 편하다고 하는 청사에서도 이렇게 느끼는데 다른 곳은 얼마나 힘들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수형자들 사이의 불편함 때문에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장으로 출역 장소를 옮기는 이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항소를 포기하고 징역생활이라는 수난을 감수하면 몸과 마음은 괴로울지언정 양심의 문제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당하는 고통만큼 여러 분들께 받는 도움과 지지에 대해서도 조금 더 떳떳해질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생활은 저에게 또 다른 문제와 딜레마를 부과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저는 양심이 제기하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홍정훈 님이 자신을 병역거부자의 얼굴로 칭하신 것을 법정 방청석에서 직접 들었습니다. 사실 병역거부자의 수를 고려하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장소에서 병역거부자의 대표로서 행동하야 하비다. 저도 여기서 이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저의 형명을 알고 있고 따라서 저의 행동 하나하나는 병역거부자 일반에 대한 인상을 좌우합니다. 대체복무제가 안착되어 병역거부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는 이상, 이들이 병역거부자를 마주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징역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으면 사람이 안 된다.’거나 ‘이렇게 할 일을 안 하니 병역을 기피하지’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도 지금ᄁᆞ지는 성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성공적인 임무수행과는 별개로 병역거부자를 둘러싼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병무청이 대체복무자 관리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비군 거부를 제외하면 비종교적 신념은 여전히 병역거부의 사유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역거부자는 신념의 진실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나 과도한 제스처를 요구 받고 있습니다. 병역 의무의 과도한 신성화와 그를 정당화하는 국제정치의 현실로 인해 양심과 양심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의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균형의 재생산 구조가 해체되고, 신념에 따라 사는 데 너무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기원해봅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2월 1일 은종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