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

화창한 봄날, 시민들이 한창 소풍을 즐기고 있는 한강둔치에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기상천외의 괴물이 출현한다. 공룡 같은 몸집에 무서운 속도, 무지막지한 괴력을 행사하는 난폭한 ‘괴생물체’.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한 장면이다.

‘괴물’ 영화의 첫 시퀀스는 2000년 2월 9일 주한 미8군 용산기지 내 영안실로 시작한다. 미군의관이 ‘포름알데히드’ 병에 낀 먼지를 닦아내며 “김씨, 난 먼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 그리고 ‘포름알데히드’를 싱크대에 다 부어 버리라 말한다.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전부 다.” 놀란 김씨는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부어 버리면 한강으로 흘러갈 거라고 대꾸하자 미군의관은 말한다. “한강 … 무척 큽니다. 마음을 크고 넓게 가집시다. 어쨌든 명령이니까 빨리 부어 버리세요.” 이어서 수백, 수천 병의 ‘먼지 낀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으로 흘러간다. 기상천외한 괴물이 탄생된 이유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초비상인 이때 나는 괴물 영화의 첫 시퀀스가 떠올랐다. 평범하기 이를 때 없는 미군의관의 ‘난 먼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가 왠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국민들에게는 철저한 위생을 강조하면서 남의 나라는 쓰레기하치장 정도로 취급하는 미군의 이중 잣대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몸에 해로운 것, 더러운 것, 불균질한 것들을 보이지 않은 곳으로 몰아내버리는 근대 위생시스템에 대한 실랄한 풍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 자체가 온통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위생과 청결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세상을 마구 오염시키고, 입만 열면 과학과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의 위생과 청결관념 역시 그저 내 눈에 보이는 세상만 깨끗하면 된다. 눈앞에 보이는 먼지는 참을 수 없어도 한강이 오염되는 건 아무 상관이 없고, 내 가까이 있는 독극물은 저 멀리, 나랑 무관한 사람들한테로 보내 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영화는 중반부 이후, 괴물이 아니라 괴물이 퍼뜨렸을지 모르는 바이러스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위생당국과 언론은 괴물을 바이러스의 숙주로 단정해 버린다. 괴물은 아무리 무시무시하다 해도 일단 눈에 보이는 대상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는다. 괴물은 무기를 총동원하여 잡을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바이러스로 모든 권력의 시선이 이동한다. 바이러스에겐 국경이 없다. 존재 자체가 ‘국제적’이다. 영화에서 미국이 적극 개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중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조리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코로나19’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된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았다.

2015년에도 지금과 유사한 ‘메르스 사태’가 있었다. 살아있는 탄저균이 평택미군기지로 들어온 바로 한 달 뒤였다. 평택이 메르스 진원지가 되어 지역주민들은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지역 경제는 두 달 가량 마비가 되었다. 그때는 평택미군기지 생물무기실험실로 들어온 탄저균과의 연관성을 치밀하게 파헤치지 못했다.

2015년 7월 11일 평택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주한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규탄, 세균전 실험실 및 훈련부대 폐쇄 촉구 국민대회’를 바라보며 미군들이 웃고 있다. 2015년, 미군의 생화학실험을 위해 '살아있는 탄저균'이 평택미군기지로 반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사진 출처: 한겨레)

2015년 7월 11일 평택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주한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규탄, 세균전 실험실 및 훈련부대 폐쇄 촉구 국민대회’를 바라보며 미군들이 웃고 있다. 2015년, 미군의 생화학실험을 위해 ‘살아있는 탄저균’이 평택미군기지로 반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사진 출처: 한겨레)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최초 진원지로 ‘우한 국립생물 안전성 연구소’가 오르내렸다. 실제로 이곳이 진원지인지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한 ‘국립생물 안전성 연구소’가 위험도 최고수준 4단계로, 2018년 1월에 54번째로 인증을 받은 건 사실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다루는 곳이 전 세계에 54개가 있고 그 중 15개가 미국과 미육군이 관리하고 있다. 미육군기지인 평택 미군기지도 그 한 곳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시대는 지구의 한편에서는 미사일이, 또 다른 편에서는 미생물이 가공할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멀리서 소나기처럼 퍼부어 대는 미사일은 전자게임처럼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는 ‘닥쳐올 공포’로, 사람들은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쟁은 현실감이 없고 바이러스는 감염되기 이전에 이미 가까이 있는 사람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 무서운 현실이다.

필자는 메르스,코로나 등 바이러스의 등장은 환경재앙, 인간의 욕심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오직 ‘악의 축’ 바이러스의 퇴치에만 안간힘을 쏟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논리와 참으로 유사하다. 지구촌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는 것까지도. 전쟁이 우리가 향유하는 자본과 문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듯이, 괴질 또한 우리 삶과 신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진정 평화를 소망한다면 자본에 뿌리박은 욕망의 배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새로운 질병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신비한 블랙박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기생과 질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삶의 일부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태초의 가장 단순한 유기체로부터 인간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에 근본적인 것이다.’ (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중)

 

세상의 모든 것은 치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전쟁과 바이러스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을 없애고 괴질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존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