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Jungmin.duck@gmail.com)

 

1989년 8월 15일, 대학생 임수경씨와 천주교 사제인 문규현 신부는 손을 잡고 나란히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에서 남으로 온 민간인이었다. 임수경씨는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참가하기 위해 이미 6월 30일 일본과 독일을 거쳐 평양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도착소감으로 자동차로 네 시간이면 올 거리를 240시간이 걸려 왔다고 했다. 노태우 정부가 공안 정국을 조성할 것을 우려한 정의구현사제단은 문규현 신부를 북쪽에 보내 역사적인 순간을 임수경씨와 동행하게 했다. (임수경씨는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그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바로 체포되어 각각 징역 10년과 8년에 처해졌다. (이후 항소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고 3년 반이 지나 성탄절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8년 4월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구역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북으로 잠시 넘어갔다가 다시 남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사실 한국 사회에도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 시민불복종의 역사가 없지 않다. 부당한 법이나 사회적 관습을 영리하게 어김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모순을 단박에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사회적, 공익적 행동. 낙천낙선운동이나 KBS시청료납부거부운동, 병역거부운동 등은 한국의 시민불복종 역사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악의적 언론과 권력에 의해서 폭력과 법을 어기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혼용하는 사례들이 계속 있어 왔고 조금의 위법 행위만 있어도 “불법폭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구속해왔던 역사가 있어 이러한 행동이 1회성이 아닌 장기적 계획 속에서 준비된다거나 다수가 참여한다던가 적극적이고 주된 전략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책과 같은 사회운동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한국에 많이 없는 것도 이러한 운동의 관습이 잘 바뀌지 않는 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시민혁명>은 이러한 시민불복종, 대규모직접행동의 힘과 역할을 추적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의 전략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일반적 통념과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 것은 사람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정치,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신성한 절대자의 개입(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세속적 계획도 한몫을 한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사람과 조직의 세속적 계획이 늘 절대변수일 수 없지만 다른 인자들과 달리 우리가 어찌해볼 수 있는 인자라는 측면에서 세심한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으나) 이런 인자에 주목해서 운동이 실제로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많이 없었다.

책표지

이 책의 저자들, 마크 엥글러와 폴 엥글러 형제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운동의 성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요소들을 탐색해 간다. 그들의 분석은 대체로 미국의 사회운동 역사에 한정적이고 운동의 방법론에 방점을 찍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큰 2가지 줄기로 분해를 한다. 한국에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솔 앨린스키 분파와 우리에게는 좀 낯선 프랜시스 폭스 피벤 분파이다. 앨린스키 분파는 사회운동에 있어 조직구성과 점증적 조직화에 방점을 찍는 운동 방식인 반면 피벤 분파는 공식적인 조직의 한계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대중 동원의 파괴력을 믿는다. 전자는 노동조합들이나 많은 지부를 거느린 각종 장기적 조직(운동)들이 해당되고 후자는 점령하라(오큐파이)운동이나 한국의 촛불시위와 같은 대규모 시위, 파괴적 봉기를 지칭한다. 한국에도 각종 운동사를 정리한 책이나 논문들이 꽤 있지만 이 책처럼 ‘어떻게’에 방점을 찍어 분류한 글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아마 운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운동사 했을 때 대번 NL/PD 논쟁을 젤 먼저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는 책 저자들의 분류법과 다른 한국의 사회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논리학(사회구성체논쟁)적 측면이 부각된 정리이다. 분명 NL이냐 PD냐에 따라 방점을 두었던 운동의 부문이나 조직이 달랐기 때문에 (물론 진보정당 운동에서 한 배를 탄 역사가 있지만) 이러한 방법론이 아주 개발이 안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잘 못 들어본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두 분파 각각 운동의 장, 단점을 분석한 후 이 두 신념의 융합이야말로 미래 운동의 나아갈 길이란 것을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여 보여준다.

이후 저자들은 4~10장에 걸쳐서 피벤식 운동을 좀 더 분석하여 이 운동이 어떻게 사회변화를 촉진시켰는가를 실증해낸다. 앞 1~3장에서 운동을 시대와 상관없이 대조적으로 분석했지만 현재 전 지구적 대세(?)는 아마도 피벤식 운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노조 등 앨린스키주의자들의 조직운동의 힘은 1900년대 초중반 최고조였고 현재는 많이 제도화되어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들은 먼저 피벤식 운동이 독재에 맞서는 운동뿐 아니라 소위 민주화된 사회에서 역시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을 미국의 동성결혼합법화 운동의 예를 통해 보여준다. 이후 피벤식 운동에서 중요한 키워드들, 즉 상징성(간디와 킹의 합의가 실제로는 노력한 것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이었지만 합의를 끌어냈다는 상징성이 장기적으로 운동을 승리로 이끌었던 점), 불복종(승리한 여러 봉기들은 사회규범의 규칙을 파괴하고 그 가운데 희생을 감수하며 이를 통해 차차 수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가는 전술이 강력한 방식으로 결합되었을 때 나타남), 계기가 되는 극적 사건(이런 도화선이 되는 사건의 발생은 운동 단체들에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아니면 적어도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술과 상호작용함), 양극화 전략(화합을 강조하는 주류 정치와 다르게 사회운동은 한쪽 끝을 잡아당겨 중심을 이동시킴), 규율(폭력 및 도덕 일반에 대한 전략적 규율)에 관해 정리한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봤다. 한국의 사회운동을 민주주의의 중심축으로 놓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을까를 제시하기 위해 이 책과 같이 계보를 그린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별로 없지만 저자들이 미국의 사회운동을 정리한 것처럼 딱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당장 2016~2017 박근혜 퇴진 촛불운동만 하더라도 집회 주최측이었던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4.16연대,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중총궐기본부, 백남기투쟁본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의 단체가 연대하여 구성한 것으로 주축이 된 단체들 대부분이 탄탄한 조직 구조를 갖춘 경륜 있는 조직들이다. 물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이런 사회운동단체들의 리더십이 약화되어 왔고 그 이후 대규모 시위들이 SNS 등을 통해 보다 자발적이고 더 광범위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리더십의 상당 부분이 민주당 및 지지자 그룹과 친여 방송들로 옮겨간 점 등을 봤을 때 이는 피벤이 얘기한 민중들의 삶을 지배했던 규칙과 제도적 틀을 거부함으로써 정상상태를 뒤엎으려는 참여자들이 새롭게 리더십을 장악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피벤식의 운동이나 조직은 아직 한국의 경험으로만 본다면 이제 막 태동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경험이나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경험에서 최근 사회를 진보하게 하는 추세인 대규모 시위는 한국에선 (물론 이들이 주도해서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앨린스키식 조직기반 단체들이 이끌고 있고 오히려 소수자 문제나, 군사주의 문제 등 한국사회에서 잘 다뤄지기 어려운 비주류 이슈들을 기존의 전형적인 조직과는 다른 형태의 활동가 네트워크들이 소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들이 대규모 조직화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촛불과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이긴 하지만 퀴어퍼레이드는 그 규모 면에서 현재 놀라운 확장력을 보여주고 있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정국에서 전투경찰의 병역거부로 보여주었던 병역거부운동의 규모 있는 농성 등 눈여겨 볼만한 장면들은 물론 꽤 있다) 여러 분야에서 퍽 유의미한 사회적 발전을 이뤄내고 있기는 하다. 특히 성소수자, 동물권, 반전운동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운동단체들과 운동방식의 등장은 눈부시다.

여러 지부와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기존 단체들은 그 경직성이 새로운 아젠다에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 사회운동의 역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있다면 운동 단체들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공을 들여야 하는지 알 것이다. 그러니 어떤 새로운 아젠다를 단체의 새로운 운동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려면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니 시급성을 요하는 아젠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때로는 오랜 토론과 숙고를 통해서 새로운 아젠다를 받아들인다 하여도 단체 내부의 여력이나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다.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인력이나 재정, 기타 여러 자원 면에서 운동단체들은 우리가 무너뜨리려고 하는 대상 대비 여러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피벤식 조직들은 어떨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요즘 내 고민과 가장 맥이 닿고 고민과 반성이 많이 되는 부분이 양극화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책의 사례로 소개된 미국의 액트업(에이즈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에 맞서는 국제 직접행동 단체)처럼 전쟁없는세상과 같은 한국의 많은 피벤식 단체들이 양극화 전략을 그들의 주요한 운동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양극화 전략이란 의도적으로 기꺼이 편을 나눔으로써 항상 대중이 그들을 주목하게 만들고 당국의 무시와 묵살의 부당함을 세상에 드러내 마침내 그들이 주장하는 대의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운동의 방식이다. 이 전술은 특히 어떤 문제에 대해 사회가 광범위하게 침묵과 무관심을 보일 때 가장 빛이 날 수 있다. 가려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단숨에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운동의 초창기를 생각해봐도 (물론 그 이전 60년간의 여호와의 증인 수난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소수의 병역거부자들이 몰고온 사회적 논쟁은 엄청난 것이었다. 일부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감옥에 가기 때문)에 찬사를 보내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무모하고 정신나간 빨갱이 취급을 하였다. 덕분에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쪼랩 신생운동은 그 해 각종 티비 교양, 토론프로그램의 도장을 깨고 활동을 시작한지 3년째 되던 해부터 재징집되지 않는 최저형으로 형량이 줄어들고 행형시설 내에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종교집회를 허용되는 등 실질적인 성과들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내부에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책에서 사례로 든 어스퍼스트와 같은 심각한 위기상황(나무에 못밖기 전술로 예상치 못하게 안전사고가 나고 대중이 등을 돌림)을 겪지는 않았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입대일이었던 2004년 8월 23일, 이원표씨가 입영거부를 선언하며 입영영장을 찢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입대일이었던 2004년 8월 23일, 이원표씨가 입영거부를 선언하며 입영영장을 찢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양극화 전략은 운동이 갈등상황을 영리하게 이용해 대중(기존의 무관심층)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구사하는 양극화 전략이 이 점에서 효과적인지 객관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적대적인 사람들을 더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운동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병역거부운동은 무모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는데(지금도 듣고 있고)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여론은 우리들의 주장에 더 크게 호응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 지금은 운동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승리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지만 당시 과거로 돌아가면 어떨까 다시 생각을 해봤다. 아마 이 운동에 몸담았거나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불킥 할만한 에피소드를 다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들은 병역거부 문제를 단체의 메인 캠페인으로 홍보하는 것이 회원증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회원감소에 일조했다고 얘기해 준 적이 있고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물론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자신들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괜히 이 문제로 시끄럽게 하는 것이 실제 대체복무제 도입에 도움이 안되지 않냐는 얘기를 건네신 적도 있다. 마땅한 답이 딱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마도 이 과정에서 정답이란 없을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의 비폭력트레이너네트워크 망치에서는 이 과정을 돕기 위해 좀 더 정교한 워크숍 툴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어렵겠지만 언론이 우리의 얘기를 얼마나, 어떻게(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보도를 해주는지 잘 모니터링하고 객관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운동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책에서도 제안하고 있듯이 두 운동 조류(앨린스키와 피벤) 사이의 교류와 협조가 더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병역거부 운동도 감옥에 가고 수감자를 지원하고 거리에서 직접행동을 하는 것은 전쟁없는세상의 몫이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한 입법 캠페인에서는 민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수적이었다.

코로나시대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사 놓고 못(안)읽은 책 도장깨기 프로젝트’ 두 번째를 마쳤다. 책이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하지만 안에 담긴 정보가 새롭고 사회운동을 하는(관심있는)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다 소화하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강추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으로서, 사회운동가로서 내 한계를 돌아보게 해주며 따라서 어떻게 협동해야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위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그림을 보게 해주어 작지만 한발짝을 나아가게 해준다. 저자들 천재인가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