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큐플래닛> 진행자)

대규모 전염병의 유행과 같은 사회적 재난은 그것이 매우 부정적인 현상인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이 공통의 경험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에 참여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평소보다 위생에 더욱 신경 쓰기를 요구받거나 혹은 그럴 필요를 느끼니 말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느냐를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다. 같은 바이러스를 마주해도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나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년인구가 감당해야 할 위험은 더 크다. 나는 재택근무와 외출자제가 권유되고 규모와 상관없이 여러 행사들이 취소되는 지금의 상황이 사람들이 전례 없던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게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절은 오직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새로운 게 아닐 수도 있다. 휠체어 사용자를 극도로 배제한 도시구조는 애초에 그 사람들이 집밖에 나오는 것조차 어렵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19의 유행이 성소수자들에게 특별히 미친 영향이 있을까. 사실 남성 동성애자로서 나는 신종 전염병이 심각하게 유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에 따른 위험과 더불어 혹시나 이 상황이 혐오를 증폭시키진 않을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 ‘HIV/AIDS’가 미국을 휩쓸고 에이즈가 ‘게이들의 질병’으로 낙인찍힌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HIV/AIDS가 이성간의 성적 접촉이나 수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파됨이 후에 밝혀지긴 했다. 한번 생긴 낙인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HIV/AIDS는 동성 간 성행위로 전파되는 바이러스라는 편견이 강하게 남아 있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 보수 개신교계는 이 낙인을 이용해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선동을 지속했고, 이는 ‘감염병’이 동성애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처럼 남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우려는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5월 이태원의 한 클럽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녀간 이후에 국민일보는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후에 제목의 ‘게이클럽’은 ‘유명클럽’으로 변경되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형국이었다. 사람들이 보도에 주목하자 사실상 내용은 다를 게 없으나 제목만 더 자극적으로 지어진 타 언론사의 파생기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국민일보도 다를 건 없어서 ‘남성 동성애자 활동 패턴 알아야 코로나19 막는다’는 황당한 제목의 후속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상 인터넷 타블로이드지나 다름없는 인사이트의 경우 해당 사태와 관련한 여러 자극적인 파생보도를 지속하다 결국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난리인데 반나체로 광란의 ‘클럽 파티’ 연 게이 배우’라는 도무지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를 기사를 냈다.

사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코로나 19가 특별히 동성애자들을 더 노리는 게 아닌 이상, 해당 클럽이 ‘게이클럽’인지 확진자의 성적지향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중요하지도 않을 분더러 사실은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해한 정보이기도 하다. 우선 이런 식의 보도는 검진이 필요한 사람이 아웃팅의 위험 때문에 움츠러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 날 이태원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고 감염자라는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필요한 검진을 저어할 수 있다. 즉 방역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는 뜻이다.

또한 바이러스와 사회적 소수자를 연결 짓는 행위는 강한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유해하다. ‘혐오’가 오염·불결함·취약함과 같이 부정적인 가치들을 소수 집단에 귀속시키고 이를 사회와 분리하려는 행위라는 점에서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조이여울은 자신의 책 ‘나는 뜨겁게 바라보고 차갑게 쓴다’에서 이러한 현상을 아주 명쾌하게 기술한 적이 있는데, 해당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저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저런 고통을 겪는 거야’라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 즉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심시키기가 용이해진다. 동서양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이러한 심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된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정서가 전염병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까. 그럴 리가.

어쨌거나 앞서 말한 아웃팅의 공포는 게이 커뮤니티 내부를 한 차래 휩쓸고 지나갔다. 누군가는 ‘당신이 동성애자라도 그 날 이태원에 없었다면 당당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게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장 ‘이태원 클럽’과 ‘코로나 19’를 떠올리는 상황에선 전혀 그렇지가 않다. 개인적인 사례를 들자면, 나는 이태원에 방문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그럼에도 심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동성애자임을 아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염려스러웠다. 평소에는 프라이드 플래그나 ‘I’m Gay’와 같은 문구가 새겨진 옷을 개의치 않고 입고 다녔지만, 한동안은 옷장 앞에서 망설이길 반복했다. 이런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탔을 때, 무슨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 아닌가. 나는 커밍아웃 이후 딱 한번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는데, 바로 2015년 올란도의 게이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였다.

지금의 시국에선 당연한 일이지만 이태원의 클럽은 모두 문을 닫았고 종로 3가와 같이 게이들이 밀집하던 곳에도 성소수자들은 잘 방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코로나 19가 종식된 이후에 이런 상황이 변화할 지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뉴스를 통해 게이클럽들이 전국으로 생중계 되는 걸 바라본 동성애자들이 이전처럼 이태원과 종로를 찾을 수 있을까. ‘출근을 하지 않는 누구누구는 혹시 이태원에 갔다 와서 자가 격리 중인 게 아니냐’는 말들 속에서 두려움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숨긴 채 사람들 속에 섞여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운이 나쁘면 언제든 발각될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더 이상 게이업소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싶진 않다.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력이란 때로 상상을 뛰어넘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불확실한 예측이나 정리된 결론보다 공동체를 향한 조언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그에 따라 증폭된 혐오 속에서 많은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혹 누군가는 이 파국이 공동체와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남겼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혐오가 방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분더러 사회에 유해함을 주장했던 언론과 기관들도 존재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연대를 통해 작금의 상황에 대응하는 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무관심과 무기력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공동체의 변화와 진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발전의 토대에는 성소수자의 인권증진과 혐오대응을 위한 지금까지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게이들을 비롯하여 성소수자들은 언제고 가십의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호출될 것이다. 이번 사건이 특별한 예외는 아니다. 소수자라는 우리의 위치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혐오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예측 가능한 미래다. 하지만 가십은 빨리 끓어오르는 만큼 같은 속도로 가라앉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한마음을 먹은 듯 성소수자를 지탄하다가도 다른 이슈에 관심을 돌리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성소수자에게 보다 평등하고 혐오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가십은 순간이지만 운동은 지속된다. 그리고 그 운동은 티가 나지 않을지 몰라도 사회를 조금씩 바꾼다. 그러니 이것만은 약속하고 싶다. 지금과 같은 위기는 또다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