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결의안 채택에 부쳐
지난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세계인권선언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또한 앞서 채결된 결의안에 따라 자국의 현행 법률과 관행들을 재검토하지 않은 국가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재차 촉구하고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아래 연대회의)는 이번 유엔인권위원회의 결의안을 적극 환영하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박탈해온 한국 정부에 대해 이번 결의안에 대한 즉각적인 국내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올해 유엔 결의안은 공동제안국이 지난 2002년의 14개국보다 20개국이 늘어난 34개국에 달했으며, 이라크 침공으로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해 있는 미국까지도 유엔인권위에서 발언을 통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의 정당성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지지가 재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평화시 뿐만 아니라 전쟁시의 병역거부권이 결의안에 언급됨으로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해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임이 다시 한 번 천명된 셈이다. 이로써 소위 ‘국가안보’ 혹은 ‘한반도 분단 상황의 특수성’이라는 미명으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을 정당화 해왔던 정부와 국방부의 논리는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연대회의는 이번 결의안 내용 중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면, 복권을 권고한 조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연대회의를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에서는 새 정부 들어 여러 차례에 걸쳐 병역거부 수감자들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해 왔으나 정부는 아무런 납득할 만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들을 제외해 왔다. 이번 결의안에도 나타나듯이 병역거부 수감자들에 대한 사면·복권은 이제 현실적 고려의 문제가 아닌 당장 시행해야할 ‘원칙’이 된 것이다.
비록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는 하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년 700여명의 젊은이들이 감옥으로 향하고 있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보편적인 인권의 하나임이 분명하게 확인된 지금, 헌재의 결정을 무작정 기다리기 보다는 정부와 국회가 먼저 제도 개선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첩경일 것이다.
따라서 연대회의는 정부와 국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당사국이자 유엔인권위원회의 위원국으로서 이번 결의안의 채택에도 참여한 한국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말로만 인권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관련 국내 법률과 관행에 대한 조속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제인권규약과 결의안 내용을 “국내적으로 이행”해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재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500여 병역거부 수감자들과 병역거부 전과자에 대한 사면·복권부터 실시해야 한다.
또한 금번에 새로 출범한 17대 국회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미루기만 하지 말고 하루 빨리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는 현실적인 제도 마련에 착수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2004. 4. 21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