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폭력에 반대하며 비건 실천을 하고 있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

 

 

2021년 1월 27일 대체역심사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 곧바로 행사에서 발표를 해야 돼서 다음날 전화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뒤 통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아 병무청에서 전화 왔어.”라고 하자 주변에 있는 활동가가 “너 군대 가?”라고 말했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병역의 대상이 아닌데, 병무청에서 전화가 온 것이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뭔가 모르게 ‘동원’되는 느낌

당시 내게 전화가 온 이유는 병역거부를 하는 친구를 지지하기 위해 작성한 주변인 진술서 때문이다. 주변인 진술서를 부탁받은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들었다. 평소 내가 어떤 위치에서 병역거부에 연대하며 언어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상상하곤 했다. 그 고민이 무색하게도 진술서를 작성하는 주변인의 역할은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병역거부를 하는 친구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설명해야 될 느낌을 받아 이걸 왜 해야 되지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에게 3명의 주변인 진술서가 필요하다는 점도 납득하긴 어려웠다. 한국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그 상황에서 주변인에게 병역거부의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설명을 하더라도 주변인에게 구체적 언어로 지지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현실 탓에 어쩔 수 없이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의 ‘양심’도 함께 탈탈

본격적으로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병무청은 ○○○(친구의 이름)이 어떤 사람인지만 궁금했을 것이다. 그 내용만 적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친절한’ 어투로 하고 싶은 말을 풀어냈다. 주변인 진술서의 전체 구성은 자기소개,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이유, ○○○(친구의 이름)은 어떤 사람인지 순으로 나누어 적었다. 내가 언제 병무청에 공식적으로 이런 자료를 내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비남성이면 군대에 대한 공식적 발언권이 없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들 본 진술서의 취지가 ‘주변인이 목격한 대체역 신청인의 양심’의 입증이라서 진술서를 적는 내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진술인으로서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되는 말이 나누어진 상황이 불편했다. 내가 뭔가 잘못 말해서 친구의 심사에 불이익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들었다. 대체역 심사 과정이 병역거부자 한 명의 ‘양심’을 심사하는 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망을 모두 들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약속한 당일이 되어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사실 전화하기 전까지는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떠올렸고, 안 좋은 영향 끼치는 건 아닐지 여러 번 고민했다. 막상 전화를 하니 예상과 다르게 이런 걸 왜 물어보나 싶은 것들을 물어봤다. 특히 친구가 비건 실천을 하고 있어서 ‘식사를 할 때 채식을 중단하고 육식을 하는 것을 본 적 있냐’, ‘○○○(친구의 이름)의 신념이 무엇이라 보는지 동물권, 인권, 비폭력, 평화주의 중에서’는 질문을 비롯해 ‘(게임을 하는지를 물어보고 하고 싶어 보임) 놀거나 그런 거에는 관심이 없었나’ 등 친구의 폭력성과 평소 성품, ‘양심’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주변인 진술서에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이유(군대와 사회의 폭력적 문화와 위계, 군대와 학교의 닮은 점, 시대적 흐름과 변화 등)를 자세히 적었지만 딱히 ‘나’의 지향과 입장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없었다. 이런 점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또 대답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도 기분이 찝찝했다. 사회 대부분의 제도가 폭력을 용인하면서 대체역 신청인은 100% ‘무해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양심’을 팔아먹어야 되는 것 같았다. 대체역 신청인을 보조하는 역할 이상으로 나의 말이 영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통화를 마쳤다.

 

모두의 병역거부를 바라며

이번 과정에서 확실하게 든 생각이 있다. 대체역 도입은 환영할 일이지만, 과거 병역거부운동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한 고민의 지점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거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갔을 때 감정노동과 후원 등의 역할은 주로 ‘여성’이 담당해왔다. 지금은 병역거부자의 주변인들이 군대를 거부하고 대체역을 수행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도구이자 ‘친절한’ 진술을 했다고 병역거부 당사자를 안심시켜주는 역할에 놓여 있다. 필요한 역할이지만 드러나지 않고, 중요한 진술을 하지만 정작 그 진술의 주체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특히 ‘여성’은 병역 대상이 아니기에 진술을 하는 것 자체가 ‘손해 볼 것’이 없고, 딱히 정치적인 영향력이 없는 위치에 놓여있다고 느껴졌다.

이중적이게도 스스로 병역거부를 더 ‘가오’ 있게 하고 싶다 생각도 있었지만, 군대를 이미 다녀온 남성이 주변인 진술서를 적는다면 더 ‘진정성’ 있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구에게 주변 ‘남성’들에게 받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고 그런 ‘남성’들보다 ‘(청소년)인권활동가’이자 ‘논바이너리’인 내가 더 멋지게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오기가 생겨서 수락했다. 최대한 열심히 작성하고 전화인터뷰에 응했지만 심사구도 하에서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진짜인지 정도만 확인할 뿐이었다.

이외에도 친구가 주변 ‘남성’들에게 주변인 진술서를 받는데 왜 실패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겼다. ‘군대를 다녀온 자신의 이야기가 병역거부자의 양심 심사에 더 힘이 실리는, 예비역 특권을 행사하고 싶지 않은 성찰 때문일까?’,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주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더 커서일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변인이 되었을 때 ‘가오’ 안 사는 역할에 굳이 마음 써가며 하지 않는 이 사회 ‘남성’들의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짐작해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주변인 진술인 성별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 문제가 더 현실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병역거부는 단지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선언만이 아니라 ‘남성’으로서 가지는 권력을 내려놓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비남성들의 이야기가 그저 ‘주변인’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가오’있는 역할도 해보면서 ‘가오’의 위계 자체에 질문이 필요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이 얼마 없기에, 엄격한 잣대를 요구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단단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의 연대와 흔적을 남기 것이 필요하다. 대체역 도입으로 병역거부운동이 사회에 더 많은 ‘혼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갈 운동에 더 연대하고 싶다. 대체역 제도가 가지는 한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무너뜨리며 전쟁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