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10zzung@hanmail.net)

 

‘전문시위꾼’. 축적되었던 사회적 모순이 격렬한 저항으로 드러날 때, 그 저항에 앞장선 활동가들을 보수언론들은 이렇게 일컬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전문시위꾼’이 주동하는 싸움이라고, 그러니까 순수한 운동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프레임에는 ‘순수한 사회운동은 전문적인 전략∙기획∙조직 등과는 상관없는 것이어야 하며, 오직 열정과 의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일도 열정이나 의지만으로 성공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사회운동은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매우 복잡한 일이다. 열정만으로 잘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전문시위꾼’이라는 말은 활동가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일종의 극찬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자신이 ‘전문시위꾼’인 것이 아니라 ‘전문적이지 못한 시위꾼’이라는 점이다. 왜 내 활동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SNS에 회자되지 않으며, 참여자들을 더 많이 모으지 못하고, 국회나 정부에 닿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더 전문적인 시위꾼이 될 수 있을까.

 

비폭력 직접행동은 철저한 기획과 준비의 결과였다

내쉬빌 스틸컷05

<내쉬빌-우리는 전사였다>라는 영상은 흑인 민권운동이 벌어지던 미국 남부 내쉬빌 지역의 비폭력 저항행동을 담은 짧은 영상이다. (24분 56초짜리인데, 화질은 조금 떨어져도 이야기는 짜임새있다. 출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또는 점심 먹고 한숨 돌리면서 보기에도 딱 좋다. 영상보기 클릭!)

당시의 내쉬빌은 완고한 인종분리 사회였다. 한 지역 안에서도 흑인과 백인은 다른 세계에 살았다. 흑인 대학생들은 백인이 가득한 가게에 들어가 앉는다. 아주 단순한 행동,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비폭력적 행동이지만 이것은 명백한 저항이었다.

감히 흑인이 옆자리에 앉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백인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은 흑인 청년들을 체포한다. 그러나 청년들은 이에 맞서 주먹을 들지 않는다. 그저 다시 가게에 들어가고 다시 체포될 뿐이다. 이슈는 점점 전국가적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인종분리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결국 내쉬빌의 인종분리는 사라졌다. 흑인들의 직접행동이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비폭력 저항행동인데, 자신들이 ‘전사’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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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담고 있는 내쉬빌의 저항행동은 흑인 청년들이 완고한 인종분리 정책을 무너뜨리는 투쟁이다. 이는 동시에 이 청년들이 시위꾼으로서 전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의 저항행동은 ‘전문시위꾼’들이 철저하게 준비해서 기획한 결과이다.

청년들은 비폭력 워크샵에서 직접행동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모욕적인 혐오 발언을 듣고 물리적인 제재를 당하면서도 참고 버티는 것도 훈련에 포함되는데, 그 강도가 많이 높다. 실제 상황이 아닌 훈련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를 지켜보는 내가 다 힘들 정도다. 실제로 벌어질 폭력을 예상하면서 심지어 이를 감수하기 위해 훈련 받는 사람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들은 아무 가게나 들어가지 않는다. 목표에 맞는 타겟을 고른다. 한 그룹이 체포되면 바로 이어서 다른 그룹이 가게에 들어가도록 그룹을 여럿 만든다. 상황을 지켜보고 다른 교회에 전달하는 관찰자도 따로 있는데, 이들은 공중전화로 앰뷸런스를 부르기 위한 동전도 준비하고 있었다. 만반의 상황에 대비해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이들이 끊임없이 잡혀가면서도 저항을 이어간 것은 사전에 이렇게 활동가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가게에 들어가는 청년들은 깔끔한 정장을 입기로 한다. 백인들이 ‘더러운 옷을 입어서 같이 있기 싫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2명씩 짝을 지어 앉되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또는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으로 짝을 짓지는 않는다. 당시 민권운동 진영은 아직 인종간의 성적 결합 이슈까지 다룰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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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운동의 활동가들은 어떤 이슈를 다룰 것인지, 어떤 이미지로 자신들을 드러낼 것인지, 어떻게 공동체를 조직하고, 어떻게 협상할지 알고 있었다. 이런 역량을 토대로 효과적으로 운동을 펼쳤고 성과를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잘 준비된 전사였다”. 웨스트포인트 육국사관학교와 견줄 만한 비폭력사관학교와 같았다는 것이다.

영상에서 비폭력직접행동을 설명하는 주된 논리도 바로 이러한 효과성이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을 때 반격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게 더 효과적인 대응이라는 설명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비폭력직접행동은 얌전히 다른 뺨도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다른 무기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뺨을 때린 사람은 나보다 강한 사람이고, 그 사람을 때리는 것은 별로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이 계속될 빌미만 제공할 수도 있다.

내쉬빌의 경찰은 쉽게 무력화되었는데, 이는 활동가들이 경찰보다 더 센 물리력을 행사해서가 아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을 체포해도 다음 그룹이 다시 가게에 들어오고 기꺼이 체포되는 상황에서 경찰의 힘은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폭력은 ‘폭력으로는 도저히 권력층, 기득권층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시위꾼의 전문성은 거저 주어지지 않기에

내쉬빌 투쟁은 약 60년 전에 벌어졌다. 그래서 영상에 나오는 일부 투쟁 방법들은 지금과는 잘 맞지 않는다. 2021년의 한국 활동가들이 사용할 투쟁 전략과 방법론은 1960년 내쉬빌 활동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시위꾼에게 훈련은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더더욱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억압은 좀더 교묘해지고 사회문제는 훨씬 복잡해졌으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나를 포함한 많은 활동가들이 관성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늘 하던 똑같은 방식으로 규탄 기자회견과 집회를 하고 농성장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개인 활동가들의 문제는 아니다. 하루하루 바쁘고 빠듯한 상황에서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이 시위꾼이 하는 일이니까. 시위꾼이 갖춰야 할 ‘전문성’의 핵심이 사회 정세와 운동의 동력을 분석하는 역량, 그에 따라 적합한 직접행동을 기획하는 역량,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역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전문성이 그러하듯 이러한 역량들도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더 많이 공부하고 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전문시위꾼이 필요하다. 시위꾼의 전문성을 기를 훈련의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더 많은 시위꾼이 전문적으로 사회를 바꾸기를 바란다. (전쟁없는세상의 ‘비폭력 트레이닝’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레이닝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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