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연대)

 

 

미얀마 민중의 저항을 두고 한국인들의 관심이 뜨겁다. 아마도 과거의 한국인들이 현대사의 여정에서 겪었던 일들과 지금 미얀마의 상황이 흡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5월을 맞이하여, 각계 각층에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지가 쇄도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쉽지 않다. 지난 2월 쿠데타로 인해 미얀마의 헌정 기능이 마비된 이후, 지난하고 처절한 민중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은 각지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갔지만 군부는 잔혹한 진압으로 일관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7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2,7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공식 집계 이외에도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의 현대사는 매우 복잡하다. 미얀마는 아웅산 장군을 필두로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독립 투쟁을 쟁취했지만, 정부 수립 직전 아웅산 장군이 신원불명의 괴한들에게 암살당한다. 이후 아웅산 장군과 함께 했던 독립투사들은 군부를 형성하고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만들어 군사독재를 실시한다. 이들은 1988년까지 사회주의 연방을 존속시켰고, 이후 버마가 미얀마 연방 공화국이 된 이후에도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인 이승만이나 김구가 독립 직후 암살당했고, 광복군의 일부 파벌이 국가를 장악한 뒤 독재를 실시함으로써 국가 곳곳의 이권을 장악하고 민중의 자유를 빼앗은 셈이다.

그와 동시에, 미얀마 군부는 130여개에 달하는 미얀마 국내 각지의 소수민족의 저항을 억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인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버마족들은 사회 안정을 요구하고 있고, 자연스레 소수민족 탄압에는 이중적인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미얀마 군부는 오랫동안 미얀마를 통치해 왔다. 이 패러다임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 경제 파탄을 원인으로 하여 발발한 1988년의 8888 항쟁이다. 미얀마의 저항은 그래서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군부는 국가 정통성을 어느정도 보장받고 있고, 군부에 저항한다는 것은 국가의 근원을 건드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2월 미얀마 민주화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쿠데타군에게 감금되었다. 군부는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시위는 일파만파 퍼져갔다. 이 이후부터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뉴스에서 접한 대로다.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복잡한 미얀마 국내 정세를 설명하기 위해 서두가 길었는데, 이러한 미얀마의 상황에서 눈에 띄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광범위한 탈영병들의 발생이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군부는 시민들의 평화적 저항에 잔인한 탄압을 자행했다. 이 와중에 일부 군인들은 진압 명령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미 4월 말부터 적지않은 탈영병들이 발생했고, 국경지대의 탈영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미얀마와 인도 국경에 위치하는 인도 미조람주에는 현재 인도 정부 관할 하에 미얀마에서 넘어온 난민들의 수용소가 생겨났다. 그곳에는 미얀마에서 군인과 경찰로 복무하다가 탈영한 사람이 공식적으로도 500명이 넘어선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린 텟 아웅 대위도 이 시기 즈음에 탈영한 케이스다.

 

탈영하여 시민불복종에 합류한 린 텟 아웅(Lin Htet Aung) 대위. 출처 : 트위터

탈영하여 시민불복종에 합류한 린 텟 아웅(Lin Htet Aung) 대위. 출처 : 트위터

 

해군 출신이지만 시민방위군에 합류한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병과에 관계 없이 탈영병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탈영병 일부는 시민방위군을 위시한 시민불복종 운동이나 소수민족 저항군에 가담하지만 모두가 무장 투쟁에 합류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매체 Deutsche Welle(이하 DW)의 지난 주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와 인도 국경지대에 은거하고 있는 군인들도 있다.

미얀마에서 탈영은 중죄로 취급되어 대개 사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3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탈영병은 실제로는 종신형을 받는다. 탈영한 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은 지휘관에 의해 사생활 대부분을 제한받으며 모든 SNS 활동을 통제받는다고 한다. 군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감시당하며, SNS에 정치적인 글을 올릴 경우 3~4주 가량 감옥에 수감 될 수 있고 진급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군 병력은 사유화 되어 부대 지휘관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군부는 사실상 국가 내의 국가로 존재한다. 미얀마 군대는 두 개 이상의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고, 이 기업들은 군인들을 착취하고 또 이익을 군부로 전달하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군인들은 군부가 소유한 생명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미얀마 이코노믹 홀딩스(Myanmar Economic Holding Limited, 약칭 MEHL. 이 회사가 한국의 포스코와 합작하고 있다)과 미얀마 경제공사(Myanmar Economic Corporation, 약칭 MEC)의 주식을 강제로 구매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군인들에게는 매우 적은 배당금이 주어진다. 많은 고위 군인들은 전역 후 이 회사들의 고위직을 역임한다. 초급 장교들은 10년이 지나면 전역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역 신청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3~4년 가량을 더 복무해야 한다고 한다.

군부는 국가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있고, 불교 국가로서의 미얀마를 수호한다는 명분 하에 다양한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해왔다. 그렇기에 군부는 국체를 흔드려는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과 이교도인 무슬림을 반대하는 선전을 계속 해 왔다. 많은 군인들이 군 수뇌부의 이러한 선전에 세뇌를 당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수년 전 학살당한 로힝야족도 “테러리스트”라고 여기게 되었다. 최근에 이어진 탈영의 행렬 이전에, 이미 수년 전 로힝야족 학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군인들이 탈영한 사례가 존재한다.

미얀마에서 탈영한 군인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 또한 박해의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이미 군부는 많은 숫자의 주요 탈영병 명단을 확정해 놓았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연락하여 탈영한 이들을 뒤쫓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탈영병들은 탈영과 동시에 가족들과의 연락을 끊는다고 한다.

DW의 보도에 의하면 탈영병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더이상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아서 탈영했고, 그와 동시에 훗날 이 불법적인 쿠데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탈영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군부가 첨예하게 구축한 철옹성에서 모든것을 버리고 탈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탈영병들은 사회적인 위치와 가족들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곳의 내면의 소리를 견딜 수 없어 탈영한 이들이다. 이들은 다시말해 “병역거부자”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병역거부는 단순히 군 입대를 거부하는 것 만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병역거부는 현직 군인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엄밀히는 이를 다양한 병역거부의 한 종류인 “선택적 병역거부”라고 한다. 과거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 폭격을 위한 출격을 거부한 전투기 조종사들도 병역거부에 해당하고, 이라크전에서 돌아온 뒤 전쟁의 참혹함과 미군의 허상을 깨닫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거부한 미국의 군인들도 이에 해당한다. 미얀마 민주 항쟁의 현장에서 정말 많은 이들이 피흘리며 싸워가고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그 피흘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총을 내려놓고 고향을 떠난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폭력을 내던지고 평화를 찾아 떠난 이들의 정신이 항쟁을 승리로 이끄는 또 하나의 도화선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