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입니다. 봄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때부터 내내 여름 걱정만 했던 터라, 체감상으로는 이미 늦여름을 지날 무렵인데 이제서야 더위가 기지개를 펴는 것을 느낍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근육량이 부족한 탓인지 더위를 잘 타지 않아요. 함께 지내는 무리의 옷 소매는 짧아진지 오래인데, 저는 아직 긴팔을 입습니다. 4월 말부터 시작한 청소 작업 중에는 평소 찾아볼 수 없던 땀이 송글송글 맺쳐 반팔을 입죠. 하루 종일 앉아서 읽고 쓰기만 했던 생활로부터 벗어나니 체력은 약간 좋아진 것만 같고, 약간은 고된 작업에 적응해서 일도 할만 합니다. 줄무늬 없는 햇살을 대면할 수 있는 30분은 허투루 쓰는 법이 없고,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진 수용소 너머로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이 연분홍빛으로 물들 때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의 불씨가 희미하게 타오르는 걸 느낍니다.
이제는 바이러스보다 백신이 확산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건 뉴스에서 비추는 반대편 세계뿐만 아니라, 제가 지내는 세계에서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교도관들은 (1차)접종을 대부분 마친 것으로 보이고, 며칠 전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소했을 때 약간의 소동만을 거치고 나서 일과는 금세 재개됐습니다. 몇몇 철부지는 매일 뉴스에서 발표하는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 환호하지만, 예비역 신분인 또래 친구들이 백신 접종을 예약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심합니다. 처음에는 언론이 소비하는 불행에 박수치는 이들을 경멸했지만, 피해자가 없는 범죄 행위로 수감된 사람은 아직까지 저 말고는 없다는 걸 깨닫고, 제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의 영역이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6명이 지내기엔 턱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휴일을 증오하다, 올해 남은 공휴일은 추석을 제외하면 모두 주말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저의 파괴적인 면모를 발견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금요일이 끝났다고 해서 방심할 수 없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겹겹이 쌓인 시간의 벽을 뚫고 가야하는 고통에 직면하기 때문이죠.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어느새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누구도 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느낄 수밖에 없는 죄책감으로 변하지 오래입니다. 단지 먹고 싸는 문제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을 꿈꿉니다. 그래서 마르셀 트루스트의 말처럼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마음 속에서 무언가 하찮은 미친 짓들을 계속 생각해내곤 합니다. 그러다 지쳐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가만히 응시할 때면 남은 시간의 압력이 무겁게 느껴져 그마저도 멈추고, 책 속에 고개를 파묻곤 하죠. 쉽게 펼쳤던 책을 힘겹게 닫는 동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고, 도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흔쾌히 책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한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 꼼꼼히 읽는 습관을 들여 잠시나마 괴로움도 잊습니다. 가끔은 <한겨레21>에서 제가 존경하는 동료와 함께 쓴 글이 인용된 걸 발견하는 행운도 경험하곤 하죠.
현충일은 제가 이 세계로 들어온 지 만 3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안부를 묻는 말에는 더 이상 괜찮다고 답하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지 않다는 무의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괜찮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 오히려 괜찮은 순간을 더욱 소중히 만끽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랄까요. 막 시작된 여름 날씨는 결코 괜찮을 리 없겠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바람의 설렘과 함께 하시길. 잔여백신 접종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꼭 잡으시길, 철조망 없는 풍경을 저 대신 마음껏 누리시길.
2021년 6월 5일 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