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일시 장소 : 2021. 06. 24. (목) 11:00, 대법원 동문 앞

 

 

취지와 목적 

  • 오는 2021년 6월 24일(목) 오전, 대법원은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2020도17564)의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합니다. 이에 병역거부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을 현장에서 밝힐 예정입니다.
  • 지난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은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는 있어야 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또한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결정문을 통해 이 문제가 특정 종교나 교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염원인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양심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양심의 범위는 종교적 양심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 2018년 이후 무죄를 선고 받은 병역거부자는 800명이 넘지만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의증인입니다. 활발하게 평화운동에 참여해온 평화주의자들의 경우 대부분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2월에도 각자의 영역에서 사회운동에 참여한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2명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종교적 양심을 제외한다면 아직까지 한국의 대법원은 다양한 양심의 자유를 온전히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 지난 5월 31일에는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전 병역법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개정된 병역법이 병역거부자들에게도 소급적용된다고 보고, 대체역 편입 신청으로 징집이 연기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사가 이에 불복해서 항소를 했고, 이 병역거부자는 대체역 심사를 이미 통과했고 1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계속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 6월 24일 대법원 선고를 받는 시우는 평화활동가이자 연구자입니다. 지난해 11월 26일 2심 재판부는 그동안 병역거부자 시우가 여러 활동과 삶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였습니다. 
  •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병역거부자들이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받고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제공받아야 합니다. 현재 재판 중인 병역거부자 숫자는 92명입니다.( 병무청 통계). 처벌을 전제하는 형사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기준과 병역의 한 종류인 대체역 복무허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접근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 의사가 있으면 재판을 중단하고 심사위에서 판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자회견 순서

  • 사회 : 김민영(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발언 
    •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변호인) : 대법원 선고에 대한 논평
    • 이용석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과제
    • 임진광 (대체역 심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 병역거부 당사자가 생각하는 병역거부자 재판의 문제점

 

이용석 활동가 발언문

안녕하세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용석입니다. 오늘 대법원 선고 결과에 대해서는 임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잘 해줬기 때문에 저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3년이 지났습니다. 국회에서 대체복무 관련 법을 만든 것도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 법에 따라 심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고 있던 인원이 948명이었고 이들 중 현재까지 865명(여호와의증인 통계)이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시우님이 826번째이자 여호와의증인 아닌 병역거부자로는 두 번째, 적극적인 평화주의 신념을 가진 당사자로는 첫 번째입니다. 여전히 92명(4월 병무청 통계)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병역법이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온 것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미였고, 대체복무 심사를 받아서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병역거부자들에게 제공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더 이상 죄를 밝혀 처벌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아니라, 양심의 자유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사회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주권자로서 병역거부자의 위치를 명확히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병역거부자들에 헌재 결정 전에 기소된 병역거부자 재판을 이어가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의미를, 대체복무제도 시행의 의미를 퇴색시켜왔습니다. 피고인이 아니어야 하는 시민을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세웠습니다. 아마 평범한 시민들이 3년 넘게 재판을 받는 일이 그 사람들의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법조인들은 모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거나 새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는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괴롭히지는 관심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판을 중단해야합니다 검찰에서 기소중지를 하든, 판사들이 혐의없음 판결을 내리든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판을 중단해야합니다. 재판 중단이 병역거부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병역거부자들은 심사위원회에서 조사와 심사를 받습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은 이 과정에서 걸러질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병역거부 하면 감옥 가던 시절에 감옥 갈 것을 각오하고 병역거부한 이들이, 군복무보다 2배는 긴 징벌적인 대체복무를 기꺼이 하겠다는 것으로 양심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심사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결정으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100여 명에 달하는 병역거부자들이 더 이상 법원을 오가며 피고인의 신분으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격적인 질문에 시달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는 양심, 총을 드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겠다는 이들에게 대체복무의 기회가 온전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역거부자 임진광 발언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진광입니다.

시우 님의 최종심 무죄판결을 축하합니다. 유죄·무죄를 떠나 1심, 2심, 3심을 모두 끝났다는 것 자체를 축하합니다. 아직 재판도, 대체역 심사도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는 저로서는 시우 님이 부럽습니다.

저는 병역과 관련한 과도기에 혼란스러운 일들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기자신병교육대로 입대하라는 통지를 받았지만 2019년 9월 3일, 제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2018년 6월부터 대체복무 신청자 접수가 시작된 2020년 6월까지, 그 불안정한 2년 사이에 저는 입영 영장을 받았고, 입영 연기신청 시기를 놓쳐 병무청으로부터 고발당했습니다. 이후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 그리고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을 의심하며 위축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군사훈련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전쟁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독립디자인 대안대학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접했고, 학교 안팎의 성별 불균형과 관련한 문제들을 공론화하다가 병역거부를 하게 됐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앞에 두고 이런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런 저의 양심형성에 관한 이야기는 법적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모두 튕겨 나갔습니다.

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저 자신을 ‘잘못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총을 들지 않고도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법은 바뀌었고 대체복무제가 이미 시행 중인데도 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인 6월 28일은 헌법재판소의 불합치 결정이 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다음날인 6월 29일은 대체역심사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1년이 되는 날이고요. 세상이 바뀐 것 같아도 저처럼 여전히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판과 심사 이중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법원, 검찰, 대체역 심사위가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하고 고생스러운 싸움을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시우 님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홍정훈 님에게 그리고 여주교도소에 있는 오경택 님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예비군 병역거부로 재판 중인 김형수, 조성현, 이상 님 외 제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그리고 각양 각종의 병역거부자와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화로 가는 과정에 시간을 쓰는 분들이 안녕하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6월 24일
진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