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건(브루더호프 노비스)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이다. 8시 2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평화수감자의 날은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감옥 밖에서 그분들을 응원하는 날이다. 2003년부터 매년 하고 있다. 엽서도 쓰고 다양한 걸 한다. 하얀 김을 뿜으며 기다리다 열차를 탔다. 내가 애용하는 무궁화호다. 난 신이 났다. 서울은 일 년 반 만이다. 코로나 때문에 계속 못 갔었다.
서울에 가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난 2년째 대체복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난 정말 군대에 안 가고 싶은가?’ 난 입영일을 연기하려고 대학까지 다니고 있었다. 이 문제는 중요했다. 난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병역거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걸 얼마 전에 알았다. 그렇다고 바로 포기하기는 싫었다. 군대에 가든 병역거부를 하든 확신을 가지고 하고 싶었다. 어중간한 마음으로 하면 삶도 어중간해지니까.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내가 왜 군대에 안 가려 했는지. 왜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혼자 고민하려니 막히는 게 많았다. 서울에 가면 얼굴 보고 얘기할 수 있다. 기회였다.
30분 모임 장소로 갔다.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 홀이었다. 전화해서 먼저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상담을 바란다고 하자 흔쾌히 좋다고 했다. 몇몇 분들이 책상과 의자를 놓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했다. 줌으로만 보던 얼굴들을 직접 보니 즐거웠다. 난 시간이 될 때까지 한쪽에서 오리님과 얘기했다. 오리님은 내가 하는 고민은 좋은 거라고 하셨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묻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옥 생활이 힘들어 중간에 마음을 바꾼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격려됐다. 난 평화주의 진영의 주장과 군대론 진영의 주장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책이 있냐고 물었다. 난 양쪽의 말을 같은 책상에 올려놓고 비교해보고 싶었다. 평화주의의 이런 말을 군대론은 어떻게 반박하는지. 그 반박을 반박하는 식으로 누가 더 본질에 가까운지 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그런 책은 없다 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책은 많다. 군대를 찬성하는 책은 거의 없다. 한 분은 읽을 거면 손자병법을 읽으라고 하셨다. 진담 반 농담 반이었다. 그 정도로 책이 없다는 뜻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군대 가는 게 당연한 나라다. 굳이 정당성을 찾지 않아도 된다. 없어도 다 가니까. 아쉬웠지만 다른 책을 많이 소개받았다. 오리님의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현대 군대는 국방의 개념을 벗어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려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개념이 바뀌면서 군대의 국가 방어 개념도 바뀌었다. 난 이것에 대해 잘 모른다. 공부해볼 만한 주제다. 미국이 세계에 군대를 주둔시킨 이유가 자기 땅 지키려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오류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힘이 다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행사는 오후 3시에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과 인사하고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했다. 행사는 평화수감자의 날 역사 소개, 감옥에 계신 홍정훈, 오경택님의 편지 낭독, 두 분에게 엽서와 카드 쓰기였다. 평화수감자의 날은 2003년 ‘총을 내리자’ 문화제로 시작했다. 매년 12월 1일에 한다. 10년 전 사진들을 봤다. 사진 속 전쟁없는세상 분들은 젊었다. 자전거 타기 캠페인을 한 해도 있었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추웠다고 몇 번을 반복하셨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른 해도 있었고 이번처럼 엽서를 보낸 해도 있었다. 대체복무가 시작했지만 아직도 감옥에 있는 분들이 있다. 홍정훈님과 오경택님이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주셨다. 감옥이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난 감옥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 면회도 안 가봤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두 분이 안팎으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무사히 견디기를 바랄 뿐이다.
신념을 위해 감옥에 가신 분들을 존경한다. 그분들이 품은 뜻이 알고 싶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만한 희생을 치른 것이라면 결코 가벼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의 얘기는 내 고민에 큰 도움이 된다. 나중에 들을 기회가 오면 좋겠다. 홍정훈님과 오경택님을 생각하며 다 함께 엽서를 만들었다. 작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벌써 5시다. 시간 가는 게 금방이다. 요즘 들어 더 그렇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막혔던 고민을 풀 실마리도 찾았다. 이런 시간이 모여 답이 되어 가는 거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 헷갈릴 때는 그걸 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내년쯤에 서울로 침대를 옮길 생각이다. 생각대로 된다면 전쟁없는세상와 다른 여러 활동을 같이 해보고 싶다. 만남은 즐겁다. 기다림 끝의 만남은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