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택(병역거부자)

 

 

벼락 같이 통보받은 가석방에다 하루 전날 선발된 출소 전 귀휴로 교도소 문을 나온 지가 벌써 한 달이나 됐네요. ‘싸제’ 공기를 들이켜자마자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다시 부자유한 한 주를 보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락하고 오붓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출소하고 일주일 이내에 감사한 분들께 연락을 드리자’는 나름 원대한 포부를 품었습니다만 아픈 채로 다짐했던 그 시간을 보내고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있네요.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끊어지고 흩어진 이전의 일상을 주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빌려 출소 인사와 한분한분 연락드리는 일이 늦어져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출소하던 날, 올림픽대로 위에서 저 멀리 63빌딩을 본 순간이었어요. 지난 1년이 마치 없던 일처럼 쪼그라들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종종 보던 풍경을 보자마자 그 당시엔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겹던 수감생활이 기껏해야 3주 정도의 출장처럼 짧게 느껴졌어요.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재빠르게 고단했던 기억들을 끊어내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안에서는 나가서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 같았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 누가 묻는 말에도 어떻다 저떻다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귀찮음인지, 마땅한 언어를 만들지 못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탓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늘 그렇듯 이 세 점의 무게중심 언저리에 자리한 마음이겠지요.

지난 일 년의 기억과 감상이 벌써 많이 휘발해버렸지만 감사한 마음은 텔레그램 상단 고정처럼 늘 새기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매일 같이 보내주신 편지에 담긴 지지와 응원의 말씀들, 제가 겪을 그리고 겪고 있던 고충에 대한 조언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몸과 마음 건강히 나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바쁘신 와중에 모아주신 탄원서가 아니었다면 예상보다 훨씬 일렀던 가석방도 없었을 것이구요. 제가 저보다 앞선 병역거부자들께 무심했던 걸 생각하면 민망하리만치 큰 힘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동안의 ‘유일한 목표’였던 출소를 달성했지만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전쟁의 참상이 전해지고, 제가 견딘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양심의 대가로 치러야하는 분들이 여전히 남은 탓입니다. 언젠가 용석님이 ‘병역거부는 결국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절감합니다. 그래서 수감이든 대체복무든 결코 쉬이 흘려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구요. 앞서 약속한 것처럼 홀로 감당할 시간이 남은 분들이 외롭지 않도록 제가 받았던 힘을, 아니 그 이상을 전하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당장은 전쟁을 끝낼 수 없겠지만 이를 위한 길을 함께 걷겠습니다.

날씨가 꽤 변덕스럽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가벼운 감기증상에도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요즘이예요. 이래저래 쉽지 않은 때에 누구도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시에, 함께 그리는 평화에 성큼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구요. 한 걸음씩 내딛는 순간에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다시 뵙자고 말씀드리며 늦은 출소 인사를 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