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야 (예술가, 전쟁없는세상 무기감시팀)

 

가장 걱정했던 건, 혹시나 발을 헛디뎌 장갑차에 오르지 못하면 어쩌나였다.

DX KOREA,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은 국내 최대 지상무기 전시회답게 킨텍스의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부스들로 북적였다. 군복과 말끔히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가운데 무기에 관심 있는 시민들, 친구 자녀와 함께 온 가족들이 전시장 곳곳에 보였다. 현대로템 부스를 찾으니 최신형 K808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장갑차 옆에는 이 무기가 얼마나 유용하고 기동성 있는지를 보여주는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예멘을 생각한다. 전쟁으로 인한 폭격으로 죽고 다친 37만 명 이상의 시민들, 그중 1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생각한다. 굶주리고 있는 5백만 명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살던 곳을 떠나 난민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400만 명의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국에도 존재하는 5백 명 이상의 예멘인들을 생각한다. 이 처참한 현실을 만든 예멘에서 발견된 한국산 수류탄, 미사일, 전차들을 생각한다. “왜 나는 죽어야 하나요? 왜 나는 당신들의 평화를 위해 죽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던 살아남은 예멘 어린이들을 생각한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한다. 6개월 만에 폭격으로 죽은 3백 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1만 5천 명이 넘는 시민들을 생각한다. 주인이 떠난 집에서 배고픔과 그리움 속에 죽어간 반려동물들, 가스 공급이 중단된 집에서 춥고 어두운 겨울을 나야 하는 사람들, 고문과 성폭력으로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독재와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쓰인 최루탄을 수출한 국가는 ‘한국’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다음 타겟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폴란드는 한국산 무기 천무를 구매했다. 한국산 무기의 세계 수출 증가율은 2022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무기 수출은 이제 점점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한 효자 노릇을 하고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 무기들이 사용되었거나 사용되는 곳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은 왜 하지 않는가. 무기들이 사용되는 곳은 사막도, 우주도, 무인도도, 바다도 아니다. 누군가의 삶의 가지가 뿌리내려 자라고 있는 집과 마을과 학교와 일터이다. 무기를 사고파는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무기가 사용되지 않는다. 무기로 돈을 버는 자들의 집과 마을은 언제나 평화롭고 안전하다. 그러나 무기를 사지도 팔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집으로 마을로 고통과 파괴의 비가 내린다.

공분, 이라는 글자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장갑차 바로 옆에는 업체 직원이 서 있다. 나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은 장갑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순간, 잠시 두려워졌다. 내가 올라간다고 해서 저 거대한 힘의 흐름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무모한 짓은 아닐까. 다시 눈을 감는다. 무기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과 생명들의 빼앗긴 이름과, 얼굴과, 삶과, 눈물을 생각한다. 다시 눈을 뜨니, 이제 내 눈에는 장갑차만 보였다. 디디어 올라갈 바퀴와 손잡이가 뚜렷하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평화에의 공분이 내 몸을 강하고 뜨겁게 감싸주고 있었다.

숨을 한번 깊게 쉬고 그대로 장갑차에 올랐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거리에서 만난 관객의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곧 바이올린을 꺼내 들어 아일랜드 전통 춤곡인 ‘Haste wedding’과 ‘바위처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를 시작하니 장갑차 아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주 잠시이지만, 그들은 무기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예술가이다. 연극을 만들고 때때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곳을 찾아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국가와 공동체에 성실히 순응하는 것이 정의이며 옳은 것이라 여기는 ‘악의 평범성’과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나의 예술과 내가 올라 연주하는 무대가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약자와 소수자에게도 옳은 것인지 의심해볼 수 있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바란다. 그 불빛 하나를 장갑차 위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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