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다(병역거부자)

 

친애하는 러시아 난민신청자분들께

저는 2012년 병역거부를 사유로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하여 2013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거주하고 있는 이예다라고 합니다. 약 1년 동안의 난민신청기간 동안 공항 및 출국 대기실에서 지낸걸 포함하여 노숙도 해보며 일정한 거주지 없이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다행히 프랑스의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편이라 의식주 도움은 어떻게든 받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숙소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에 공중전화로 1,2 시간 가량 자동 응답기가 들려주는 클래식 노래를 들으며 기다려야 간신히 전화 연결이 되었고 그제서야 신청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난민신청자의 자립을 돕기 위한다는 취지(?)로 받아주지 않아 노숙을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숙소 신청에 성공하면 정해진 장소&시간에 가서 버스를 타고 또 1시간 정도 숙소로 이동합니다. 강당 같은 곳에 대략 3백 개는 되어 보이는 2층 침대에 임의로 누워야 했으며 겨울에도 난방이나 이불이 제공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온수도 잘 나오지 않았기에 대부분 씻지 않으니 사람들이 풍기는 악취가 심했습니다. 그 악취와 코고는 소리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당시에 친해진 몇몇 사람들은 이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좀 위험하더라도 차라리 Vincennes 숲 등에 텐트를 치고 모여 사는 걸 선호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성격을 가진 편이라 단 30분의 시간조차 고립 된 공간에 있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었으며 기상, 취침시간과 식사시간이 늘 정해져 있고 항상 도난을 경계하는 와중에 이해하지 못 하는 언어로 사람들이 싸우는 과격한 소음들이 자주 들리는 것 또한 꽤나 스트레스였습니다.

프랑스에 도착하여 여러 NGO 등에 의식주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난민 신청자에게 노동권이 있는지 질문하였을 때 한 사회복지사가 난민신청자의 수가 많기에 의식주에 관련한 도움은 한정 되며 노동권 또한 주어지지 않는다며 미안해했습니다. 난민신청을 하더라도 신청 서류를 준비하여 진행하는 것마저도 더디며 결과가 나오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점에 한 번 더 유감을 표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난민신청 당시의 불편한 점을 많이 나열했지만 그래도 제가 희망을 가지고 기운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복지 시설들의 모든 게 나에게 강요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난민신청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어도 누구도 그걸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복지소 뿐만 아니라 무료로 열리는 전시회나 박물관도 있었으며 도서관 같은 공공 장소는 늘 열려 있었기에 프랑스어 공부를 하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등 조금이지만 누릴 수 있는 오락거리도 있었습니다.

난민신청 서류를 작성하고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기에 지금 한국정부가 1~3달째 여러분들을 공항 출국 대기실에 방치한 채로 난민’신청’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제가 위에 나열한 경험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여러분들을 상상하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병역거부권은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인권이며 UN 가입국인 한국은 병역거부권을 사유로 난민신청을 한 이들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전쟁의 강제동원을 거부한 병역거부자들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물론이고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저도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비살상 및 반전주의를 이유로 스스로를 병역거부자라 정체화했었으며 병역거부권 비인정 및 병역거부자로서 받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며 휴전 국가인 한국에서 떠난 저도 2013년에 난민 인정이 됐었는데 현재 2023년에 진행중인 전쟁의 거부자의 난민인정이 되지 않는다니요.

강제동원 거부, 자국을 떠나 난민신청 등 비슷한 점이 많아 남일 같지 않은데 큰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의 전쟁 거부는 옳다고, 그것을 위해 난민신청을 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외로운 시기에 가까운 친구나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의 지지 발언들은 큰 힘이었습니다. 부디 이 마음만이라도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할 정도로 저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여러분들이 겪는 일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참여가 아닌 거부를 선택하신 분들이니 모두들 강한 분이실 거라고 조심히 예상합니다. 그렇다고 힘든 게 사라지지는 않으니 부디 상황이 빨리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며 심신 건강히 지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202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각각의 이유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강제동원을 거부한 반전행위와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실천을 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행동을 존경합니다. 성의 없는 답변으로 여러분들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빠른 시간 내로 제대로 된 처우개선을 실행 하기를 바라며 난민 인정 또한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