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석, 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고, 그만큼 전쟁 피해가 수북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비극에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비폭력 평화 저항을 이어가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이해 이처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글은 전쟁없는세상의 용석과 쥬가 함께 썼습니다. 반전운동으로서 병역거부의 의미를 되새기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병역과 군사훈련을 거부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병역거부자는 로마 시대 막시밀리아누스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로서 로마군에 입대할 수 없다고 병역거부를 했고 처형당했다.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병역거부는 소수 종교인들의 종교적인 실천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보편적인 국민개병제로서 징병제가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팽창주의가 극에 달했던 제1차 세계대전, 한 무리의 평화활동가들이 이런 상상을 했다. ‘전쟁터에 군인이 없으면 전쟁을 누가 하지? 우리가 군대에 가지 않으면 전쟁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에서부터 전쟁에 저항하는,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으로서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 20세기에 일어난 거의 모든 전쟁에서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했다. 베트남 전쟁은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등장한 전쟁이었다. 12만 5천여 명이 입영 자체를 거부했고, 군대에 입대한 뒤 탈영한 이들은 5만여 명이었다. 대중적인 대규모 병역거부는 다른 반전운동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미국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 전쟁 때도 전쟁에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한 이들이 있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From Dictatorship To Democracy>를 썼고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수차례 올랐던 진 샤프는 평화주의자로서 한국 전쟁 때 병역을 거부했고, 영국의 퀘이커 교도인 존 콘스는 한국 전쟁 참전을 거부한 뒤 병역거부자로 인정 받아 전후 군산에서 전공을 살려 의료활동으로 대체복무를 수행했고 이 당시의 공을 인정받아 2014년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며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전쟁에 동원되는 것을 회피하고 도망다닌 이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이 강제 징병과 징용을 피해 도망다녔고, 한국 전쟁 직후에는 병역기피가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일 정도였다.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전쟁 때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행위만으로도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21세기에도 전쟁에 참가하지 않기 위해, 혹은 전쟁을 막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시민불복종으로서 병역거부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사람이 전쟁에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모두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는 징병제 국가이다. 전쟁 전부터, 그리고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이들 나라는 징병제를 확대하거나 강화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전쟁에 저항하는 이들의 병역거부도 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이 글에서는 그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벨라루스에서 병역거부로써 전쟁에 저항한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 군대에 동원되는 병역거부자
작년 9월 21일, 공교롭게도 ‘세계 평화의 날’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예비군 “부분 동원령”을 발표했다.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몇 주 만에 3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소집되었다. 수십만 명이 푸틴의 침략 전쟁에 참전하지 않기 위해 나라를 떠났다.
러시아 헌법 59조 3항은 “러시아 연방 국민은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가 군복무 이행과 배치되는 경우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민간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8세에서 27세 사이의 러시아 남성은 군대에 징집될 수 있는데, 징집병이 종교적 견해나 평화주의적 신념으로 인해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 대체복무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11월 개정된 법은 소집 후 이미 대체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군대 내 비전투 역할로 전환되도록 허용한다. 이는 군복무의 평화적인 대안으로서 대체복무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든다. 또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대체복무권을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원된 예비군의 대체복무에 대한 법적 또는 실질적인 규정은 없다.
대체복무와 군복무 모두 복무가 끝나면 예비군에 편입되기 때문에, 병역거부로 대체복무를 수행했음에도 예비군으로 동원된 사람들이 생겼다. 몇몇 사람은 이러한 동원의 부당성을 법정에서 다투기 시작했다. 이들의 운명은 개별 징집 사무소 또는 법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동원령을 뒤집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징집 대상자는 아니지만 정치적 탄압을 피해 나라를 떠난 사람들도 있다. 입영대상자는 아니지만, 현대의 전쟁이 국민 모두가 다양한 행태로 전쟁에 연루되는 총력전임을 감안한다면, 러시아를 떠나는 이들의 행동 역시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불복종행위이다. 한편 러시아 국내에서도 반전운동의 목소리는 높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00명 이상이 형사 기소를 당했고, 일부는 미결수로 구금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전쟁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러시아군에 대한 허위정보를 퍼뜨린” 혐의로 기소를 당했다.
벨라루스: 어린이 군사 훈련
러시아의 우방인 벨라루스는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많은 징집 대상자가 혹시 모를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났다. 전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밖에도 파다한데. 특히 어린이·청소년의 군사화와 전쟁 준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6세부터 ‘군사 애국 캠프’에서 총기 사용을 포함한 특별 교육을 받는다. 러시아의 체첸 교관들이 이 훈련에 참여한다. 모든 군사 애국 캠프는 국방부를 포함한 벨라루스 국가 기관들의 통제를 받는다. “러시아 세계” 이데올로기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세뇌 및 선동한다. 취약계층 어린이와 고아 등은 군사 애국 캠프에서 국가 부담으로 무료로 훈련을 받으며, 군사적 행동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거나 보호할 가족 및 친척이 없기에 주요 대상이 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여름 18,000명 이상이 480개의 군사 애국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 내용은 제식훈련, 총기 훈련, 전술 훈련, 화생방 교육, 민방위 교육, 의료 훈련 등이며, 2020년 밸라루스 혁명과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훈련 강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벨라루스의 군사 애국 캠프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군복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구소련을 모델로 한 사전 군사 교육이다.

총기 훈련을 받는 벨라루스 어린이들 (출처: Our House)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지된 권리
우크라이나에서 민간 대체복무는 1999년 정부령에 열거된 10개 교단의 종교 단체에 속한 종교 거부자에게만 허용되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전쟁으로 병역거부권을 정지하고 18세에서 60세 사이 남성을 대상으로 국경을 폐쇄했다. 10만 명 이상의 남성이 참전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 현재 병역거부로 보호관찰을 받은 병역거부자는 4명으로 알려졌고, 수감된 사례는 한 명이 있다.
2023년 1월 16일 이바노프랑키우스크 항소 법원은 46세의 기독교도 비탈리 알렉센코의 병역거부 재판 유죄 판결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인권·평화 단체들은 알렉센코의 유죄 판결을 그의 사상의 자유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로 간주하며, 그의 판결이 우크라이나가 현재 비상 사태에서 병역거부권을 정지한 맥락에서 발생했음을 강조하고 관련 법령을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병역거부자 비탈리 알렉센코 (출처: WRI)
“모든 징집병은 병역거부자가 될 수 있고, 모든 군인은 탈영병이 될 수 있다.”
2022년 9월 21일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커넥션 e.V., 국제화해단체(IFOR), 병역거부유럽사무국(EBCO),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탈영병과 병역거부자를 위한 #ObjectWarCampaign(전쟁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ObjectWarCampaign은 현재 지역 내 전쟁에 연루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병역거부자와 탈영병을 보호하고 망명을 돕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할 것을 전 세계 시민에게 촉구한다.
침략 전쟁을 거부하는 100,000여 명의 러시아 징집병과 탈영병이 있다. 22,000여 명의 벨라루스 징집 대상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 100,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남성이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도망쳤다. 복무를 거부한 모든 사람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몇 년 동안 구금될 위험이 있다.
#ObjectWarCampaign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서 병역거부권이 완전히 보장될 것을 요구한다. 이 캠페인은 자신의 국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경 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싸움과 살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도록 촉구한다.

#ObjectWarCampaign 캠페인 로고 (출처: W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