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한베평화재단)

전쟁없는세상 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고, 그만큼 전쟁 피해가 수북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끔찍한 비극에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비폭력 평화 저항을 이어가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이해 이처럼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글은 한국 평화활동가의 글입니다. 한베평화재단 활동가 아침이 지난 1년 동안 전쟁 반대를 외쳤던 순간을 돌아보며, 전쟁을 마주한 이들의 다양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지금 이 시대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의문이 든다. 어떻게 저러지? 미얀마의 쿠데타 이후 저항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응원의 마음을 보냈지만 무참히 진압당하는 걸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에도 마찬가지였다.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미얀마에도 안 먹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과 에너지가 문제 되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으니)으로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직까지 교전이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1968년 정월 퐁니 마을의 8살 응우옌티탄은 총소리가 들리자 이모와 동생 등과 함께 방공호로 피신했지만 수류탄으로 위협하는 한국군에 의해 방공호를 나오고 총을 맞아 쏟아지는 창자를 손으로 집어넣으며 도망쳤다. 그로부터 55년 만인 2023년 한국 정부가 학살 피해의 책임을 지고 베트남 민간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하미마을 위령제 사진. 왼쪽부터 이번에 승소한 퐁니마을 응우옌티탄, 그 옆은 하미마을 응우옌티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하미마을 위령제 사진. 왼쪽부터 이번에 승소한 퐁니마을 응우옌티탄, 그 옆은 하미마을 응우옌티탄

 

이후 한 참전군인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1심 판결이 다가 아니다. 정부는 항소를 할 테고 계속 두고봐야 한다”는 이야기에 앞으로의 재판을 잘 준비하라는 격려라고 생각했는데 듣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판사가 속은 거고, 민간인은 없었고 다 베트콩이고, 1심은 아무것도 아니니 나발불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1심 승소 판결의 의미를 전달하려 하자 말을 끊고는 반말에 욕설에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며칠 후 이종섭 국방장관은 “우리 장병들에 의한 학살은 전혀 없었다. 판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미군 조사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고 결론이 났다” (미군조사보고서에는 한국군 학살의 증거가 넘쳐나지만 한국군의 부인에 “결론:없음”이라고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항의 전화를 한 참전군인과 베트남전의 피해자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시위하던 참전군인들과 국방장관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주장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뻔히 나와있는 판결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닮았다. 왜 그럴까?

최근 본 임흥순 감독의 ‘파도’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통역을 맡았던 시내님의 인터뷰 장면에 ‘곤충처럼’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전쟁은 사람을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벌레처럼 취급한다. 한류로 한국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건 기쁘지만 난민으로 오는 것은 못 받아들이는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며 무기지원(무기 팔아먹기)을 해야 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침공을 위한 징집을 거부한 러시아 병역거부자는 발도 못 붙이게 공항에 억류시킨다. 누군가에겐 벌레이고 어디에선 성가신 존재로 취급되어도 되는가?

음성채팅 앱 클럽하우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모기업 임원이 강의하는 방이 열렸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의 의미와 역사 등을 다루다가 마지막 즈음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들의 관심사가 이번 전쟁이 투자 기회인지 아닌지에 쏠리는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전쟁이란 일부 특권층의 도박으로 시작되고 방산업체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양심을 어디에 숨겨두었길래 못 찾는 걸까?

지금 러시아의 군인들도 먼 훗날 자신의 선택(혹은 선택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잠 못 이루게 될까? 어릴 적 본 고모네 옆집 아저씨(5.18 때 광주로 간 공수부대 출신)처럼 술만 먹으면 가족들을 때릴까? 이익을 바라보며 방산업체에 투자한 사람들은 그 무기가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얼마나 무참히 학살하게 되는지 알고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세상?

미국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1964년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오늘밤 미국인과 아시아인은 각 민족이 변화를 위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펜실베이니아의 계곡에서 우리 조상들이 싸웠던 원칙입니다. 이것이 우리 아들들이 오늘밤 베트남의 정글에서 싸우는 원칙입니다.”라고 연설했다. 한베평화재단에 출근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가 무엇인지 홈페이지에 소개한다고 적으라고 할 때 나의 대답은 “모두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었다. 네이팜탄과 고엽제로 베트남의 자연을 초토화시킨 사람이 한 말이랑 묘하게 닮아서 짜증난다. 다른 점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가 누구의 기준이냐는 것이다.

 

한 참전군인의 선택

이번 국가배상소송에서 원고 측 증인으로 당시에 학살이 있었다고 증언한 참전군인은 “다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참상들이, 지워졌던 기억이 떠오르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내가 거기 참석을 해서 머리 한쪽에 묻어둔 불행한 과거를 떠올려서 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가 후회도 되었다. … 내가 아니면 생생한 증언을 할 사람이 없다. 누가 증언을 안하니까 내가 나서는 거다. … 내가 증언을 안 하면 진실이 어떻게 밝혀질까? 이건 인간의 양심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국가배상소송 집담회에서 말했다. 이분은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이것을 어떻게 털고 가는지에 따라 대한민국이 재평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선택했다.

 

자신의 국가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러시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를 외치는 시위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러시아의 병역거부도 이어졌고, 징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나는 방식으로 전쟁에 저항하는 이들과 이들이 안전하게 러시아를 탈출하도록 돕는 이들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 연구자/교육자/활동가인 유리 셸리아젠코는 ‘평화주의자는 자신의 나라가 공격받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우선 평화주의자는 평화주의자로 남아서 폭력에 비폭력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대응해야겠죠. 모든 노력을 다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고, 그것을 지지하고, 긴장의 고조에 저항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의 안전을 돌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의 선택

한국의 평화활동가들은 전쟁이 일어난 직후 매주 금요일 저녁 촛불집회를 조직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함께 걱정과 분노와 함께 연대의 마음을 나누어주었다. 벨라루스 출신은 벨라루스에서 사람들이 러시아 군대의 이동을 저지한 사례 등을 전해주었다. 공연팀들도 와주었고 비가 올 때에도 모여서 우리가 함께한다는 마음을 공유했다. 화창한 봄날의 토요일엔 행진을 조직하기도 했다. 꽃을 들고 손에 팻말을 들고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찬 게 아니라는 걸 믿으라는 듯 굳세게 전쟁 반대를 외쳤다.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했던 시기였지만 멀리 강릉에서부터 찾아온 어린이들도 있었다. 전쟁으로 죽음의 기업(방산업체)의 주가가 치솟고 K방산이라는 부끄러운 말로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알리는 활동, 무기 지원 말고 평화협상을 시도하라고 요구하는 활동들이 이어졌다. 러시아의 징집을 피해 한국으로 온 병역거부자들이 공항에 억류되어있다는 소식에 함께 한국 정부를 규탄했다. 살인무기 전시장을 찾아 탱크 위에서 연주를 하고 구호를 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병역거부자들에게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고 멀리서 당신이 옳다고 지지하는 우리가 있다고 편지를 썼다.

 

전쟁에 반대해 구속되거나 구금된 러시아 평화수감자들에게 연대의 편지를 보낸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에서 직접 쓴 엽서를 들고 있는 아침

전쟁에 반대해 구속되거나 구금된 러시아 평화수감자들에게 연대의 편지를 보낸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에서 직접 쓴 엽서를 들고 있는 아침

우리도 안다. 우리는 아직 전쟁을 막거나 종식 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베트남전 당시 미국 내의 병역거부 운동, 일본에서의 베트남에서 탈영한 미군을 돕는 활동을 보면서 힘을 얻듯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2014년에 남아공에서 열린 전쟁저항자들의 국제회의에 참가 했을 때 데스몬드 투투 주교님이 방문을 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신이라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플 것 같다. 그런데 신이 여러분들을 보고는 웃으실 것 같다.”

 

참고

[집담회]법정에서 못다한 이야기: 베트남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팩트체크]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없었다? 미군 조사보고서 확인해보니

베트남의 끔찍했던 악몽, 이제 깨어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 죽음으로 돈을 버는 것은 누구인가?

병역기피의 다른 이름, 전쟁에 저항하는 병역거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주의자들이 머리를 맞대다 – 올렉 보드로프, 유리 셸리아젠코와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