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쭝 (전쟁없는세상 회원)

 

엔데믹을 맞아서 드디어 오프라인으로 총회를 할 수 있는 시절이 돌아왔다. 얏호!

전쟁없는세상도 2월 18일 토요일 오후 총회를 열었다. 올해는 새로 이사한 사무실의 집들이를 겸하는 총회라서 더 반가웠다. 간만에 전쟁없는세상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일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시민사회단체의 총회는 정관상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보통  지난해 사업 내용, 올해 사업계획을 보고하고 승인받는다. 임원을 선출하거나 정관을 바꾸기도 한다. 총회에서 승인받지 못하면 그 해 사업을 할 수 없고 대표도 뽑을 수 없다. 

전쟁없는세상 총회 역시 사업과 임원 선출, 정관 변경 등에 대해 보고하고 승인받는 자리로 마련됐다. 진행자는 매번 안건 보고가 끝날 때마다 회원들의 질문을 받고 “이 안건에 대해 ‘저지’ 하겠다는 분 있으신가요?“라고 확인을 거쳤다.

이는 전쟁없는세상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이다. 참가자들의 의사를 ‘찬성’과 ‘반대’로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지지’부터 ‘동의’, ‘수용’, ‘묵인’, ‘저지’까지 세밀하게 나눠서 묻는 것이다. 꼭 모두가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합의점을 찾기 위한 방법인데, 다른 단체 회의에서도 꼭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총회는 전쟁없는세상의 새 비전을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지난해 전쟁없는세상은 여러 차례 비전워크숍을 했고 그 결과 사업 방향과 조직의 구성·예산 등을 모두 재구성했다.

병역거부 캠페인은 ‘전쟁거부’에 방점을 찍어 여성병역거부·완전거부 등 다양한 병역거부를 조직하기로 했다.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의 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긴 고민 끝에 도출된 결론이다. 무기감시 캠페인은 ‘무기박람회에 대한 저항’에 집중하기로 했다. 너무 많은 활동을 하기보다 전쟁없는세상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회원들의 소그룹 토론도 열렸다. 내가 속한 소그룹에서는 “과감하게 비전을 새로 수립한 것이 다행스럽다. 앞으로의 활동이 매우 기대가 된다”는 의견과 함께 “아직은 비전에 따른 사업과 목표가 충분히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더 다듬어서 보다 구체적인 활동을 펼치고, 회원들과도 그런 활동을 토대로 소통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어느 조직에서나 선택과 집중은 참 힘들다. 작은 조직은 자원이 부족해서 힘들고, 큰 조직은 기존의 사업과 인력구조를 바꾸기가 어려워서 힘들다. 사무국 활동가의 보고를 들으면서 전쟁없는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고민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이날 발표된 비전은 지난 한해만이 아니라 오래 쌓여온 고민의 결과물일 것이다. 

 

20230218_전쟁없는세상총회_009_DSC_3473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전쟁없는세상 총회!

 

총회로 점철된 주말… 전쟁없는세상 총회는 뭐가 달랐냐면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나는 연달아 총회를 경험했다. 일단 직업이 활동가라서 내가 준비하는 총회가 있었다. 전쟁없는세상 총회 전날에도 회원들에게 안내전화를 돌렸다. 마침 그 날 저녁에는 얼떨결에 친구따라 다른 단체 총회에도 회원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다음날 전쟁없는세상 총회까지, 정말이지 총회로 점철된 주말이었다. 

단체마다 총회의 권한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총회 분위기는 꽤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규모가 큰 단체에서는 총회도 대규모 행사이고 상대적으로 좀 딱딱한 분위기다. 총회 안건을 정리하고 자료집과 PPT를 만들고 장소를 대관하는 과정이 촘촘하다. 당일에는 참가자 접수, 무대 세팅, 전체 진행 등으로 정신이 없다. 총회를 마치고 나면 큰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다. 

그에 비하면 전쟁없는세상 총회는 아기자기 꽤 재미있다. 아마 사무국이나 회원의 규모가 아담하고 활동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원들이 직접 토론을 하는 것도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전쟁없는세상이니까 가능한 측면이 있다. 

단체 규모와 사업 특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 전쟁없는세상이 굳이 소그룹 토론을 진행하고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 역시 ‘의지’의 영역이다. 회원들에게 사업을 더 잘 설명하겠다는 의지, 회원들의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하겠다는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회원들이 전쟁없는세상 총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꼭 전쟁없는세상 총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그렇다. 내가 준비하거나 참석했던 다른 총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마침 얼마 전 ‘시민사회단체의 과제’를 다룬 포럼 자료집을 읽었다. “영향력이 큰 거대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라 시민사회를 복원해야 한다. 이제 시민의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회원에게도 돈이 아니라 시간을 요청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단체 활동가이자 회원으로서 매우 공감한다. 

 

20230218_전쟁없는세상총회_048_DSC_3641

작년 사업 내용과 올해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평화를 이야기해야지

그러나 많은 회원들과 함께 총회를 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회원들부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회원들에게게 총회 안내전화를 돌리다 보면 “저는 그냥 후원만 하고 싶은데요”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당장 나조차도 다른 단체 총회에는 잘 가지 않는다. 일단 귀찮고, 아는 사람이 없어서 뻘쭘하고, 안건의 내용을 몰라서 의견을 내기도 어렵다.

회원 참석률만 높인다고 능사도 아니다. 운동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회원들이 원활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지, 그런 상황에서 회원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적절한지도 잘 모르겠다. 또 단체에 적극 참여하는 ‘강성’ 회원들의 의견만 반영할 경우 시민들의 정서와 괴리될 우려도 있다.

선거일 하루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없듯이, 멋진 총회 한번으로 ‘회원들과 함께 하는 평화운동’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다양한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그렇게 모인 회원들과 함께 평화운동의 방향을 논의할 수 있도록 평소부터 기반을 다져야할 것이다. 

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쟁없는세상에 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해서 더 좋은 평화운동을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았는데… 답은 잘 모르겠다. (알았다면 내가 그런 주제로 책을 썼겠지.) 다만, 전쟁없는세상이 성실하게 노력하리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운영위원이나 사무국 활동가의 힘만으로는 그런 단체를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회원인 나에게도 역할이 있겠지. 일단 다음 총회에는 새로 온 회원들에게 더 열심히 말거는 것부터 해볼 생각이다. 나처럼 낯을 가리는 회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입을 열 수 있도록. 내년 전쟁없는세상 총회에는 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좋겠다.

 

비전워크숍 결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소그룹토론을 진행했다.

비전워크숍 결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소그룹토론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