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 책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온 비영리단체(NPO)들의 이야기를 서울시NPO지원센터(이하 NPO센터)가 지난 5년간 모아 발간한 것이다. 1987년 즈음부터 환경, 복지, 농업, 건강, 교육, 여성, 노동, 인권, 행정, 정치, 경제, 사회, 평화, 국제개발, 지역, 주택, 코로나19(사회적 재난)분야에서 30여 년간 꾸준히 변화를 만들어온 크고 작은 사례 중 30가지를 엮었다. 해당 활동을 실지로 이끌었거나 잘 알고 있는 활동가, 연구자들이 저자로 참여해 캠페인 당시 상황과 과정을 생생하게 잘 전달하고 있다. 센터는 발간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책 발간의 의미를 밝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 영역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래로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인권, 환경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정부와 기업을 감시하고,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하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시민사회를 바라보는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시선 또한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왜 시민사회에 무관심하게 되었을까요? 시민단체 활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이를 확산하는 일부 매체의 영향 때문일까요? 아니면 시민사회가 만들어 온 구체적인 변화와 역할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생각할 여유와 계기가 없어서였을까요? 혹은 시민사회의 활동 기록을 찾기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NPO센터는 2013년 “공익활동, 더 쉽고 즐겁게”, “시민공익활동이 지속가능한 서울”을 모토로 출범하였다. 당시 시장이었던 고 박원순씨가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시 등록 비영리민간단체 수가 10년 사이 5배 이상 급증했지만, 시는 그간 사업비 지원 위주의 단편적인 지원에 머물러왔었다. 센터는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더 나아가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시민사회를 지원하기 위해 개관하였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하였다. NPO센터는 현재 교육장, 협업공간 등 장소 대관을 비롯 국내외 NPO 정보 아카이브 구축, 조사연구, NPO 활동 경험 공유, 공익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 연계 및 지원, NPO의 지속가능한 성장기반 지원 등의 사업을 해오고 있다.
이 책은 적어도 활동 기록을 찾기 어려워서 시민들이 시민사회에 무관심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NPO센터의 노력이다. 2017년부터 블로그 한 켠에 변화사례 아카이브라는 공간을 만들어 사례들을 발굴하고 모았다. 현재까지 200여 개의 사례를 모았는데 그 중 30개를 선정하여 ‘세상을 바꾼 공익활동’이란 이름으로 발간하게 된 것이다. NPO센터는 발간사에서 ‘시민사회를 정치, 경제, 사회, 인권, 환경 5개 분야로 나누고 시대적 필요와 흐름을 보여주는 운동과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도모하는 운동, 다양한 주체와 활동들이 함께 소개될 수 있도록 선정 기준을 마련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팜플렛이 발간된 1달 후인 12월에는 변화사전 ‘NPO Pedia’라는 이름의 팜플렛이 하나 더 발간되었는데 이 사전에는 NPO센터가 그간 수집한 18개 분야 192가지 사례들이 모두 요약형 콘텐츠로 재가공되어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 온라인 페이지도 새로 열어서 보다 쉽게 사례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30가지 사례들은 아래 표와 같다.
마치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읽는 것처럼 1987년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사회에 제기된 굵직한 사회이슈들을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 캠페인들의 난이도(?)가 천차만별이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골고루 사례를 선정한 것도 그만큼 다양한 관심사를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무엇보다 30가지나 되는 사회이슈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어디까지를 해결로 볼 것인가는 또 다른 이슈가 되지만)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읽는 독자 모두가 (내가 직접 만든 변화는 아니어도) 매우 뿌듯한 감정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을 구체적으로 2가지만 꼽는다면 첫째 각 캠페인이 태동한 맥락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낙천낙선 운동의 경우 ‘당시 이태호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국정에 대한 감시와 평가 모두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았다. 의정 모니터 활동도 해당 의원들의 불성실한 조력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본격적인 정치참여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방해도 방향을 선회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즉 기존에는 의정감시라는 방식으로 시민단체들이 정치개혁운동을 해왔는데 이 활동이 여러 가지 한계에 봉착하자 낙천낙선이라는 다른 전략을 고안한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의 경우도 기존에 재벌에 관한 법이나 정부정책을 다뤄오던 캠페인의 한계를 느껴 생각해낸 캠페인이었다. GMO 표시운동도 20년간의 GMO 개발과 재배, 수입인증과 유통·관리 및 표시제도의 허술, 안정성과 생태계 파괴, 종자 독점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결국 실패했던 당시 맥락을 정리하고 있다. 이렇듯 캠페인의 등장 맥락을 보여주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들의 유연한 노력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해당 캠페인 뿐만 아니라 더 큰 맥락에서 무엇을 시정하고자 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두번째는 NPO센터 측에서 의도하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캠페인들이 다루는 이슈의 분야들 만큼이나 운동방식의 다양성도 고려한 것이다. 병역거부처럼 법을 일부러 어기고 감옥에 가는 방식(시민불복종)으로 변화를 꾀했던 캠페인에서부터 (온라인 상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운동 (법적 처벌의 위험성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처벌을 받은 경우까지 다양), 서명운동 (온라인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을 시절 길거리 서명까지 포함), 모의법정, 모의투표 등 상징적 액션, 새로운 형태의 노조 건설, 주주대표소송이나 주민발의와 같이 새롭게 시도되는 합법운동 등 다양한 전략과 전술들이 한국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며 펼쳐진다. 시대별로 본다면 데모 수단의 발전도 짐작할 수 있다. 2000년의 낙천낙선운동은 부적격 후보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정도였다면 2016년 후보자정보공개운동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이 세부 정책에 대해 댓글로 의견을 달면 대선 후보자 이메일로 전송되어 후보자에게 시민의 의견을 보내서 정책변화를 촉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기능하게 한 것이다’.
아래는 책에 소개된 30가지 캠페인을 어떤 사회문제를 어떤 전략과 전술로 무엇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바꿀 수 있었는지 표로 다시 정리해 본 것이다. 글을 쓸 때 최소한의 가이드가 주어지긴 했다지만 캠페인의 종류나 규모가 너무 다르고 저자 역시 다다르기 때문에 책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적어둔다.

표가 많이 길어 따로 PDF 링크를 첨부합니다. 전체 표를 보실 분들은 다음 링크를 클릭하세요. [전문] 30개의 캠페인이 마주한 사회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전략전술
하지만 아무래도 저자들이 주로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경우 무엇이 문제인지를 호소하고 그 문제를 일으킨 정부나 기업을 비판하거나 문제의 시정을 위해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쓰는 것이 활동가들에게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례 집필을 의뢰할 때 조금 더 자세히 가이드를 세우면 낫지 않을까 싶다. 경험상 내 활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며 운동의 생애사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임파워링 되는 일이다. 과거의 운동(나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거기서부터 배우는 일이다. 또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거의 도제식으로 운영되다시피 하는 사회운동에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