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피스모모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운영위원)

 

지난 달 일본 치바에서 열린 무기박람회 DSEI 재팬. 활동가들이 저항운동을 갈무리하며 공유한 영상 속에서 생전 처음 보는 무기가 내 눈길을 끌었다. 각종 살상무기 사이를 활보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낯선 무기, 개의 형상을 한 로봇이었다. 네 발로 걸어다니며 앉기도 했다가 일어서기도 하는 로봇개의 움직임은 우리가 아는 ‘개’의 움직임과 너무도 흡사했다. 로봇개의 등장에 진지한 표정으로 박람회장을 둘러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기박람회에 로봇개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열린 무기박람회에서 로봇개가 전시되었다. 로봇개는 그 외형에서부터 이목을 끌었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로봇개가 전장에서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예상하거나, 로봇개가 살상용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떠돌았다.

개의 모습을 한 로봇이 무기를 탑재한 채 재간을 부리고 있는, 너무도 생소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궁금증이 들었다. 왜 ‘개’였어야 했을까. 이 로봇은 무기를 발사하고 운반하며 지형을 탐색하는 데 쓰인다는데, 굳이 개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 로봇의 적법성과 윤리성에 대해 논하는 건 둘째치고 말이다. 개는 인류와 가장 가까이 지내온 동물 종으로서 인간에게 더 친숙하고, 소통에 용이하며, 다양한 목적으로 훈련되고 사용되어 왔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에서 개는 적의 탱크를 폭파시키거나, 땅 속에 숨겨진 폭발물을 찾는 등 다양한 군사작전에 동원되어왔다. 전쟁과 군대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로봇을 개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던 것은 그리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로봇개의 존재는 전쟁에서 ‘군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동물을 노예화하고 착취해온 역사 속에서 전쟁에 동물을 동원해 온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동물들은 인간 종이 벌이는 전쟁에 동원되어 왔다. 전쟁물자 운송, 공격 및 방어, 정찰, 통신, 군사실험 등에 동물들이 사용되었다. 우리가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것처럼 말이다. 전쟁 기술이 고도화됨과 동시에 전쟁에서의 수송과 노동을 동물에 의존하는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근현대의 전쟁에서 동물들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에 동원되는 비인간 동물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대대적인 군견양성프로그램을 가동해 개들에게 전장에서 적을 탐지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4천 명이 넘는 개들이 투입되었지만, 이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얼마나 많은 수의 군견이 죽거나 다쳤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고, 미국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면서 이들 중 많은 수가 베트남에 남겨졌다고 알려졌다.

전쟁 동원 동물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웅화 되고 있는 군견들이다. 우크라이나의 군견 ‘페트론(우크라이나어로 ‘탄약통’을 뜻한다)’은 100여 개의 지뢰를 발견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고, 러시아군에 납치되었다가 포로교환으로 우크라이나에 반환된 군견 ‘아디크’의 이야기 역시 뉴스와 SNS에서 널리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전쟁을 겪는 이야기가 ‘애국서사’에 동원되는 사이, 군견들이 얼마나 혹사되고 있는지는 전혀 말해지지 않고 있다.

현대 전쟁에서 무기나 군인으로 동원되는 동물은 군견만이 아니다. 지난 해 미국의 군사매체 USNI 뉴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흑해의 한 해군기지에 돌고래를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돌고래는 1950년대부터 미국과 러시아 군대에서 군사목적으로 훈련 및 연구되어왔다.1) 군함이나 기뢰를 탐지하거나 적의 배에 폭발물을 설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가동되었고, 심지어는 해저 밑바닥에 가라앉은 핵폭탄을 끌어올리는 훈련까지 실시되었다. 미군은 돌고래와 바다사자 등 해양동물들을 군사용으로 훈련하는 팀을 운영하며 100여 명의 해양동물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2)

 

미군

미해군 소속으로 걸프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돌고래

 

전쟁이 시작되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는 동물에 관한 보도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동물들이라던지, 폐허 속에 남겨진 동물들, 혹은 동물원이나 보호소에서 아사 위험에 처한 동물들의 소식은 많은 ‘반려인’들의 동정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고양이 두 명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이들의 소식은 남 일이 아닌 듯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전쟁 속에서 인간과 함께, 혹은 가까이 사는 동물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구조해야 한다는 말들이 쏟아지지만, 그 전쟁에 동물들이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머릿 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일이었다. 종차별은 전쟁 속 동물을 접하는 우리의 태도에서도 깊게 작동한다. 어떤 동물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어떤 동물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사람은 공격받아 마땅하고,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명목의 어떤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는 군사주의의 작동방식과도 닮아있다.

 

평화운동의 ‘투시력’이 비인간동물을 본다면

미국의 동물권 활동가 바바라 스태그노는 활동을 하며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지나갈 때 ‘음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장식 농장과 도살장의 최종산출물을 본다”3)면서 이를 ‘투시력’을 얻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가 설명하는 투시력은 그동안 내가 경험한 무기감시운동에도, 특히 무기박람회 저항운동에서 적극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나와 동료들은 무기박람회장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고,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시민들을 만나는 캠페인을 펼치며 말해왔다. 화려하게 전시된 무기들로부터 그 무기로 인해 살해된 분쟁지역의 사람들을 보고, 하늘에 하트 구름을 수놓으며 벌어지는 에어쇼로부터 공습경보가 울리는 어느 마을을 떠올려야 한다고. 무기박람회가 국위선양의 수단이나 오락거리로 다뤄지는 사이, 누군가는 전쟁으로 생명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난민이 되고 있다고 말이다. 이 가운데 전쟁수혜자들이 더 큰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활용해온 ‘투시력’이었다.

무기박람회에서 로봇개의 등장은 나에게 전쟁에서 무기화되어온 동물들을 보게 하는 ‘투시력’을 가져다 주었다. 그 투시력은 잘 훈련되고, 믿음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갖추어야 하며, 적당히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살상이나 방어, 군사작전 수행에 탁월할 것을 개에게 요구해온 군사주의의 동물착취사를 보게 한다. 인간 병사를 태우고 전쟁으로 내몰렸던 말, 지뢰와 폭탄을 찾는 데 투입되었던 돼지, 적에게 돌격해 공격을 가하도록 명령받은 낙타들 역시 그 투시력으로 응시해야 할 동물들이다.4) 평화운동의 투시력이 비인간동물을 볼 때, 우리는 전쟁 속 동물 착취와 강제동원의 견고한 역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무기박람회에서 무기화된 동물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전쟁에 저항하며 탱크 위에 올라간 우리들의 구호에 그 동물들의 이름이 호명 되어야 한다고, 무기화되어 착취당해온 동물들에게 너무도 늦은 응답을 보낸다.

 

 

각주

  1.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앤서니 J. 노첼라 2세, 콜린 설터, 주디 K. C. 벤틀리 지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 더불어, 2017
  2. 베트남전에도,우크라 전쟁에도 참전했다…전쟁에 투입되는 해양동물들 , 동아사이언스, 2022.05.09
  3. p202, <동물홀로코스트> 찰스 패터슨 지음, 정의길 옮김, 휴, 2014
  4. <동물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나> 앤서니 J. 노첼라 2세, 콜린 설터, 주디 K. C. 벤틀리 지음, 곽성혜 옮김, 책공장 더불어,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