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만화평론가)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플루토》가 곧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7월 2일 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채널에 〈플루토〉의 공식 티저 예고편이 게시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플루토》를 그린 우라사와 나오키는 《20세기 소년》, 《몬스터》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의 원전인 만화 《플루토》는 국내에 2004년부터 출간되었는데, 여기에도 원전이 또 있다. 이 작품은 1964년 발표된 데즈마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 그 중에서도 ‘지상 최강의 로봇’ 편을 오마주한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굵직한 서사 요소는 서로 맥을 같이 하지만, 작품에서 표현되는 배경 묘사나 문제 의식은 당대 현실과 만나 《플루토》에서 더 정밀하게 표현되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지상 최강의 로봇’ 편은 서로 싸울 이유가 하등 없는 로봇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 질문하고, 《플루토》는 이를 인류와 전쟁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받는다. 전쟁할 이유가 없는데도 인류는 왜 전쟁을 계속하는지 말이다. 《플루토》의 작중 트라키아 합중국은 페르시아 제국에 거대 살상 무기가 있다며 공습을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페르시아 제국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량 살상 로봇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거기 있는 건 대량 살상 로봇이 아니라 황폐한 사막에 새로운 생명을 피울 수 있는, 환경 개발 로봇뿐이다.

 

의 원작

<플루토>의 원작인 테츠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 ‘지상 최강의 로봇’편의 표지와 본문 일부

 

《플루토》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은, 일어 날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작스레 일어났던 중앙아시아 분쟁이 모두 끝난 이후다. 전쟁이 종식된 후로 얼마간 시간이 지난 이후, 갑작스럽게 ‘세계 7대 로봇’이라 불리는 강력한 로봇들이 차례차례 공격받는다. 이들은 ‘세계 7대 로봇’이라는 명성 이외에도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한 바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그저 평화롭게 일상을 이어갔던 건 아니다. 로봇임에도 이들은 전쟁에서 목도한 참혹한 장면, 괴로웠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7대 로봇’ 중 하나인 노스2호는 중앙아시아 분쟁 때 수많은 적군 로봇을 죽인 기억을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재생시킨다. 노스2호가 밤마다 신음소리를 내는 건, 삭제하고 싶으나 삭제할 수 없는 그 참혹한 기억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전쟁에 참전했던 로봇 ‘헤라클레스’는 전쟁터에서 만난 한 로봇을 기억한다. 정예 대원으로서 전쟁터에서 맹활약을 펼친 그 로봇은 강박적으로 자신의 손을 씻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워내려는 듯,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로봇이라고해서 폭력을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폭력의 잔상에 더 ‘생생하게’ 묶여 있다. 어마어마한 광자에너지로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로봇 ‘앱실론’은 스스로의 의지로 징집에 거부한, 병역 거부 로봇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 고아를 위한 시설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낸다. 몇몇 군인은 앱실론을 향해 겁쟁이라고 비웃지만, 그는 어린이를 지키기 위한 결투에서만큼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스스로 발 들여 놓으며 ‘꼭 필요한’ 싸움을 하는 로봇이었다.

짐짓 고요해 보이는 일상의 시간 아래에서 이 로봇들은 전쟁의 상흔과 치열하게 분투한다. 고단한 투쟁을 견디며 새로운 일상을 세워 나가려던 그들은 비로소 평화가 내려앉으려는 찰나 정체불명의 로봇 ‘플루토’에게 공격받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플루토는 왜 이들을 공격했던 걸까? 누구의 지시, 아니 어떤 욕망으로. 《플루토》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톰’을 내세워 이 사건의 내막에 천천히 다가간다. 트라키아합중국이 일으킨 중앙아시아 분쟁이 그 진실 한복판에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플루토>. 원작에서는 1권짜리였던 작품을 2000년대의 문제의식으로 각색하여 8권짜리 장편으로 오마주했다.

 

만화 《플루토》는 2003년 일어난 이라크전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작중 페르시아국처럼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유엔에 군사 행동 승인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완전히 틀린 정보였고, 실제 대량 살상 무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전만이 아니더라도, 《플루토》를 읽고나면 지구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현장이 떠오른다. 나는 처음 《플루토》를 읽고 나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생각났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를 침공했다는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인과 어린이의 숫자도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났다.

2021년에는 미얀마 내전 때문에 《플루토》를 다시 집어 들었고,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뉴스를 보며 《플루토》를 펼쳤다. 이번에도 《플루토》를 쓰는 건, 또다시 접한 비통한 뉴스 때문이다. 지난 6월 14일, 리비아에서 출발한 배가 그리스 인근 공해에서 침몰해 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똑같은 일이 2015년에도 있었고, 그때는 사백 명이 그대로 익사했다. 이 가운데에는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 6월 유엔 국제이주기구(IOM)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22년 이주를 시도하려다가 사망한 난민은 3,789명이었다. 그중에서는 에티오피아 내전과 예민 내전 등 전쟁 때문에 떠밀린 경우도 많았다.

《플루토》는 인류와 전쟁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풍부하게 던져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성과 별개로 이 작품을 시류와 연관 지어 소개하는 날이 더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플루토》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게 끝난다. “분명 모두가 기도하고 있어요. 그런 날(증오가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이 대사가 이 세상에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플루토》가 ‘옛날’ 전쟁에 대한 비유로만 읽히고, 현실에선 닮은 꼴을 찾아 볼 수 없는 날. 그러니까 ‘전쟁 없는 세상’이 우리에게 도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