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람(녹색전환연구소)
머스크 향을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 보니, ‘포근하고 은은한 살냄새’라고 그 향의 특색을 설명하는 글을 쉽게 찾게 된다. 머스크 향이라는 것이 여러 제품의 라벨에 붙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이름이 사향노루의 영문명인 Musk deer에서 유래한 것은 몰랐다. 이렇게 설명이 이어지고 나니, 굳이 향기를 설명하는 데 ‘살냄새’를 덧붙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짐작하듯이 사향노루가 멸종된 이유는 바로 머스크 향의 원료가 되는 사향주머니 때문이다. 공진단과 같은 한약재의 원료로도 쓰이는 사향은 대대적인 밀렵을 불러왔고, 1979년에서 1985년까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반입된 사향은 154kg에 달하는데 수컷 한 마리에서 20g 남짓의 사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이는 5,000마리에 해당하는 양이다.1) 부산본부세관이 지난 2018년 사향 4억 원어치를 밀반입하려던 러시아 부부를 검거하며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당시 사향 1g이 10만 원 이상으로 매매되고 있다고 한다.2) 이러니 1960년대만 해도 지리산에서 백운산, 강원도와 경북 등 남한 일대를 서식지로 삼았던 사향노루가 절멸의 상태로 내몰리게 된 상황이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최전방의 역동적 야생과 후방의 절멸되는 야생
밀렵과 밀수에 사라진 사향노루가 발견된 곳은 DMZ 일원에서다. 2010년 국립환경과학원이 처음으로 무인 카메라로 사향노루를 찍으면서 소문처럼 사향노루가 있기는 하더라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되었다. 지난 2019년에는 반달가슴곰 새끼가 DMZ 동부지역의 무인 카메라에 촬영되며, 그 가치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남한에서 본격화되던 2000년대 초, 당시 남한에는 5 개체 정도의 반달가슴곰이 남아 있던 것으로 추정되어 사실상 곧 멸종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이를 막아보려고 지난 2004년 중국과 북한, 러시아에서 들여온 곰을 지리산에 방사하며 현재까지 종 및 서식지에 대한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반달가슴곰이 매년 무인 카메라에 잡히는 동부전선은 1951년 부터 2년에 걸쳐 진행된 정전협정 과정에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의 무대였다. 철원 백마고지는 중공군과 국군이 12차례 탈환과 후퇴를 반복하는 데 이 과정에서 중국군은 5만 5,000발, 국군은 22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치열하고 처절한 쟁탈전이 강원도 철원, 양구, 고성 등 동부전선 일원에서 이어졌으며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이르게 된다. DMZ. ‘demilitarized zone’ 우리말로 옮기면 비무장지대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한과 북한이 각각 2km씩 후퇴하여 4km의 폭으로 설정한 지역으로, 이름만 보자면 가장 평화로운 땅이지만 DMZ의 탄생과 지속 과정은 이 지역이 한반도에서 가장 군사화된 지역임을 보여준다. 정전협정 시기 가장 치열하고 무의미했던 전투가 지속된 곳이자, 정전 이후에는 태풍의 눈처럼 남북으로 4km 바깥에 무장한 병력이 촘촘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이 역설적인 것처럼, 전쟁 또한 역설적이다. 전쟁이 인간과 비인간동물 모두의 평화를 깨뜨린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탄생한 DMZ는 한반도의 시민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징이지만, 야생동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공간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300여 가구가 거주하던 마을에는 민간인의 출입 통제로 다시 마을로 재건되지 못하지만, 스러진 마을은 식물들의 자생군락지가 되고 주민이 경작하던 농지는 자연적 천이 과정을 거쳐 하천과 습지로 복원되며 두루미와 같은 멸종위기 조류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 지역을 아우르는 DMZ 일원에서 총 5,929종의 야생동식물의 서식을 확인하며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포함된 101종의 멸종위기종은 전체 법정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37.8%에 해당한다.3) 생태계의 역동이 전방의 전투지와 민간인 출입 통제 지역을 ‘수복’하는 동안, 후방의 야생은 밀렵과 밀수,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계속되는 ‘후퇴’의 길을 걷고 있다.

2020년, 녹색연합의 무인카메라에 찍힌 DMZ의 사향노루. 사진출처: 녹색연합 https://www.greenkorea.org/activity/wild-animals/roadkill/98536/
번영과 평화가 불러오는 단절
평화와 번영이 DMZ에 살고 있는 동식물에게도 같은 의미인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의 관계가 협력과 화해의 분위기로 진전될 때마다, DMZ 일원은 생태적 가능성이 아니라 때때로 개발의 무궁한 가능성의 대상지가 된다. 어떤 도로로 남과 북을 연결할 것인가, 어디를 거점으로 삼을 것인가 어떤 시설로 관광객을 이끌 것인가. 실제로 문재인 정권에서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직후 남북 관계의 화해 분위기에서 문산에서 임진강을 건너 도라산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이 계획되었는데 이 사업은 남북관계 교류 협력을 이유로 여러 인허가 절차를 면제받는 특혜를 누렸다. 여전히 개발 가능성이 있는 이 도로는 한강하구의 대표적 습지이자 멸종위기 종인 뜸부기와 두루미가 계절을 나는 장단반도를 가로질러 DMZ와 민통선 이내의 생태계를 훼손하고 파편화한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남과 북을 경제, 문화적 공동체로 묶어 내기 위해, 더 많은 개발과 연결은 DMZ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정당성으로 포장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된다.
2004년 이후 본격화된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복원은 이제 최소 존속 개체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는 지리산 일원에서 반달가슴곰이 종족 번식을 계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체수를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부는 그 성과를 발표하면서 “인간과 반달가슴곰의 상호 피해 예방과 공존 체계 조성을 위하여 지역사회 차원의 협치”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4) 공존의 체계, 사람과 동물의 서식지와 행동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보전할 것인가의 쟁점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종종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선을 그으면서 움직이고, 이 선을 통해 개발과 도시의 범위를 확정하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생사가 이 경계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면서도, 지리산을 벗어나 경상도와 충청도까지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하는 곰은 포획되어 다시 지리산으로 돌려보내지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다.
평화와 정전의 경계의 유동성과 야생동물
당연하게도 동물은 이러한 경계를 모른다. 지리산의 경계를 넘어선 반달가슴곰처럼 서해의 점박이 물범은 남과 북의 충돌을 불러오는 선을 언제든지 넘는다. 겨울이 되면 북상하여 중국의 얼음 바다 위에서 새끼를 낳고, 봄이 되면 함께 돌아온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이 지금처럼 높이 올라가지 않았을 때는 중국과 북한과 남한의 경계를 얼음을 타고 유영하듯 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초소에서 내려다보는 군인들은 바다 위로 봉긋이 올라오는 점박이물범을 ‘무장 공비’로 오해하여 사살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백령도의 군인들도 북방한계선을 넘는 것이 ‘무장 공비’만이 아니라 물범도 있다는 것을,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 점박이 물범. 사진출처: 이상규(메인 이미지의 물범들도 이상규님의 사진)
그러나 때때로 경색되는 남북 관계는 이러한 인식과 상관없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에서 무력시위나 군사적 도발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미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녹색연합이 2013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2km의 폭으로 유지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철책선을 밀고 들어가며 DMZ의 면적을 축소시켜왔다. 1953년 992㎢이었던 DMZ의 총면적이 2013년 570㎢로 43% 줄어들었으며 일부 지역은 군사분계선에서 철책선의 거리가 1km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정전의 시간이 만들어 낸 DMZ의 생태적 가치가 지속해 훼손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평화와 정전의 경계로서 DMZ와 서해와 동해의 북방한계선은 남북 관계에 따라 그 의미나 경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는 인간의 세계에서만 유의미한 것은 아니게 된다. 인간의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버리지만, 인간이 만든 경계에 철저하게 한정되어버리기도 하는 야생의 세계에 미치는 유의미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정전 70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곳에서의 종전은 남과 북의 협력과 인간만의 번영이 아니라, 야생의 역동을 수용하는 평화가 되어야 한다.
각주
- 김종택, 김건중, 김현철. 2007. 멸종 위기종 사향노루의 서식지 조사. 한국가축위생학회지, 30(3), 459-466
- 부산본부세관, 2018 8. 23 4억원 상당 사향 밀수 러시아인 부부검거. https://www.customs.go.kr/busan/na/ntt/selectNttInfo.do?mi=7174&nttSn=42831
- 환경부 2018. 6. 11. (보도자료) DMZ에 멸종위기종 101종 포함 야생생물 5,929종 서식
- 환경부. 2018. 4. 16 (보도자료) 지리산 반달가슴곰 50마리 넘었다…올봄 11마리 출산 http://www.me.go.kr/home/web/board/read.do?boardMasterId=1&boardId=855510&menuId=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