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만화평론가)

 

 

유난히 고된 여름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유례없이 치솟은 기온 때문에 많은 이가 숨을 거뒀다. 이상동기 살인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멀쩡히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생명을 잃는 일도 있었다. 이에 더해 이번 여름이 유난히 심상한 건, 막연히 미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기후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체감된 첫 번째 계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비가 오지 않을 때마다 ‘기후 위기 때문인가?’ 의구심을 품은 날이 많았지만, 올여름처럼 기후 위기를 많은 사람이 동시에 실감한 날은 드물 것이다. 오죽하면 누구를 만나든, 아니면 이메일을 받더라도 모두가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로 대화의 포문을 열곤 했다.

만화에서도 기후 위기는 흔한 소재다. 이전에는 로봇의 반란이나 나라간의 전쟁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는 설정이 많았다면, 이제는 곧잘 기후위기가 인류 멸망의 핵심 원인으로 그려진다. 물론 기후위기의 풍경은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잠시도 나갈 수 없는 메마른 땅(<숲속의 담>)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10미터가 거뜬히 넘는 거대 물고기들이 호시탐탐 인류를 위협하는 곳(<조의 영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웹툰 <물 위의 우리>는 해수면이 높아져 대다수의 땅이 물에 잠긴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일곱 살 어린이 ‘한별’이 아빠 ‘호주’와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깥에 나가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아주 오래전 호주가 살던 고향, 양지다. 양지에서 한별은 처음으로 또래 아이들을 만나며 그들과 일상을 나누게 된다. 겉보기에 양지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마을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상한 점 하나 둘 드러난다. 여기에 한반도에 드리운 전운(戰雲)과 이 마을의 비밀이 숨어 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기후 위기로 자원이 극심하게 부족해진 상황에서 한반도는 이미 큰 분란과 전쟁을 한 차례 겪었다. 사실 기후 위기조차 전쟁 때문에 가속된 것이다. <물 위의 우리>에서는 작중 인류가 전쟁에게 승기를 잡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어떤 내용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풀리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기후가 급격히 변화했으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기후 위기로 다시 대륙마다 국지전이 촉발된 것으로 그려진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는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역의 욕심과 배반으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이른바 ‘잠실’은 이런 혼란을 중재하려 나섰지만, ‘잠실’ 지역이 전국으로 보급하던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획득하려는 무법자들의 야욕으로 도리어 더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어린이, 노인 등 약자들은 마치 물건처럼 팔려 다녔다. 특히 한별의 삼촌 ‘팔호’는 끔찍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아주 어린 시절, 그는 단지 다른 이들의 ‘재미’를 채워주기 위해서 친형과 배틀 로얄을 벌여야 했고, 이후 ‘폐급’으로 분류되어 폐기물 처리소에 버려졌다.

 

캡션

<물 위의 우리> 47화

 

그러나 삶이 끝난 것만 같았던 팔호에게도 기적 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그가 버려졌던 쓰레기 처리장 안에 팔호처럼 버려진 이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쓰레기 폐기물 처리장 안에서 새로운 삶터를 꾸렸고, 팔호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땅에서는 이미 존재를 감춘 인정과 배려, 사랑 같은 것들이 놀랍게도 지하 쓰레기 처리장 안에서 움트고 있었다.

양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알고 보니 양지의 촌장인 ‘선원’이 전대 촌장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나름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호주와 선원은 같은 아버지 아래서 자랐는데, 아버지는 마을의 자원을 탈취하러 온 무법자들에게 순순히 모든 것을 내놓던 사람이었다. 어려운 상황이어도 싸움을 피하고 요구하는 것을 내주며 적의 아이라도 내 새끼처럼 품었다. 선원은 악마라 불리던 무법자의 자식이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인간답게 사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그를 양자로 거두었다. 호주는 아버지의 방식에 반발했지만, 선원은 끝까지 그의 태도를 따랐다. 그래서 아버지가 선원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원도 마을에 탈취하러 온 무법자의 자식을 거두어 입히고, 배우게 하고, 티 없이 자라나도록 성심껏 돌보았다. 정작 선원의 친자식들은 생사조차 알길 없이 인질로 붙잡혀 떠나갔는데도 말이다. 지금 한별과 해맑게 마을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두가 무법자의 자녀다.

인간이 끌어당긴 기후 위기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전쟁은 가장 약한 이들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짓밟는다. 그러나 가장 위태롭게 내몰린 약자들은 어떻게든 공동체를 재건한다. 선의와 배려, 신뢰와 사랑으로. 누구든 이젠 끝났다고 생각한 삶의 낭떠러지에서조차 이들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물 위의 우리>는 참혹한 전쟁 한가운데에서 약자들이 고통받는 장면을 뼈아프게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이들이 살아남는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배신당하고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다정함을 잃지 않고, 이윽고 연대하여 ‘산을 오른다’.[1]

 

표지

<물 위의 우리> 표지 이미지

 

작품은 기후 위기와 전쟁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쇄 작용처럼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했다.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쟁없는세상’의 칼럼 <기후위기, 전쟁의 원인이자 전쟁의 결과>에서 짚고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기후위기는 전쟁의 ‘원인’이자 ‘결과’다. 수십만 명이 사망한 수단 다르푸르 사태의 경우, 가뭄으로 인해 사막화가 진행되던 것이 갈등의 단초였다. 그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 식량, 식수 등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기후위기는 전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배출된 온실가스는 무려 1억 2천만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2] 도시를 파괴하는 데에 들어가는 유해 물질뿐만 아니라 침공으로 인해 파괴된 집터를 재건할 때에 들어가는 탄소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현실에서도 전쟁은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후위기는 다시 전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유달리 잔인했던 여름, 나는 <물 위의 우리>를 읽고 또 읽었다. 읽는 동안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브레이크를 당길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오래 생각했다. 결국 전쟁을 멈추고야 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도. 아직 답은 모르겠지만,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나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선원’의 결의에 동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에도. 그래서 9월 23일 기후정의대행진에 나가 볼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만의 ‘브레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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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산을 오른다: 해수면이 높아져 지대가 낮은 곳은 물에 다 잠기면서, 고산지대 사람들이 생존에 유리해졌다. 이에 산을 중심으로 요새가 조성되었는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처단 당한다. <물 위의 우리>에서 산을 오른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권력에 항거하는 행동이다.
[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나>, 김지현 기자, 2023.06.07., 뉴스펭귄, http://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