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혜숙(평화를만드는여성회 이사)
박노자 선생님의 강의는 자료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의를 듣는 중에 전쟁이 쉽게 끝날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고 절망적인 느낌이었다가 어느 순간 안심이 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것은 제가 평화활동을 하는 관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라는 것과 비록 적은 수이지만 평화활동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어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이지요. 평화운동의 신발끈을 다시 매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러시아는 1991년 이후 1997년, 2000년만 빼고는 전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가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전 세계가 고통을 당하게 하고 있지요. 오늘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해도 좋다고 비밀리에 허락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전쟁자본주의’란 개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전쟁 없이 굴러 갈 수 없다는 것. 세계 산업자본주의란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전쟁을 먹고 자란다는 것. 자본주의 국가에 전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냥꾼에게 불살생계를 설법하는 일과 다를 게 없다’란 말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세력이 누구인지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월남특수로 한국의 한진과 현대가 큰 이득을 보았고, 지금도 전쟁으로 인해 한국 방산업체들의 수익은 늘어나고 있지요.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구조적 실체는 있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더 큰 존재로 생각되는 것 같고, 개인이나 작은 조직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빠지게 되기도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미국의 무장 갈등의 서곡으로 보고, 현재를 중-미 초기 패권교체기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전쟁에 반대하면 처벌을 받게 되므로 전쟁반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없고, 전쟁으로 러시아의 제조업이 활성화되고 실업율이 3%정도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어서 러시아 국민들은 소극적 지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민중이 정부를 압박해서 침략을 철회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러시아 민중은 탄압이 심하므로 전쟁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시민들의 평화 인식을 높이고 시민들의 저항이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패권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고 어떻게 평화정책을 유지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하셨는데 이미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패권에 스스로 포섭되어서 다변화된 균형외교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답답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국가권력을 막기 어렵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전쟁을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만들어 가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정전상태가 70년이 넘어서고 있는 한반도는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박노자 선생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체제가 만들어져야 하고, 남북한 신뢰 구축, 정보교류와 남·북한 쌍방 군축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씀하십니다.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남한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한미군사훈련과 한미일군사훈련이 활발하게 시행되고, 북한도 남한을 ‘동족 아닌 적대적 관계’로 규정하며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보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평화운동의 상상력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또 ‘평화세력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가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거시적 관점의 접근도 필요하고 미시적 관점의 접근도 필요하겠지요. ‘시민들에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도록 어떻게 설득해 갈 것인가?’가 저에게는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쟁 반대를 구호로 외치는 것을 벗어나서 어떻게 촘촘하게 설득해 갈 수 있을까요?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군축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편이 아닌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적이미지를 어떻게 줄여 나갈 것인가? 질문이 많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신시아 인로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페미니스트의 호기심으로 손전등을 비추듯이 일상에 있는 군사화의 실체와 맥락을 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고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을 문제화 할 때만 탈군사화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군부대에서 어린이날 군부대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을 볼 때나 나라사랑교육을 하는 것을 보면 분노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만1세에서 2세 사이의 아기들이 가는 문화센터 놀이체험 프로그램에 군복을 입히고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는 경악하게 됩니다. 구조적 폭력구조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고, 일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폭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폭력 감수성을 높이고 폭력에 민감해지는 것이 평화운동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평화활동가들이 서로 소통하며 협력해 나가는 ‘다정함’으로 연대해 나가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