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욱(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강성현 저, 푸른역사, 2024)는 폭력 이론부터 시작해 제노사이드의 역사, 제노사이드의 정의 및 범위를 둘러싼 논쟁, 제노사이드에 대한 사회학적 재구성, 제노사이드 이론을 적용한 한국전쟁 전후 학살에 관한 실제 사례분석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훌륭한 제노사이드 입문서다. 제목처럼 이 책을 읽으면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저자가 재구성한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이다.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보통의 접근처럼 대량 학살과 파괴로만 이해하는 것이 제노사이드를 협소한 틀에 가두는 것이라 비판하면서, 제노사이드를 메커니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메커니즘이란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작동 원리 혹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은 제노사이드에 작용하는 힘과 전개 과정을 파악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어떤 국면에서 개입해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봐도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소략하게나마 저자가 제시한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을 소개해본다.
첫 번째는 무장 권력 조직들의 ‘조직화’ 단계다. 정치권력이 국민에게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부과한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반공주의다. 군경・관변조직・준군사단체 등의 무장 권력 조직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해당 이데올로기에서 배제되는 이들에 대한 파괴를 수행하게 된다. 두 번째는 민간인 사회 집단들에 대한 ‘타자화’ 단계다. 특정한 민간인 사회 집단이 ‘외부’로 규정되고 범주화되면서 ‘외부’로 분류된 집단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일상화된다. 당연히 외부 집단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타자화’가 ‘비인간화’에까지 이르면 ‘살처분’ 식의 파국이 찾아온다. 세 번째는 파괴와 부정 단계다. 파괴는 학살과 절멸이다. 파괴의 대상은 타자화된 집단을 포함해 그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되는 민간인까지 포함한다. 부정은 폭력의 가해자들이 그들이 수행한 폭력에 대해 부인하고 더 나아가 정당화하는 것이다. 세 가지의 단계는 일차적으로 선형적이지만 동시에 서로 중첩되면서 상호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가령, 부정 단계에서 강화된 이데올로기가 다시 무장 권력 조직들에게 내면화되면서 파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5장에서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을 적용해 실제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을 분석한다. 저자는 제주4・3사건, 여순사건, 예비검속 사건, 형무소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 혐의 사건, 군경 토벌 관련 사건, 미군 사건, 적대 세력 관련 사건 등으로 범주화된 한국전쟁 전후의 학살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및 전쟁 형성이라는 두 국면적 사건과 맞물려 발생했던 하나의 제노사이드 내 여러 ‘에피소드적 사건’들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를 “연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한국의 사회심리적 구조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적대와 배제의 규범들이 어떤 구체적인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표지
도덕과 사회적 기억
지난 11월 27일 열린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북토크에서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 중 하나는 최성용 연구자가 제기했던 ‘제노사이드를 도덕의 문제로 바라보면 어떨까’란 제안이었다.
나는 도덕을 개인을 초과하는 무엇이라 생각한다. 도덕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도덕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다. 어쭙잖게 참여한 에밀 뒤르켐 세미나에서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는 사회적 연대를 위해 도덕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뒤르켐이 상정하는 사회적 연대는 개인의 차이를 인정한다. 뒤르켐은 도덕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 딱히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도덕은 일종의 규제로 작동하면서 개인을 사회로 묶는다. 개인은 사회적 합의 속에서만 연대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전체주의와 같은 체제에서 강요로 이뤄진 사회적 합의에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공동체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도덕은 사회적 기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얼마 전, 북한산에 가려고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이라 등산객이 많아 줄을 서야 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한 무리가 새치기를 하려고 해서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제지했다. 나는 비교적 줄의 앞쪽에 서 있던 터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옆으로 한 중년 남성이 들어오면서 ‘다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돼’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이 장면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북한’과 일종의 ‘부도덕’(새치기)이 여전히 강하게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돼’라는 말에는 부도덕한 상대에 대한 절멸의 의도가 들어 있다. 그냥 한 말일 수 있지만, 어쩌면 비의도적인 말 속에 폭력이 배어있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의도적인 절멸의 언어를 사용했다. 비상계엄의 명분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쳑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포고령 위반자는 ‘처단’한다는 엄포가 담겼다. ‘파렴치’와 ‘선량’이라는 도덕과 관련된 말 뒤에 ‘척결’과 ‘처단’이라는 말이 붙었다.
저자는 제노사이드 메커니즘의 두 번째 단계인 민간인 사회 집단들에 대한 ‘타자화’ 단계를 설명하면서 ‘도덕적 의무의 세계’를 언급한다.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그들 편인지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이 타자화의 시작이다. 제노사이드의 경우 타자화는 단순히 배제하고 표적 집단을 결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도덕적 의무의 세계’에 대한 경계를 규정한다. 이 의무는 우리 편에게만 지키면 되고, 그들에게는 지킬 필요가 없다. 의무의 세계 밖에 있는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정상적인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므로 폭력 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243쪽, 강조는 서평자)
한국사회엔 여전히 배타성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의무의 세계’가 존재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부터 이승만 정권을 거쳐 군사정권까지 반공은 도덕과 다름없었고 곧 “정상적인 질서”였다. 이승만은 여순사건 당시 빨갱이를 그 명명이 나타내는 정치적 입장(친공)을 넘어 “악마적이고 비인간적이자 도덕적으로 파탄난 존재”(203쪽)라고 규정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도덕 규정의 지속은 총칼의 힘 때문에 가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다시,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의 5장 뒤에는 바로 ‘부역자 색출’을 운운한 진실화해위원장 김광동의 이야기를 담은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학살과 부정의 연속은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계엄은 부정과 학살의 연속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음을 예시하는 증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계엄 선포 며칠 후 한강의 노벨상 수상기념 강연문에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문장을 읽었다. 계엄을 겪고 나니, 다소 비관적이지만 한강의 문장이 ‘현재는 과거를 죽일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죽일 수 있다’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 이유는 엄혹한 시절 속에서도 어렵사리 이어온 저항의 흐름이 ‘도덕적 의무의 세계’가 규정한 경계를 점점 지워왔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정부 차원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위가 출범하면서 일정 정도의 진실이 규명되었다. 침묵당했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사회적 기억의 지위를 획득했다. 서슬 퍼런 계엄 선포에도 수많은 이들이 망설임 없이 국회 앞으로 모일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군인은 시민이 될 수 없는가?
계엄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군대의 임무는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이번 계엄 역시 근본적으로는 국방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저자가 에릭 마르쿠센을 인용해 적고 있듯이, “제노사이드와 총력전의 대량 학살 모두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205쪽)로 행해졌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서도 국가안보라는 명분이 내세워진다.
군인을 포함한 여러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번 계엄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실행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무참한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나는 이번 계엄이 파국으로 귀결되지 않게 만든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실제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들의 ‘주저함’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군인들 스스로도 혼란스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한다. 1980년 5월 광주 이후 한국사회에선 ‘군대가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면 안 된다’는 원칙이 사회적 합의로 자리잡아왔다. 이러한 합의와 군인의 ‘주저함’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 함께 있었던 군인과 시민이 적어도 유사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징병제 연구자이자 내가 속한 단체의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고 있는 김선우 씨와 이번 계엄 상황에서의 군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이야기 중 핵심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이제 군인이 ‘군복’ 입은 시민이 아니라, 군복 입은 ‘시민’으로 향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군인과 시민의 도덕은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어왔다. 군은 언제나 군 조직의 ‘특수성’을 강조해왔다. 특수성의 근본을 이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명하복’의 원칙이다. 이는 당연히 민주주의의 원칙과 배치된다. 이번 계엄의 주요 행위자로 밝혀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한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에 군인들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정확히 그렇다. 저자가 짚고 있듯이, 명령에 따라 학살을 저지른 이들은 “도덕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다른 초점을 획득한 것이다.” ‘상명하복’은 도덕으로 작동했다. 여기서 가해자의 “도덕적 관심은 권위가 바라는 기대에 한 개인이 얼마나 잘 부응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164쪽).
과연 계엄이 아닌 일상에서 여인형의 발언이 나왔다면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까? 박정훈 대령이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급히 피신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박정훈 대령의 ‘항명’은 일각에서 진정한 군인정신이라고 이야기되었다. 한 병사의 죽음에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그의 태도는 ‘상명하복’이 아닌 민주주의에 기반했다. 나는 박정훈 대령의 사례가 군인의 도덕과 시민의 도덕 사이의 구별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증거라 여긴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며 제주4.3 진압 작전에 출동을 거부한 여수14연대의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항거에 여수와 순천 시민들도 동조했다. 그 끝은 파국으로 귀결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나마 군인과 시민의 도덕은 함께였다. 민주화 직후인 1987년부터 1993년까지 군 복무 중에 탈영해 ‘양심선언’을 한 44명의 군인・전경 역시 존재했다. 양심선언 군인・전경은 군 인권 보장, 전투경찰대 폐지, 남북 상호 감군 등 군 민주화와 공동체의 안전 및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군대로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며 ‘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펼쳤던 여러 시민들이 있었다.
다시, ○○란 무엇인가
다시 한강의 문장을 떠올린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장의 답을 박솔뫼가 『미래 산책 연습』에서 제시한 기억의 정의에서 구했다. 『미래 산책 연습』에서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본다. 이 역설이 가능한 것은 기억이 과거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함께 미래를 바라본다. 서로를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에 ‘다시’가 들어간 것이 매우 좋았다. 앞서 말했듯, 한국사회의 심층에는 여전히 제노사이드의 원리가 각인되어 있다. 이번 계엄은 분명 시민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는 계기로 작동했다. 다시 물을 수 있었던 이유는 먼저 물었던 사람들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다. 이승만 집권기에 4.19혁명, 박정희 집권기에 부마항쟁, 전두환 집권기에 6월 항쟁이 있었다. 인권의 역사도 그렇다. 인권은 ‘천부인권’ 식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인권은 확장된다. 젠더와 인종, 국적, 장애, 더 나아가 종차별과 동물권까지 그 개념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정상성을 거듭 물으며 그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물어왔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어땠나? 한국군은 그 태생부터 제노사이드 가해의 경험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 경험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나는 이러한 반복이 다시 묻는 데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묻지 않는다면 잊게 된다. 잊는다면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한국군은 다시 그 존재의 기로에 서 있다. 정치권력에 편승해 그 총부리를 내부로 겨눴던 태도를 반성하고, 상명하복을 넘어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를 다시 묻고, ‘적’을 강조하는 군사적 방식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맹신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그 존재를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