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우(한베평화재단 활동가)

 

고민이었다. 폭력에 저항하는 비폭력은 가능한가. 비폭력은 폭력과 부정의한 권력에 과연 승리할 수 있는가. 평소에도 이러한 질문을 품어왔던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내 직업은 평화활동가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아마추어 평화주의자/비폭력주의자다. 스스로를 굳이 ‘아마추어’라하는 이유는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폭력/평화주의에 대한 망설임과 회의주의 때문이다. 내가 평화활동가로 성장해온 과정도 비폭력에 대한 신념을 탄탄히 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평화에 대한 게으른 맹신이 되지 않도록 비판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이 책을 읽고 내면에서 일어난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느꼈다. 아직 이 서평의 서두지만 마이켄의 책에 대해 이렇게 추천한다.

당신이 아마추어 평화주의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당신이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던 이유를 찾고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비폭력주의와 직접행동, 시민운동에 관한 여러 책과 논문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2025년 한국에 소개된 마이켄의 책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저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이 되었던 시기에 이 책을 썼다는 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1년. 이 시간이 마이켄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 그 의미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평화에 대한 절망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류에 대한 낙담이다. 그런데 누가 정의인지를 떠나 서로를 결국 파멸로 몰고 가는 전쟁의 긴 소용돌이는 오히려 폭력이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확신을 더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쟁이 가져온 절망이 아이러니하게 비폭력 저항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품게 했고 이 책을 쓰게 했다고, 나는 마이켄의 마음을 상상해보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 책은 대한민국이 2024년 12월 게엄 사태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직후 번역 출간되었다. 윤석열의 12월 3일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라는 가정 속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는데 아마도 나와 비슷했던 한국 독자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계엄군의 점령 하에 한국 시민사회가 과연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여순, 제주, 4.19, 5.16, 5.18, 6.10 등의 역사를 종으로 횡으로 대입하면서 회의주의자의 질문과 마이켄의 대답을 읽어나갔다. 이 책이 나에게 선물한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는 비폭력 투쟁이 무력 투쟁보다 목표 달성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와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례였다. 비폭력 저항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그 사회가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다양한 방법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비폭력의 승리를 가능하게 하려면 군사 훈련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비견될 정도의 준비 과정과 훈련 그리고 전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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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이 기획하고, 오리(최정민)가 번역한 이 책은 서점 뿐만 아니라 전없세 사무실에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비폭력 저항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이다. 우리는 보통 폭력에 항거한 위인들의 용감하면서도 영웅적인 행위들을 주로 기억한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들이 감탄과 존경을 자아낼 수는 있겠지만 ‘나도 저렇게 해볼까’라는 마음까지 끌어내지는 못한다. 이 책에서 마이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례들은 흥미롭다. 중국의 점령에 저항한 티베트인들의 빈 액자 투쟁, 나치 점령에 항거한 덴마크인들의 2분 파업, 네덜란드 교사들이 단결하여 나치에 저항해 학교를 다시 열게 만든 사례, 발코니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크게 두드리며 항의하는 전통을 가진 라틴아메리카인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점령군과 권력을 당혹스럽게 하는 이러한 투쟁들은 독자로 하여금 비폭력 저항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눈을 뜨게 한다. 그것은 비단 폭력을 전복시킬 수 있는 비폭력 저항의 기술이나 효용성에만 있지도 않다.

마이켄은 비폭력이 그자체로 폭력을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을 신뢰한다. 그 힘은 평화가 옳다는 도덕적 신념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 그래서 마이켄은 우크라이나에서 비무장 평화투쟁을 전개한다면 어떻게 될지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그것이 러시아인들의 연대 저항을 이끌어낼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에 대한 신뢰이며 부당한 폭력의 진실은 그 어떤 권력의 힘으로도 감출 수 없다는 확신에 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천안문 항쟁의 역사에서 충격과 좌절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잔혹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평화 투쟁의 저력을 짚어낸다. 그는 인간과 역사에 너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은 아닐까. 두 번에 걸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지만 다양한 선택지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내 마음에 꽂힌 이 책의 하이라이트 문장이다. 나는 긴 시간 베트남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언젠가부터 ‘선택지’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처음에는 총을 든 군인과 민간인만 보였던 베트남전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이에 존재했던 다양한 인간의 군상과 상황이 보였다. 민간인은 물론 군인들조차도 다양한 저항과 비협력, 보이콧, 폭로 등으로 전쟁과 권력에 저항했던 역사의 기억들. 남베트남군 초소에 쫓아와 아들에게 집으로 돌아오라 호소하며 투쟁한 베트남의 어머니들이 있었고, 한국군에게 430명의 민간인이 몰살된 빈호아학살 이후 군청 앞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꽝응아이의 민중들이 있었으며, 밀라이 학살이 벌어지던 순간 살인 명령을 거부하고자 자신의 발에 총을 쐈던 미군 흑인 병사 허버트 카터 등 무궁무진한 비폭력 저항의 이야기가 베트남전쟁에도 존재한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양자택일의 순간에 놓일 때가 분명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권력자가 우리에게 주입한 환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침착함 속에서 조금만 더 눈을 뜨면 다양한 선택지속에서 우리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는 믿음을 나는 지금도 키워나가고 있다.

올해 겨울, 여의도와 광화문의 하늘을 수놓은 다양한 응원봉과 깃발들, 그리고 기존에 없던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와 연대를 일구어내는 현장들 속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선택지를 창조해내는 힘이 참 놀라웠다. 마이켄의 <전쟁 없는 세상>은 비폭력 저항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나는 조금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비폭력 저항의 선택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다양성과 창조성의 힘이 조직화될 때, 우리는 권력과 폭력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20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