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분(부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
저자 주: 이 글은 부산경남지역 무기산업 문제의 근본 원인과 과제 이 발표는 부산평통사 마창진 모임은 2024년 5월 11일과 6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 창원지역 군수산업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는 오픈세미나 내용을 보완한 것으로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국제인도법과 무기
인류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소명 아래 유엔을 결성하고 유엔헌장을 채택했다. 유엔이 미국 등 강대국의 패권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은, 일면적이다. 유엔 회원국이 동등하게 참가하는 유엔총회는 초지일관 유엔헌장에 따라, 각 나라의 주권과 자결권의 존중 아래, 국가간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주옥같은 결정을 내놓았다. 유엔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핵패권을 쥔 강대국에 의해 좌우되는 안보리이다.
이 점에 주목하면서 유엔헌장 2조 4항을 상기하면, 이 조항은 강제규범으로서 무력의 사용은 물론, 무력의 위협도 금지하고 있다. 무력의 위협은 이른바 억제로서, “힘에 의한 평화”는 바로 이 억제이론을 표현하는 것이다.
유엔헌장이 있기 이전부터 전쟁을 막거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국제인도법(전시국제법)의 기원이 되는 세인트피터스버그 선언(1868)은 국가가 전시에 달성해야 할 유일한 합법적인 목적은 적의 군대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불필요하게 전투원의 고통을 가중시키거나 그들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였다.(불필요한 고통 금지의 원칙) 국제인도법은 또한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별할 수 없는 무기 사용도 금지하고 있다.(구별의 원칙) 무기의 발달은 국제인도법을 늘 추월하기에, 마르텐스 조항(1899)은 ‘양심과 인도의 원칙’에 따를 것을 규정함으로써 전쟁에 의한 희생을 줄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와 아울러 군사적 필요성은 앞서 언급한 불필요한 고통 금지, 민간인에 대한 피해 금지, 인도의 원칙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비례성의 원칙도 국제인도법의 원칙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국제법적 차원에서 볼 때 창원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이끄는 무기들은 유엔헌장과 국제인도법에 어긋나며, 특정무기(집속탄 등)금지조약 등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
불법적인 선제공격 전략과 작전계획은 초공세무기의 토양
유엔헌장은 오로지 무력공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격퇴하기 위한 무력행사(자위)의 경우만 무력의 사용을 허용한다.(유엔헌장 51조) 그런데 한미연합의 군사전략은 대북(핵)선제공격을 전제로 한 ‘맞춤형 억제전략’과 ‘4D 전략’이며 이와 같은 군사전략에 기반한 작전계획은 ‘작전계획 5022’다.
한국군은 이 같은 전략과 작전에 따라 3축 체계(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 체계)를 구축하고 이 체계별로 무기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3축 체계 구축을 위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35.2조원, 2023년부터 2027년까지 30조 5,242억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안보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하는 게 현실이다. 북한은 한미연합의 전략과 작계, 공세 무기체계 강화에 따라 재래식 전력을 증강하면서 군비경쟁에 나섰다. 한미는 핵협의그룹을 만들고 핵작전지침을 세우며 CNI(재래식+핵 통합) 개념을 수립하고 이를 적용한 연습을 벌이고 북한도 핵선제공격을 명시한 핵법령과 핵보유국 지위를 재천명하며 전술핵을 실전배치하는 등 남북 간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은 핵대결의 첨예한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이 같은 초공세적인, 선제공격을 전제한 전략과 작계는 고성능 공세무기를 위주로 한 무기산업, 방위 및 군수산업 확대의 토양이 된다. 고성능 공세무기는 앞서 언급한 국제인도법 상 원칙들을 훼손할 가능성을 높인다. 성능이 좋은 무기들은 전투원들에 대한 살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중에서 투하하는 고성능 폭탄, 화구가 넓고 포탄을 멀리, 빨리 날아가게 해주는 전차와 파괴력이 큰 포탄들이 전투원에게만 터질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비례성 원칙이 훼손되었는가 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최신 무기들이 학교와 병원에서 어린이와 노인들의 생명을 빼앗아간다.
MRO와 조선산업, 창원지역의 무기산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5월 28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해양방위산업전에는 국내 굴지의 조선산업체들이 대거 참여한다고 한다. 미 본토방어와 중국 억제를 우선순위로 하고 동맹국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조선산업을 자국의 해군 전력 유지 보수 정비(MRO)를 위한 군수기지로 동원하려는 정책이 이 행사의 배경에 드리워있음을 짚어두고자 한다.
창원지역의 방위산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비약적 확산 일로에 있다. 한국은 미국과 폴란드를 경유해 155mm 포탄, 전차탄, 기관총탄 등과 K9 자주포와 K2 탱크 등의 살상무기를 간접, 우회 지원했다. 이 무기들은 러시아와 나토간 육상 전력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대규모로, 값싸고 신속하게 제공되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한 천무의 경우 천무와 함께 천무에서 발사하는 확산탄도 같이 수출되는 것으로 의심된다. K2나 K9처럼 창원의 대표적인 군수물자들은 선제공격전략과 작전에 따른 공세적인 군사운용에 동원되는 무기체계다. 이 같은 무기체계들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을 거머쥔 강대국들이 자국의 패권을 위해 저지르는 전쟁놀음에 남과 북이 동맹의 이름으로 무기와 병력을 동원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억제와 동맹은 전쟁을 부를 뿐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방위산업, 첨단 무기산업을 통해 배를 불리는 것은 패권국들과 그에 빌붙어 권력과 부를 누리는 세력들뿐이다.
척박한 현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지구에서 생존을 짓밟히고 생명을 빼앗기는 주민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스스로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의 군대를 약화시키는 것”이 유일한 전쟁의 합법적 목표라고 선언한,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의 인류보다 우리는 오히려 더 야만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닐까?
초공세 무기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거나 지역의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2차 대전 이후 80년 동안, 아니 지금도 가장 첨예한 냉전의 한 가운데서 단 한순간도 전쟁의 위기와 대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평화는 억제(힘)에 의해서 지킬 수 있다는 신화에 많은 사람들이 지배당하고 있다.
이 신화에 맞서려면 억제, 힘이 아니라 평화의 방식으로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지금은 비록 소수일지 몰라도 인류가 전쟁이 없는 세상을 향해 열어온, 평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가장 밝은 빛을 따라 가야 한다. 현실의 제약이 너무 크지만 가능한 방법을 찾아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