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욱(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지역의 ‘지역’

책의 부제는 ‘길에서 수집한 광주의 이미지들’. 서평을 쓰기로 한 때는 마침 오월.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저자가 광주에서 길어 올린 여러 이미지 비평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광주’라는 ‘지역’에 사는 여성 연구/비평가로서 정체화한다. 광주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이미지는 1980년 5월이다. 지역의 이미지란 무엇일까? 소위 ‘지역’은 중앙과 대비되는 뜻으로 쓰인다. 즉, 변두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지역의 연구자이자 비평가로서 내가 사는 광주를 낯설게 바라볼 때, ‘광주’에 입혀진 이미지 그리고 거기서 이탈하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광주’를 이탈해 있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남아 있었던 이미지는 잊히기 직전의 기억과 이름 없는 존재들, 그리고 철거가 확정된 한 공장에도 있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8쪽.

책의 첫머리, 저자는 “2021년과 2022년에 학동과 화정동에서 일어난 붕괴 사고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광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쓴다. 뿌리는 겉에선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갈래를 지닌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수만 갈래의 뿌리 중 어느 편에 있을까? 그가 만난 이미지들은 모두 역사를 지녔다. ‘붕괴’의 이미지 역시 그렇다. 붕괴를 가능하게 했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그 역사를 무시한 채 함부로 1980년 5월을 말할 수는 없다.

“서울 강남에도 변두리가 있고 용산역에도 노숙자들이 사는 텐트촌이 있듯, 어디에나 ‘지역’들이 있다. 우리는 그 ‘지역’과 함께 그리고 그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11쪽.

저자의 시선은 ‘지역’인 광주에서도 또다른 ‘지역’, 즉 주변화된 것들에 머문다. 쫓겨난 존재들의 자리에 함께 있으려 한다. 왜? 저자는 선언한다. 주변, 즉 ‘지역’이야말로 “도시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다.”

 

잊지 않는 = 잊을 수 없는

“그가 찍은 모든 것들은 무덤이 된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23쪽.

책에는 광주의 사진가 오종태가 찍은 눈 덮인 무등산의 풍경 사진 두 장이 나온다. 내가 무등산에서 보았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의 제목은 「조형 6– 墓(Grave) Ⅲ」, 「조형 15」. 오종태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종군 사진가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시체 사진을 찍었다. 저자의 말처럼, “무수한 시체 더미와 잔해들을 자신의 눈으로 오랜 시간 마주한 사진가에게는, 그 순간이 종결되었다고 해도 시신들로 가득한 풍경이 유실되지 못하고 신체화”되었을 것이다.

어떤 거대한 고통을 마주한 자로서, 그는 오래도록 그 죽음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물론 이는 똑같은 식민지 조선인이자 관동군으로 만주에서 학살에 가담한 몇몇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던 태도다). 그런 그에게 근대화는 또다른 “전쟁의 잔해”를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산은 재난들의 잔해가 오랜 시간 모이고 침식된 곳”이었다. 무엇보다 1980년 5월 광주는 다시금 직접적으로 그 잔해들을 목도해야 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진 두 장의 이름은 그의 마지막 사진집에서 「아우슈비츠의 잔해 1」, 「아우슈비츠의 잔해 2」로 재명명된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신체에 새겨진다. “죽은 자들 옆에서, 자기에게 엄습할 죽음을 진저리치면서 받아들이는 산 자들의 위치는 죽은 자들의 옆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도미야마 이치로를 인용하면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일생을 따라다닌다. 이미 목격한 자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이미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맥락화한다. 무등산에 자주 오르는 누군가가 ‘아우슈비츠’라는 제목의 무등산 사진을 보았을 때, 무등산의 풍경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책 전반에 드러나는 저자의 태도 역시 그렇다. 저자는 목격자로서 대상이 품은 고통의 역사를, 고통을 은폐하고 주변화한 역사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공적 기억과 재개발

책의 2, 3장(‘광주2순환도로’, ‘방직공장의 가장자리’)에는 소위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시 이미지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진행되는 개발로 인해 배제되고 삭제되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도시 전반을 정비하는 재개발인 순환도로 공사는 항쟁의 흔적을 남김없이 삭제했다”는 대목은 그 삭제가 단순히 이른바 ‘역사부정’ 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의 역사 지우기를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규모에서 자행되었음을 드러낸다. 삭제는 외부뿐 아니라 광주의 열망으로 진행된 것이기도 했다.

영화 『김군』에서 저항의 행위자로 등장했던 넝마주이 등의 도시빈민들에 대해 이미 박정희 정권기부터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청소’해야 한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에서 이들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학동과 상무지구 등에 있던 집결지와 거기 살고 있던 여성들은 말 그대로 ‘철거’되었다. 황금동에서의 성매매 여성들이 다소 최근에서야 5.18의 ‘숨은 주역’이었음이 알려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더 많은 역사가 삭제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소위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진행되는 개발은 지역의 ‘지역’을 더 철저하게 소멸시키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광주는 기념 공간에 모든 잔해와 흔적을 모아 보존해 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깥에는 어떤 표지도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기념하고 추모하는 일만이 의미 있다는 듯 기념과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 공원은 늘어 가지만, 고통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몸과 기억은 그 바깥에 위태롭게 남겨져 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106쪽.

다시금 기억의 공공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사 문제를 말할 때, ‘사적 기억에서 공적 역사로’라는 명제가 언급된다. 저자는 선거철 광주 망월동을 방문한 정치인의 이동 경로를 짚는다. “기념이 정치로 작동하는 경로를 타고, 서울에서 기차 타고 온 사람들은 광주를 마주치는 대신 말 없는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국립5.18민주묘역을 비롯해 몇몇 과거사 관련 묘역에 세워진 거대한 위령탑은 현충원 같은 국립묘지를 연상시킨다.

국가의 공적 기억, 즉 ‘공식 기억’은 중앙화되기가 쉽다. 도시 외곽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곧장 도심으로 향할 때, 주변화되는 존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저자가 바라보는 방향은 정반대다. 저자는 사라진 집결지 여성들의 흔적을 수집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통해 오히려 집결지가 “순환도로로 둘러싸인 이 도시 전체로 확장”될 가능성을 떠올린다. 공공성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구석진 골목에 있다.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자

“기억이 인도한 길은 흔적이 장소뿐만 아니라 몸에도 남아 있음을 알리는 표지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 142쪽.

누군가 『이미지와 함께 걷기』의 알라딘 100자평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나친 비장함과 과도한 선언적 문장이 아쉽다.” 이 문장을 읽고 어느 서평에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아닌 그 누군가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나 대신 고통스러운 풍경을 항상 마주하며 산다.” ‘나 대신’이라는 문구에 잠시 머물렀다. 저자 역시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훨씬 더 깊은 고민에 잠기지 않았을까. 이 책이 그러한 고심과 마주하면서 쓰였다는 걸 읽어냈다면, 그 ‘비장함’과 ‘선언적 문장’이 현실에 단단히 붙박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 제작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던 시절을 자주 떠올렸다. 가이드북 후기에 이런 글을 썼다. “여수 답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에 꿈을 꾸었다. 깊고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눈만 뜨고 있던 꿈이었다. 깨어 보니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 가만히 누워 만성리 형제묘 구덩이에서 숨진 이들을 생각했다.” 지난 3월,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 발화지점 중 한 곳이 산청군 시천면이었다. 그곳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전소된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내용을 간추리면, 결국 저자가 관계 맺은 여러 현장에 보내는 ‘안부 편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흔적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끝끝내 세월의 풍화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돌보지 않으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다행히 흔적을 나눠 가진 이들이 있다.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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