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비건퀴어에코페미니스트)

 

얼마 전 6월 7일, 내가 자란 도시 대전에서 열린 제2회 대전 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서울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풍성한 부스와 흥겨운 공연, 연대 발언이 있었고,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의 알록달록한 무지개 색과 과감한 패션이 단연 돋보였다. 이분법적 젠더 표현에서 벗어나 모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차려입은 이들의 자유롭고 즐거운 표정을 보니 덩달아 내 마음도 들뜨는 동시에 편안해졌다. 여기서는 나의 모습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전과 함께 서울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6월은 국제 성소수자 인권의 달로, 자긍심을 강조하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로도 불린다. 1969년 6월 미국 뉴욕 스톤월 주점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 단속에 맞서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매년 프라이드 먼스가 되면 세계적으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글을 쓰는 지금, 이번 주 토요일인 6월 14일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갈 생각에 무척 신이 난다.

퀴어는 내 정체성의 일부이다. 보통 퀴어는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말로, 당사자들이 ‘퀴어(queer, 이상한)’라는 단어를 자긍심의 단어로 전복시킨 역사가 있다. 나를 퀴어라고 소개하면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여성인 나는 남성으로 보이는 사람과 헤테로(이성애)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성소수자로 보이지 않는데 왜 자신을 퀴어라고 정의할까? 과거에 여성과도 연인 관계를 맺었던 나를 양성애자(바이섹슈얼)로 설명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오랫동안 나의 성 정체성·지향성을 고민해 온 나에게 나를 표현하는 언어를 찾는 과정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한 학기마다 좋아하는 남자애가 바뀌는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X)’였다. 동시에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외치던 인권 소녀였지만 나 자신이 성소수자 당사자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여자인 짝꿍을 열렬히 짝사랑하는 나를 발견했다. 친구가 너무 귀여워서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고, 늘 붙어 있고 싶고, 친구의 답장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스스로에 놀랐다. 낯설었다. 내가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다니?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지만, 정작 내가 당사자라고 생각하니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말할 때 당당하던 나는 싹 사라지고,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때는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성소수자 단체, SNS 커뮤니티도 찾지 못했기에 커밍아웃은커녕 스스로를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지조차 못했다. 당연히 짝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전보다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 가슴 한구석으로 숨겨두었던 나의 경험을 다시 끄집어내어, 나의 성 정체성과 지향성을 더 탐구하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성소수자로서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레즈비언 관계를 맺어야 할 것 같았다. 남자를 만나는 것은 너무 헤테로스러우니까.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난 남자한테 끌렸고,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기도 했다… 흑).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여자는커녕 남자도 만난 적이 없어서, 희미하고 뒤죽박죽 섞인 욕망만으로는 나를 이해하고 해석할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했다. 나 같은 사람을 주위에서 찾는 것도 어려웠다. 다른 동성애자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확고하게 동성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양성애자라고 해도 남자, 여자를 골고루(?) 좋아한 경험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이성애 규범성에는 분명 비껴나 있지만 그렇다고 퀴어라고 말하기에 그것을 증명할 경험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부족한 실전 경험을 대신하고자 인터넷에서 성소수자와 관련한 무수한 용어를 검색하며 나는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퀴어 사용자가 많은 SNS를 보면 대부분 프로필에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적어두었다. 시스젠더 헤테로 로맨틱 팬섹슈얼… 젠더플렉시블… 그레이 로맨틱… 에이섹슈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온갖 언어들이 넘쳐났다. 내게도 이런 라벨(label) 같은 언어가 절실했다. 라벨이 내 몸에 딱 붙으면, 그때야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할 길이 열릴 것 같았다. 나를 알고자 하는 궁금증만큼이나 소속감(‘나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구나’)을 느끼고 싶었다. 라벨을 붙여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toran2

2025년 대전퀴어문화축제

 

스물세 살 때, 드디어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보지런(그곳이 부지런하다는 뜻으로 내가 만든 단어)하게’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경험을 쌓아나갔다. 점차 데이터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나의 정체성과 라벨을 둘러싼 고민은 깊어질 뿐이었다. 몇 년 내내 레즈비언 관계만 맺어오면서, ‘사실 나는 레즈비언이었을까?’ 자문했다. 그러나 상대가 지정 성별 여성이라 해도 그들이 자신을 여성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이 관계를 레즈비언 관계라 할 수 있을까? 다시 지정 성별 남성도 만났다. 그럼 나는 헤테로인가? 누군가는 여자와 만난 것은 잠깐의 일탈일 뿐이라며 날 헤테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뼈레즈(뼛속까지 레즈비언)’들에게 나는 ‘순수한’ 레즈비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지정 성별 남성도 자신을 남성이라 여기지 않기도 했다. 더불어 현재 이성애 연애를 한다고 해서 우리 엄마가 바라듯 내가 영원토록 남자만 좋아하는 ‘전환 치료’에 성공한 것도 아니다. 혹자는 그러면 ‘양성애자’가 적절하지 않냐고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헤테로부터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까지 ‘양성’을 넘어 다양했다. 이걸 두고 상대가 남성 혹은 여성이라서 끌렸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그렇다면 나는 팬섹슈얼? 경험이 쌓여도, 여전히 나에게 적절한 라벨이 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정상성의 언어로든, 퀴어와 관련된 언어로든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내가 참 이상해 보였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한동안은 간단히 ‘양성애자’로 날 소개하곤 했다. 사람들(특히 시스젠더 이성애자)은 자신이 모르는 대상을 카테고리에 집어넣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을 편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내게 라벨을 붙여 앞서 말한 복잡한 고민을 회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양성애자라는 라벨도 나의 성 지향성을 완전히 대변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 라벨이 또 다른 낙인이나 편견으로 작용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날 양성애자라고 소개하면, 어떤 사람들은 편협한 ‘바이’ 상자에 날 집어넣어 함부로 지레짐작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란님은 그래도 바이니까 남자 만날 수 있잖아요. 레즈 아니잖아요. 언젠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잖아요.” “네가 왜 레즈 모임에 와. 남자도 만났으면서.” “패션 퀴어 아니야?”, “난 네가 레즈비언 이야기하고 그래서 여자만 만나는 줄 알았어.”

레즈비언에게는 남자 포기 못 하는 얘, 결국 남자랑 결혼해서 사회에 적응 잘하고 살 얘, 이성애자 남자들에게는 신기하고 궁금한 얘, 쓰리섬 시켜보고 싶은 얘, 누군가에게는 퀴어 흉내 내는 얘. 결론. 이도 저도 끼지 못하고 쉽게 배척당하는 ‘이상한 얘’.

이런 말과 시선은 얼토당토않지만, 서서히 나를 위축시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양성애자가 아닌 새로운 라벨을 찾아야 하는 걸까?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교과서를 찾아 헤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를 적확한 단어로 명명하려는 시도는 누군가에게,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나를 어떤 틀로 분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존재로 해명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도 내 정체성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남에게 설명하고 인정받겠는가. 어느 순간 내가 레즈인지, 헤테로인지, 바이섹슈얼인지, 팬섹슈얼인지…. 답도 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 의미 없이 느껴졌다. 모르겠다. 알 게 뭐람. 정체성을 위한 언어를 끊임없이 나누고 또 나누어서 빈틈없이 명명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서? 퀴어를 말하는 무수한 단어들은 엉킨 실타래와 같았고, 나는 그걸 풀어나가기는커녕 나 자신도 그 실타래에 휘감겨버렸다.

 

toran3

2024년 제주퀴어프라이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떤 말로도 간편히 정의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이들로부터 실마리를 얻었다. ‘언어’라는 실을 뎅강 잘라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페미니즘, 퀴어 이론을 비롯한 대안적 관점은 특정 언어로 날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일깨워주었다. 언어는 우리 자체를 오롯이 표현할 수 없다.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분명한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가지는 중요성은 분명하다. 소수자, 즉, 이상한(queer) 이들을 나타내는 언어를 발굴하고 확산시키는 것도 유의미하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언어화가 중요한 자아 탐구이자 자기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퀴어를 위해 섬세하게 만들어진 언어들이 때로는 한 존재를 편협한 상자에 욱여넣기도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뿐만 아니라 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퀴어를 나타내는 언어를 더 다양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각각의 존재를 완전히 재현할 수는 없다. 한때 자신을 언어화할 수단을 찾지 못해 절규하던 내게 한 퀴어 지인이 일러주었다. “각자의 세계는 닮을 수는 있어도 일치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타인의 관점에서 설명되지 않는다고 자신을 부정할 필요는 없어요.”

섹슈얼리티 이론가 데이비드 핼퍼린에 따르면, 퀴어는 특정 위치나 의미에 기반하지 않으며, 정상적이고 지배적인 것과 떨어진 이상한 것이다. 퀴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정체성이다. 이제 나를 다르게 말해본다. 나는 퀴어다. 경계를 넘나들며, 나조차 나를 종잡을 수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색채를 가지고 예상할 수 없는 몸짓과 끌림을 경험하며, 다채로운 존재들과 소통한다. 나도 나의 퀴어함을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있으니, 타인의 판단은 늘 성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 또한 판단의 경솔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보기에 남성과 여성으로 보이는 연인을 보고 시스젠더 이성애자라고 전제하고 함부로 말한 적이 있다. 편협한 상자 때문에 힘겨워하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왜 모두 퀴어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을 좁은 상자 안에 가두려 할까? 언뜻 보기에 정확히 명명된 상자 안에 있으면 잠깐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내 답답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박물관에 전시된 화석이 아니다. 비슷해 보여도 모두 다르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그러니 언어—설사 그것이 퀴어를 위한 것이어도—에 쉽게 포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만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 세계를 탐구하고 긍정할 수 있다. 한정된 언어가 나의 광활한 세계를 촘촘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이상함(queerness)에서 출발하여 나만의 고유한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면 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언어로부터의 자유로움을 편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저마다 다른 ‘세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부족할 때 나만의 존재 방식을 찾아가는 일은 외롭고 힘들 수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연대해야 할 이유가 된다. 어떤 언어로 설명할 수 없어도 우리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나조차 나를 모른다’는 겸손함으로 타인의 퀴어한 세계를 받아들이자. 우리 모두 서로의 세계에 대해서는 완전한 이방인이니까. 설사 누군가가 나와 지나치게 다르다 하더라도, 그의 세계를 경청하며 환대로 맞이해야 한다. 그들의 세계는 진실로 존재하니까. 그 누구도 그 세계를 무시하고, 혐오하고, 차별할 권리는 없다. 이러한 존중의 자세는 모두의 세계를 긍정하고 수용할 의무로 이어질 것이다.

‘퀴어’를 둘러싼 다사다난했던 여정을 마치고, 이제 난 ‘무한한’ 나를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유한한’ 언어의 상자를 박차고 나오려 한다. 타인도 제멋대로 상자에 넣어 판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유하기에 특별하고 소중하다. 비로소 난 고민으로 얽힌 복잡한 실타래에서 빠져나와 애써 날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라벨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날 가뿐히 ‘퀴어’라고 소개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자신의 ‘퀴어함’을 긍정하며 프라이드 먼스를 만끽하기를 바란다!

추신: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스스로를 이것저것 다 잘 먹는 ‘잡식’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stockholm

2019년 스톡홀름 퀴어퍼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