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하(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1592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을 두고 조선-한국은 ‘임진왜란’, 일본은 ‘조선출병’ 또는 ‘문록의 역’ 이라고 축소해서 부른다. 어느 쪽이든 조선, 명, 일본 3개국이 휘말려 7년이나 지속했으며 중국 대륙의 왕조교체와 일본의 정권교체를 불러온 이 엄청난 전쟁을 일컬을 만한 마땅한 이름이 아니다. 세계사적 사건으로 이 전쟁을 다루는 창작물을 보고 싶었는데 일본에서 이미 연재되고 있었다.
만화는 니체의 경구로 시작한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볼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곧이어 1945년(쇼와20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피어오르는 버섯 구름.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세계대전,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 오랜 세월에 걸쳐 전쟁에 돌진해 온 일본제국은 이곳에 저물었다. 총 323만명(청일~태평양전쟁 전사자 총합)의 희생자를 낳은 전쟁에 일본은 어째서 돌진해나간 것인가.
그것은 260년이라는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천하태평’을 이룬 에도 막부를 메이지 신정부가 무너뜨린 일로 시작됐다. 신정부는 부국강병을 국책으로 삼아 팽배한 ‘대륙 진출’이라는 야망의 선도자로서 그 사내를 군신으로서 부활시켰다. 그 사내가 일찍이 행한 대륙에의 침략전쟁을 신정부는 미화하여 초등학교의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대중에게는 가부키나 유행본을 통해 사내를 영웅으로서 숭상하였다. 그 사내는……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
만화는 임진왜란 비중이 크지만 정확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대기다.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진다. 임진왜란 장면에서 점프하여 전국시대 가난한 농민가정의 비참한 생활과 함께 ‘도요토미’라는 성이 없었던 시절의 히데요시의 학대받고 차별받던 삶을 조명한다. 이 경험이 출세에 대한 집착을 불렀으리라. 중세 일본의 잔혹함이 마치 토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전쟁광을 낳은 듯하고, 특히나 히데요시의 어머니 같은 전국시대 최하층 계층 여성들이 성을 팔며 살아가고 그 비참을 아무렇지않게 착취하는 모습은 ‘위안부’ 문제의 시작을 보는 듯하다. 전쟁이 정상인 시대의 산물이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세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고 오다 노부나가 밑에 들어갔다는 내용은 나오지만 어떻게 권력의 정점에 올랐는지 나오지 않는다. 우에스기 겐신 등을 상대로 한 통일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캐릭터나 심리를 보여주는데 주력하지 전쟁터의 활약이나 전투신은 거의 생략한다. 마치 무적핑크와 이리 작가의 <삼국지톡>처럼 전개한다. 그 이유는 이 만화가 서두 내레이션에서 밝힌 것처럼, 전쟁광 영웅 만드는 군담영웅소설의 ‘안티’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유명한 일화는 수록하면서도 반드시 ‘야지’를 놓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출세 후 옛 고향에 가서 어린시절 자신을 모욕주던 이를 벌하려 갔는데 당사자는 죽고 잡혀온 손자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꼭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방면하고 마을에 세금 면제까지 해 준다.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면서도 작은 말풍선으로 끝까지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임진왜란으로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이 조치는 취소됐다고. 전쟁은 사회 전체를 바꾸어놓는다는 점도 드러낸다
차별과 멸시가 낳은 상승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른다. 가족들이 노환으로, 병으로 떠나가면서 철저한 ‘현세주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현세에 대한 집착은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 그 집착이 어떻게 대외전쟁으로 향하게 됐는가.
만화 작가의 독특한 역사 해석이 있다. 이 만화는 혼노지의 변(오다 노부나가 암살 사건)을 다룬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 시리즈의 후편이다. 스토리 작가는 역사소설가인 아케치 켄자부로.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이라고 한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서유럽이 ‘신항로’를 개척하면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정책을 시작하던 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 등 서양 무기에 관심이 많고 일본에 온 서양 선교사들과도 적극 교류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 만화의 해석상으로 이 포르투갈 출신 선교사들은 오다 노부나가와 병영화된 일본을 앞잡이 삼아 중국을 침공하고 선교해 기독교 제국을 세울 작정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선교사들의 아시아 식민 계획에 이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음모를 알아챈 아케치 미츠히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중 후자 둘이서 음모를 꾸미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뒤집어씌웠다는 게 전편의 내용이라고 한다. 학계에서 인정하는 내용은 아니고 작가의 조상님 올려치기가 너무 심하다는 평가를 듣는다고도 한다.
다시 만화로 돌아가면 전편의 연장선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보다는 똑똑한 인물이었다. 서양 선교사들의 음모를 간파하고 추방시켰다. 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자행하던 노예무역도 비로소 중단됐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일본을 앞잡이로 내세워 하려던 아시아 지배의 야망을 본인이 직접 실현하려고 한다.
데마르카시온은 스페인어로 지배 영역. 신항로 개척 뒤 교황청 중재 하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협정을 맺고 아시아를 데마르카시온으로 삼았다면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내가 스페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라. 당대 최강의 제국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을 깨운 것이다. 특히 후계자가 태어나자 야망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그 후계자가 어린 나이에 죽자 마치 생의 의미를 유일하게 여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처럼 불꽃은 광기처럼 확산한다.
임진왜란이란, 전쟁의 시대를 거쳐 정점에 오른 한 인간의 광기인 동시에, 폭력의 시대가 전달해준 에너지의 결과랄까. 중세 일본의 잔혹함과 더불어 유럽인들이 세계를 헤집으며 벌인 폭력과 광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광기를 일깨웠다고 묘사된다.
폭력의 피해자는 조선이다. 작가는 조선에 대해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그려낸다.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이 선조에게 다르게 보고하고 이는 당파적 차이도 있었다고 하지만 나름의 보고 근거가 있었다.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는 것 치고 군사조달 이런 낌새는 잘 안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겨우 전쟁을 멈춘 일본에서도 딱히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에 전함건조, 군비조달 등을 소극적으로 했다고 한다. 전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리하여 선조는 “당장은 처들어오지 않겠지만 언젠가 처들어올 것이라고 방비를 해두자”고 했다. 그 결과에 대한 서술이 섬뜩하다. 조선은 당파에 갈려 현실을 올바로 보지 못했고, 일본은 “누가 이 전쟁을 말려주겠지”라고 남에게 떠넘기다가 결국 전쟁을 맞았다고.
작가의 반군담소설에 대한 태도는 전쟁 묘사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장군들의 무훈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을 반대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인들이 정명가도(명을 칠테니 길을 빌려달라) 에 동의만 한다면 왜 동의를 안 해줘서…”라며 전쟁에 비참해하면서도 그 책임을 조선에 떠넘기고, 가토 기요마사는 그런 고니시 부대야말로 가장 많은 학살을 저지른 부대라며 위선을 비웃으며, 본인은 죄책감 없는 학살을 해 나간다. 난세에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작가는 2005년 부산 지하철 수영역 공사 과정에서 임진왜란 사망자 유골이 대거 발굴됐다며 이 문제가 현재적인 문제라는 뉘앙스를 띄면서, 잔혹한 학살의 장면을 그려나간다.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니까.
임진왜란을 누구도 원치 않았던 전쟁이자 근대 일본 폭주의 시원으로 보기에, 이 만화 최고 영웅은 이순신이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이순신 창작물 가운데 이 만화에서의 이순신이 가장 위대하다. 세계사적 전쟁의 향배를 바꾼 인물이니까. 이순신은 5권의 표지로 아주 품위있게 그려졌으며 본격적인 활약은 6권에서부터 나온다. 역시 반군담소설답게 전투씬을 화려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용신 이순신이 도철(모든 걸 잡아먹는 괴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저지했다고 말할 정도다. 곽재우 등 의병장도 등장한다.

이순신의 얼굴이 등장하는 5권(왼쪽)과 김충선의 얼굴이 등장하는 6권(오른쪽) 표지
6권 표지 인물은 사야가로 알려진 항왜 김충선이다. 그 또한 작품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조선 도공을 납치하면서 마음의 짐덩이가 되는 도공들의 가족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상관을 사살하며 투항한 인물이다. 가면을 벗고 학살당할뻔한 민간인에게 미안하다고 이젠 괜찮을 거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김충선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이 만화는 전국시대 용병집단 수장설을 택했다. 조선에 오기 전부터 잔혹하게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조선은 처음에는 항왜를 족족 처형했지만 명의 설득으로 받아들였다고 언급한다.
오타 줄리아 이야기가 번외편으로 나온다. 조선에서 전쟁포로가 돼 고니시 유키나가의 양녀가 됐고 후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이 됐으며, 조선-에도막부 수교에도 나름 공헌하고, 이후에도 막부의 탄압에도 배교하지 않고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아간 여인이다. 전쟁의 비극성과 함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 민초의 표상이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번역 출간된 이야기.
2000년대 침체가 계속되면서 일본인 사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성공을 위해 돌진하는 잔혹한 인물’에 대한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고는 들었는데 2021년이 되니 작정하고 ‘평화 에도시대를 타도한 메이지 정부가 나빴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판하겠습니다’라는 만화가 나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 280만부 이상 팔렸다. 한국에는 올해 번역 출간돼 6권까지 나왔으며 전자책으로도 출간됐다. 아직 연재 중이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진다는데, 천황의 결단으로 아베 신조 내각의 개헌에 한 방 먹이고 탄생한 레이와 시대에, 이런 만화도 나왔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림 작가 토도 유타카는 1999년 데뷔했다. 글이나 그림작가 모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일본에서 진보적인 이야기를 가장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1990년대 창작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다. 당신들은 이 생각을 끝까지 잃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한편으로 한국의 국력이 성장한 것이 이 만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은 한국 취재 후기도 단행본에 담았으며 한국 쪽 학술연구 자료도 만화에 인용했다.
자본주의란 임진왜란 시대에 탄생했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데려간 노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설탕, 커피 플랜테이션 작물을 심어 거둔 막대한 이익과 아메리카 은광에서 쏟아져나온 막대한 은이 초기 ‘자본’이 돼 생겨났다고 한다. 노예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들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인종주의가 발명됐고, 노예를 동원한 단작 경작과 그걸 유지하기 위해 이식한 시스템은 식민지의 정치, 경제, 무역구조, 생태환경을 돌이키기 어렵게 일그러뜨렸다. ‘자본주의-인종주의-제국주의-기후위기 비긴즈’라고 해야 할까.
동아시아는 19세기까지는 이런 조류 속에서 지역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눈을 뜬 뒤에는 같은 아시아인끼리 자행하는 피바람이 불었다. 이 만화는 임진왜란도 그런 ‘잔혹한 역사의 비긴즈’ 사슬의 한 고리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몇 군데 비약 논란도 있지만 세계사적 사건으로 임진왜란을 본다면, 이 사건은 ‘대항해시대’가 가져온 폭력과 광기의 세계사와 접목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전쟁 중이라 다들 까먹었지만 기후 차원에서 그 문명이 조종을 고하고 있고 인종주의적 갈등이 폭발하며 자유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니 우리는 그 500년의 자장 속에서 살고 있다.
일본 내부로 치면 태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조선 출병’을 원하지 않았다. “누가 말려주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막지 못했으며, 조선은 당쟁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일 시민사회가 겪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을 훅 찔렀다. 그래도 한국인으로서 조금은 뭉클했다. 한국의 과거사 문제제기는 마땅히 이렇게 묻는 것이어야 했고 누군가는 그렇게 물었지만 한국 사회의 주류적 목소리는 아니었다. “전쟁을 부인하는 일본, 전쟁에 침묵하는 일본, 전쟁을 미화하는 일본, 전쟁을 반성하는 일본, 전쟁을 거부하는 일본. 어느 쪽이 일본인 자신에게 좋은 나라인가?” 그래도 이 만화가 대답을 해 준 것 같았다. 이것이 한일관계에만 적용되겠는가.
사실은 그쳐 본 적이 없는 전쟁의 시대가 또 폭주하는데 유일한 위안거리는 전쟁에 대한 기억과 연구가 많이 쌓여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경험만큼이나 반전의 사고나 반전운동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많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한다. 이 만화가 알려주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누가 말려주겠지”라는 태도만은 안 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런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 눈물나게 고맙다.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폭력과 팽창에 반대하는 눈으로 대항해시대와 임진왜란을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어찌 절망에 잠식당할 것인가. 희망은 순진함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와 치열함의 결과다. 언제나 우리가 최악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착각 바깥에 길이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파괴로 돈을 벌 것인가, 민주주의에 연대할 것인가!
바레인, 이스라엘, 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인도네시아. 최루탄이나 물대포, 장봉(경찰봉)과 같은 한국산 시위진압무기를 수입한 국가들이며 무리한 시위진압으로 시민들이 죽고 다치며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국가들입니다. 이 나라들에서 사용된 한국산 시위진압무기 과연 우리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이한열과 김주열과 백남기를 기억하는 한국은, 최루탄에 숨진 바레인의 열네 살 소년 알리 자와드 알셰이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전쟁없는세상은 2025년 한국산 시위진압무기 수출 저지 캠페인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50명의 정기후원인 함께해준다면 우리는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산 시위진압무기의 남용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피해사례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피해국가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분쟁중인 국가나 독재국가에 시위진압 무기를 수출하지 못하게 막는 법안을 제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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