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녹색당원)
퇴근길, 집으로 가는 중이다.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여기서 톡, 저기서 톡, 튀어나온다. 저 집 지붕에는 늘 ‘팬텀이’가 엎드려 있고, 저기 저 화단에는 늘 ‘긴코’가 풀줄기에 이마를 비비고 있다. 집 근처에 당도하면 바위에 ‘왕큰이’와 ‘유심이’가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관문 가까이 가니 지붕에 있던 ‘숨숨이’가 화들짝 놀라 풀숲으로 사라진다.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마주치는 동네, 서울 낙산공원 꼭대기로 이사를 온 지 꼬박 일 년이 되었다.

집 근처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이웃, 왕큰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전, 꼭 지나치는 곳은 창신동이다. 종로구의 동대문역과 동묘앞역을 가로지르는 동네이다. 낙산공원 꼭대기와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오래된 노포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고 네팔어 또는 베트남어로 쓰인 간판과 안내문이 자주보인다. 작년 8월 한여름의 이사를 마치고 조금씩 적응을 하며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처음 무언가 다르다고 느낀 건 추석연휴였다. 연휴가 시작되던 날 지하철 동묘앞역에서 나오고 있었다. 귀성길에 오른 한국인들이 빠진 지하철을 서남아시아계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이십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저마다 꼬까옷을 입고 지하철 출입구를 가득 메웠다. 계단 맨 앞의 사람이 뒤를 돌아 계단 맨 뒤의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등 서로서로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인근에서 파티가 있어 보였다.

옛날부터 단골이었던 동대문 네팔/인도 요리 전문점의 센스. 이사를 오기 전까지 창신동은 나에게 네팔커리맛집이 있는 동네였다.
동묘앞역에서 나오니 긴 연휴로 불 꺼진 가게들 사이에서 북새통을 이루는 식당 몇개가 보였다. 네팔/인도요리 음식점이다. 창신동 일대는 ‘네팔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네팔 출신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보내는 연휴, 좀더 본격적으로 창신동에서 모이기로 했나보다. 비밀파티를 훔쳐본 듯한 기분이 재미있어서 미소를 짓다가 이내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리고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용산 미군기지 근처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는 길에서 이주민을 마주치는 경험이 사실 낯선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 등굣길에서 매일아침 조깅을 하는 미군을 보았고, 20대가 되어서는 해방촌 카페나 펍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눈인사를 하거나 “하이, 하우 아 유?”하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한국에서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 동네에서 오랜 시간 살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해방촌 길거리에서 “하이”하고 인사를 나눈 것으로 시작된 인연의 친구가 찍어줬던 사진. 사진 찍는 미국인이었다.
그 자부심이 유난히 시큼하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한 ‘다문화’는 그냥 미국인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원이나 유치원에 원어민교사로 취직이 가능한,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이, 하우 아 유?”라고 해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창신동에서 마주치는 이주민에게 한 번이라도 눈인사를 한 적이 있던가? 없었다. 나는 왜 어떤 이주민에게는 눈만 마주쳐도 환대의 인사를 건네고 어떤 이주민은 지하철 한 칸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아,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밖에 없었을까?
바로 나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외국인을 선별해온 마음이 해방촌과 창신동의 차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를 쓰는 화이트 칼라 이주노동자가 모이는 동네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핫플레이스가 되지만, 어떤 동네는 특정 문화권의 이주노동자가 모여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든다. 디아스포라들이 만든 안전한 공간에 나는 감히 비집고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섞일 수 있을까.
창신동에서 이웃과 눈이 마주쳤을 때 “너머스떼, 안녕하세요”를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집 근처 고양이들에게는 저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동네 사람들의 이름도 알고 싶다. 무엇보다, 나도 이들에게 동네 이웃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नमस्ते, तपाईंको पहिरन राम्रो छ। के तपाईं आज आफ्नो गृहनगरका मानिसहरूसँग पार्टी गर्दै हुनुहुन्छ? रमाइलो गर्नुहो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