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현 (다큐멘터리 감독)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실전에 투입한 지 433년이 지난 2025년 7월 8일, 대한민국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이 날을 ‘방위산업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 제정을 넘어, 방산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정부 의지가 담긴 상징적 조치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을 전 세계 방산 수출국 순위 9위에서 4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으며, 이는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노선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방 예산은 증액되었고, 방산은 ‘미래 산업’으로 호명되어 왔다. 과거 방산 수입국이었던 한국이 이제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서사는, 여전히 식민지 콤플렉스를 지닌 사회에 국가적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안성맞춤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제1회 방위산업의 날, 거북선은 공식 앰버서더가 되어 행사 깃발 속에서 당당히 펄럭이고 있었다. ‘거북선의 혼’을 K-방산의 상징으로 끌어오는 연출이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과연 장군께서 이를 기뻐하실지는 모르겠다. ‘국난극복의 영웅’, ‘민족 자존심’, ‘한국형 국방력의 원형’ 등 다양한 프레임이 덧씌워져 있지만, 그중 다수는 이순신 장군의 육성과 사유가 아니라, 현대 권력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다.
제1회 방위산업의 날 관련 행사는 7월 8일부터 12일까지 시민참여페스티발과 불꽃놀이, 그리고 에어쇼 등이 반포대교 인근 채빛섬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행사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입구에서는 직원이 “도장 5개를 찍으면 상품을 드립니다”라며 스탬프용 종이를 나눠줬다. 기왕 온 김에 나도 한 번 관람객처럼 체험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음압존> 코너에 가니, “방위산업의 날”, “거북선의 혼으로”, “K-방산의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해 구호를 외치면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데시벨 측정기의 76~80dB 사이를 요구했지만, 사실상 아무렇게나 외쳐도 도장은 찍어줬다.
‘정밀제동존’에서는 풀백카를 뒤로 당겨 78cm 지점에 정확히 도달해야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점프존, 계량존 등 다른 체험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미션은 ‘7월 8일’을 상징하는 숫자 ‘7’과 ‘8’에 맞춰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꼭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아도 도장은 찍어줬다. 정작 그 날이 왜 생겼고 무엇을 기념하는지, 무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도장을 다섯 개 다 받았기에 소정의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해가 지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한강 인근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일제히 감탄을 하고 촬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겉보기에 불꽃놀이는 그저 축제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군사 기술에 있다. 추진제, 기폭장치, 발사 각도 등은 미사일 기술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방위산업의 날’ 뽐내기 완벽한 행사이다. 전쟁의 기술이 만든 아름다움 앞에서 나 역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약 10여분간 진행된 불꽃놀이가 어떤 맥락에서 열리는지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는 듯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하는 거지?”라는 질문들이 오갔고, “대박 멋있다”는 감탄이 주를 이뤘다. 그러니까 이게 방위산업의 날 일환의 행사라는 것까지는 홍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날 본 행사중에 가장 인기가 없었던 행사는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했던 홍보성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그 다큐멘터리 속에서 오히려 이 날의 핵심 철학을 가장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제1회 방위산업의 날’이 적힌 노란 스카프를 한 여러 가족들이 무기 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무기공장의 구내식당 음식이 맛있어서 놀랐다는 여성, 제2회 방위산업의 날부터는 전 세계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무기 공장 직원, K2전차의 조립과정을 보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어린이가 등장한다. 어떤 무기 공장을 둘러 본 아버지는 “우리 아이가 여기서 일해도 되겠다”고 안전을 확신한다. 무기 공장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고들을 의식한 말처럼 들린다. 그들은 실제 관람객일까? 고용된 배우일까? 21세기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프로파간다 콘텐츠를 만들어 시민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위산업의 날 행사장 한복판에서 본 그 다큐멘터리는, 겉으로는 가족 친화적이고 안전하고 체계적인 산업의 미래를 말하지만, 사실은 전쟁을 일상으로, 무기를 일자리로, 산업을 애국으로 포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방위산업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유지되는 산업이며, 수출된 무기의 종착지가 ‘살상용’이라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국가적 자부심과 윤리적 침묵이 손을 맞잡을 때, 우리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방위산업의 날 홍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