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 글은 웹진 GG(Game Generation) 25호에 실린 글입니다. 

 

나는 평화활동가다. 반전 집회를 조직하고, 무기 산업을 비롯해 전쟁과 군사화에 자본을 투자해 이윤을 얻는 전쟁수혜활동을 비판하며, 한국이 분쟁 지역과 독재 국가에 무기 수출하는 것을 감시하고 실효성 있는 통제체제 도입을 요구한다.

한편 게이머로서 나는 전쟁 게임을 즐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서든어택> 같은 FPS(1인칭 슈팅 게임)부터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같은 RTS(실시간 전략 게임), <XCOM>, <팬저 코어> 같은 TBS(턴 전략 게임), <리스크>, <임페리얼> 같은 보드게임까지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이런 이중의 정체성이 어째서 나에게 도덕적 모순을 제기하지 않는지 설명해보겠다. ‘평화주의자는 게임에서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은 매체를 통해 재현되는 전쟁의 문제, 윤리와 당위의 문제, 현실과 가상이라는 구분의 문제 등 다양한 층위의 함의를 지닌다. 이 글은 게임과 전쟁, 폭력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 ‘폭력적인 게임’이란 무엇인가?
  • 폭력적인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폭력적·군사주의적으로 만드는가?
  • 폭력적인 게임이 플레이어의 양심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 무엇이 게임 속 폭력과 현실의 폭력을 구분하는가?

 

‘폭력적인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이 그 자체로 혐오표현이자 폭력인 경우도 있다. 미국의 극우단체 국민동맹(National Alliance)이 2002년에 발매한 FPS <인종청소>에서 플레이어는 네오나치 스킨헤드나 KKK 단원이 되어 흑인, 유대인, 라틴 아메리카인을 학살해야 한다. 이 조악한 게임은 피해자들을 조롱하듯 마틴 루터 킹의 날인 1월 21일에 출시됐으며, 백인우월주의 상징 숫자인 14.88달러[1]에 판매됐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폭력적인 게임’은 <인종청소>처럼 표현물로서 그 자체가 현실에서 정서적·문화적 폭력을 행사하는 게임이 아니라, 단지 매체로서 폭력을 묘사하거나 플레이어로 하여금 가상의 폭력 행위를 수행하게 하는 게임을 말한다.

이 두 범주가 칼 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자는 혐오 표현처럼 사회적·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집단이나 소수자를 표적으로 삼는다고 거칠게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게임에서 왜 ‘가상 살인’은 허용되고 ‘가상 소아성애’는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Luck(2009)의 설명과 맥을 같이 한다[2].

어떤 게임이 전쟁을 다루거나 ‘19금’이라는 이유만으로 플레이해서는 안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 같은 게임 심의 기구들은 게임의 전체 맥락을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폭력, 섹스, 마약, 도박 등의 표현 수위에 따라 등급을 결정한다.

일각에서는 특정 게임이 해롭기 때문에, 평화주의자든 아니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게임이 해롭다고 말하려면, 단지 폭력을 묘사한다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예컨대 그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폭력적이거나 군사주의적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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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 게임 플레이 영상 캡처

 

폭력적인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폭력적·군사주의적으로 만드는가?

게임과 폭력성의 관계를 둘러싼 많은 상반된 이론과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과 폭력 간의 연관성을 강하게 믿었던 이들이 진행한 초기 실험들은 여러 한계를 지녔으며, 문제를 보완한 후속 연구나 메타분석, 종단 연구들은 게임이 폭력에 영향을 준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3].

오히려 어떤 연구는 폭력적인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착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부도덕한 가상 행위[4]에 대한 죄책감이 도덕적 감수성의 향상과 나아가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5]. 게임이 이처럼 ‘윤리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디스 워 오브 마인>과 <프로스트펑크>가 있다. 두 게임은 각각 전쟁과 기후재난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윤리적 딜레마로 플레이어를 몰아붙인다.

한편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폭력적으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군사적 세계관을 내면화하는 데는 영향을 줄 수 있다. Martino(2012)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군사화된 게임의 전형으로 본다. ‘군사적 아비투스(military habitus)’의 형태로 군사화(“사람이나 사물이 점차 군대의 통제하에 놓이거나 군국주의 사상에 종속되는 단계적 과정”)를 촉진하고, 플레이어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쳐 전쟁 선호 정서를 조장한다는 것이다[6].

게임이 직접적으로 폭력성을 증가시키지 않더라도, 위계질서에 익숙해지게 만들거나, 군사적 수단의 사용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군국주의 선전 영화가 그렇듯, 일부 군사 게임도 폭력의 정상화(normalization)에 기여하고 교련 수업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펙 옵스: 더 라인>처럼 폭력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게임도 존재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케 하는 이 게임과 <콜 오브 듀티>를 구분 짓는 것은 플레이어에 의해 수행되거나 모니터와 스피커로 재현되는 가상 폭력의 수위가 아니라 맥락과 의도다. 군국주의 영화와 반전(反戰) 영화의 차이가 영상물 등급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덧붙여, 게임의 폭력성이나 유해성 논의는 대체로 FPS 내지 <배틀그라운드>, <GTA 5> 같은 TPS(3인칭 슈팅 게임)에 집중된다. 그러나 어쩌면 일선 병사로서 전투를 수행하는 FPS나 TPS보다, 병사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휘관의 시점에서 전쟁을 재현하는 RTS나 TBS가 더 ‘해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게임에 묘사된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재현되고 수행되는 맥락과 방식에 있다. 이것은 게임 플레이의 장단기적 영향에 대한 정량적 연구보다 게임 비평이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이 같은 비평은 게임의 장르 구분이나 등급 심의에 대한 판단을 넘어, 개발자의 의도부터 게임이 나온 사회적 배경까지 개별 게임의 맥락을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이다.

 

폭력적인 게임이 플레이어의 양심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한 동료 평화활동가는 20여 년 전 어느 날, FPS를 하다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과 두통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한 3D 멀미가 아니라, ‘병역거부자인 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표인 게임을 해도 되나?’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정신적 거부 반응이었다[7].

그렇다면 평화주의자는 <서든어택>, <배틀그라운드>, <스타크래프트> 같은 폭력적인 게임을 해서는 안 되는가? 앞의 질문이 사실과 진위 판단에 관한 것이라면, 이는 윤리와 당위에 관한 것이다. 특정 게임이 플레이어를 더 폭력적이고 군사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종청소>처럼 게임 자체가 폭력이 아닌 이상, 핵심은 게임 플레이가 개인의 윤리적 신념 내지 양심과 양립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2018년 12월, 대검찰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판단 지침을 하달했다. 이 지침에는 FPS 게임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선 검찰은 지침에 따라 기소장에 병역거부자의 FPS 이용 기록을 적시했고, 이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됐다.

2019년 6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서든어택> 등 FPS를 두 차례, 총 40여 분 이용한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게임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접속 횟수나 시간에 비춰 보면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이 진실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8].

그런데 바로 한 달 뒤인 2019년 7월, 대전지방법원은 다른 병역거부자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입영을 거부한 이후에도 폭력성 짙은 게임을 한 점 등에 비춰보면 종교적 신념이 깊다거나 확고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9].

FPS 이용 기록이 판결의 유일한 근거는 아니었겠지만, 판결문에도 적시된 것을 보면 양심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게임 이용 기록이 과연 개인의 신념을 부정할 수 있을까? 폭력적인 게임 플레이를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면 할 수 없는 폭력 행사에 준하는 행위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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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 썸네일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의 마음가짐이다

게임은 가상 매체지만, 다른 매체들과 구분되는 ‘행위성(agency)’을 특징으로 한다. 소설 속 살육을 읽는 것과,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해 게임 캐릭터를 죽이는 가상 폭력을 행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게임 속 행위의 최종적인 책임은 게임이 아닌 플레이어에게 있다. 이는 사형 집행을 소재로 한 실험 게임 <엑시큐션>이 제기하는 도덕적 문제와도 일치한다.

1992년작 영화 <토이즈>에 이런 장면이 있다. 형으로부터 장난감 회사를 물려받은 전직 군 장성 릴랜드 지보는 장난감을 개조해 무기를 만들려는 전쟁광이다. 그는 오락실에서 탱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며 적의 병력은 쏘지 않고 유엔 트럭들만 골라 파괴한다. 적의 탱크를 쏘면 300점, 헬리콥터를 쏘면 500점을 얻고, 유엔 트럭을 쏘면 1,000점이 감점되는데도 말이다.

이는 플레이어가 단순히 점수나 승리를 목표로 움직이는 자동 기계가 아니라, 자기 가치관에 따라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게임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며, 플레이를 통해 수용되는 상호작용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특정 게임이 통계적으로 폭력과 군사화를 유발하더라도, 그것은 게임에 내재된 속성이기보다 게임이 개별 플레이어에게 수용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면 평화주의자는 여전히 게임에서 총을 쏴선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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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즈>의 한 장면

 

게임 플레이의 가상성과 연극성

폭력적인 게임 플레이가 평화주의 신념에 모순되는가라는 질문은, 게임 플레이의 ‘가상성’보다 ‘연극성’에 주목해야 한다. FPS에서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나 NPC(비플레이어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가 폭력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가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가상 세계에서도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욕설을 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격투 스포츠나 BDSM 플레이는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이들을 게임과 같은 범주로 묶는 것이 연극성이다. 직접적·구조적 폭력이 해악인 이유는 그것이 누군가의 권리 실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무대(게임 공간)에서 배우(플레이어)들이 대본(합의된 규칙)에 따라 하는 연극(play)은 폭력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도 해치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으며, 거기에 동의한 채 참여한다.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 전쟁 당시 “어떤 베트콩도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누구도 알리가 직업적으로 사람을 때린다는 이유로 그의 전쟁 반대 신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게이머는 한정된 가상 공간에서 합의된 규칙에 따라 한 행위로 양심을 의심받아야 할까?

게임에서 적 캐릭터를 죽이며 느끼는 성취감은, 사격 선수가 과녁을 맞췄을 때 기뻐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폭력이나 폭력의 재현이 아니라, 난관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한 데 대한 반응이다. 폭력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맥락이다. 살인자 역의 배우나 권투 선수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듯, 플레이어는 죄가 없다.

게임에서의 폭력적인 행위가 현실 윤리의 배신은 아니다. 진정한 평화주의는 현실의 전쟁과 폭력을 멈추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가상의 체험은 오히려 그 고민을 더 깊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각주

[1] 14와 88은 각각 네오나치 은어로 “우리는 백인 민족의 존립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라는 슬로건을 뜻하는 ‘14단어’와 H가 알파벳의 8번째 글자라는 점에서 “히틀러 만세(Heil Hitler)”를 뜻하는 ‘HH’를 상징한다.
[2] Luck, M. (2009). The gamer’s dilemma: An analysis of the arguments for the moral distinction between virtual murder and virtual paedophilia. Ethics and Information Technology 11 (1):31-36.
[3] 유창석,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GG Vol. 14, 2023년 10월 10일.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906eddb-0772-48e4-b3d0-6256f4accd17
[4] 피실험자들은 <오퍼레이션 플래시포인트: 콜드 워 크라이시스>의 변형된 버전에서 테러리스트(실험군)와 유엔 평화유지군(대조군) 중 하나를 플레이했다.
[5] Grizzard, M.. et al. (2014), Being Bad in a Video Game Can Make Us Morally Sensitive,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2014 17:8, 499-504
[6] Martino, J. (2012). Video Games and the Militarisation of Society: Towards a Theoretical and Conceptual Framework. In: Hercheui, M.D., Whitehouse, D., McIver, W., Phahlamohlaka, J. (eds) ICT Critical Infrastructures and Society. HCC 2012. IFIP Advances in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vol 386. Springer, Berlin, Heidelberg.
[7] 이용석, 폭력 게임이 폭력적인 사람을 만드나요, 폭력적인 사람이 폭력 게임을 하나요?,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2022년 12월 8일.
http://www.withoutwar.org/?p=19647
[8] 한겨레, ‘살상게임’ 접속한 병역거부 여호와의 증인 신도 무죄, 2019년 6월 20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8621.html
[9] 세계일보,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FPS 게임을 해?…‘병역법 위반’, 2019년 7월 16일.
https://www.segye.com/newsView/2019071651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