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참여연대 활동가)

 

오랜만이야. 그간 잘 지냈냐는 평범한 인사는 못 건네겠다. 팔레스타인에서,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시시각각 지켜보는 너인 걸 아니까. 그치만 너와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안부를 묻고 싶어.

나는 마음 한편이 복잡한 채로 그럭저럭 살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회원과 시민들의 전화를 받는데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듣게 돼. 그럴 때마다 주로 하는 말은 “저희가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는 정중한 거절과 다른 기관 안내야.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지만 종종 마음이 무거울 때는 있어.

최근에 페이스북에 활동가 G가 올린 글 봤지? 참 아프게 읽었어. 가자 학살이 3년 가까이 이어지는 지금 더 많은 활동가를 향한 연대 요청 글 말야. 만약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사람이 공습으로 죽고, 굶주림으로 죽고 있다.”, “뭐라도 같이 해야 할 때 아니냐, 당신들이 당장 거리로 나가야 한다!”고 소리친다면 어땠을까.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고백하건대, 매 순간 이스라엘의 폭격과 공습으로 가자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먹고 마실 게 없어 굶주리는 현실이 이제는 덜 아프게 느껴지는 것도 같아.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사상자 수와 현장 상황을 볼 때도 데이터 차트를 확인하듯 무뎌졌어. 그래도 마음은 불편하니까, 청소년들이 가자에 살고 있는 또래 친구들에게 연대의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캠페인을 기획하면 어떨까, 성공적인 구호 모금을 위한 시민참여 행사라도 열어볼지 고민했지만 실행은 못 했어. 기아 상황은 극심해지는 가운데 그나마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국내외 모금 운동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안일한 생각만 들었어. 모인 후원금으로 가자 사람들이 식료품을 사고, 해외 활동가들로부터 eSIM을 전달받아 세계와 연결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너에게 이런 이야길 전했다면 그것도 연대라고 답했을 것 같아. 우린 솔직한 말을 주고받을 만큼 친하지는 않으니까.

난 아직도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사람처럼 이전 활동에 머무르는 것도 같고, 때로는 지금 있는 이 모든 걸 내려놓고 싶기도 해. 그럴 때마다 스스로한테 평화의 인사를 건네어. 평화 활동가가 되어 처음 배운 건 ‘평화의 인사를 드린다’는 인사였는데 그 다정한 인사말이 참 좋았었거든. 분쟁과 학살 상황에 대해 발언할 땐 부적절하다는 피드백도 받았지만, 무엇보다 평화를 요구하는 마음이 담긴 인사라고 생각했어.

지난 팔레스타인 집회에서 가자 사람의 음성 메시지를 들었어. 평화를 전한다는 첫인사와 함께 가자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가자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고, 계속 시위하고 계속 진실을 알리고 이 집단학살을 멈추라고 외쳐달라는 호소를 자꾸만 생각하게 돼.

평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평화의 마음을 잃지 않는 심정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요즘 다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살해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고 있어. 최근 가자 상황을 알리기 위해 활동하다 이스라엘에 의해 표적 살해된 언론인 아나스 앗-샤리프를 비롯해 하루하루 존재하면서 저항해 온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마음으로 죽음에 대비했는지 곱씹어보며 읽고 있어. 평화와 연대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하듯 말야.

되찾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가자의 동료들과 인사 나눌 날을 기다리며,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존엄, 해방을 원하는 너와 동료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ٱلسَّلَامُ عَلَيْكُم 앗살라무 알라이쿰
*아랍권에서 통용되는 인사말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2025년 여름
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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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표지 사진: 2023.11.17.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1달 동안 1만 개 넘는 우주가 사라졌다”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 ⓒ박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