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연(활동가)

 

후기를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가서 너무 열심히 논 탓에 매일 쓰던 일기도 빼먹어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다행히 잘 정리된 후기는 이미 다른 분이 써주셨으니, 나는 마음 가볍게 내게 깊이 남은 몇 가지를 짚어본다.

일단, 너무 재밌게 놀아서 프로그램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전제조건이 세 가지가 숨어 있다.

첫째, 나는 평화캠프에 처음 참여했고, 용석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용석도 그 전에 한 번밖에 본 적 없다.)

둘째, 발을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셋째, ‘내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1년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고려하여 다르게 말하면, 나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걷기가 힘들 정도로 다친 상태에, 나에게 1년 정도 불면을 선사한 고민을 끌어안고도 재밌게 놀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전쟁없는세상의 평화캠프를 알게 된 건 용석의 초대였다. 용석은 동행이 주관한 저연차 활동가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소진되지 않고 일하는 방법, 조직문화와 소통 방식을 고민하던 때였고 용석은 성심성의껏 들어주었다. 내가 옆에서 눈물콧물 다 뺄 동안 용석은 비폭력 트레이닝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평화캠프를 권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자신과 조직의 실패를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고 그걸 지지받을 수 있는 그곳은 어떤 곳일까? 솔직히 말해, 그냥 그랬으면(적당히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용석을 보면서 ‘흥! 내가 속한 곳들과 별로 다르지 않군’ 하고 생각하기)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젠장. 평화캠프는 나에게 희망과 돌봄을 건네주었다. 심지어 주제가 쿠데타였는데! 

평화캠프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언제 어디서나 누워서 참가해도 된다”는 공식 안내가 있었다. 보통 프로그램 중에 눕는 건 비협조의 의사표현으로 여겨지지 않던가? 늘 허리가 아프고 근육이 자주 굳어 언제나 불량한 자세로 사무처 회의에 참가하는 나에게는 너무 반가운 규칙이었다. 누워서 참가해도 된다니! 

또 다른 놀라운 규칙은 줌 쿠폰이었다. 줌 쿠폰은 각자가 할 수 있는 돌봄노동을 제공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는 쿠폰이다. 사소하게 반려 고양이 사진 보여주기부터 안마, 타로, 이야기 들어주기까지 다양했다. 발을 다쳐 움직이기 힘들었던 나는 이 규칙들의 최고 수혜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규칙들 말고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로가 어떤 상태인지 기억하고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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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윤석열의 치하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몸풀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참가자를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의 발목을 붙인 채로 결승점까지 먼저 간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나는 걷기 어려우니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적당히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 팀이 이리저리 시도해보다가 다 같이 털썩 주저앉은 채로 내게 손짓했다. 우리는 앉은 채로 발목을 붙이고 엉덩이로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겼다. 나는 “소수자에게 맞춘 제도가 가장 빠른 길이다! 민주주의와 평등의 승리다!” 같은 소리를 하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지난 탄핵광장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질문을 떠올렸다.

“때때로 다리를 절고 몸이 자주 아파도 탄핵광장에 있을 수 있을까? 아픈 몸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까?”

활동을 시작하면서 일이 급하니까, 심각하니까, 돈이 없으니까, 일손이 부족하니까, 우리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까, 라는 이유들로 이리저리 치일 때가 자주 있었다. 특히나 나는 경증 신체장애와 오랜 폭력으로 인해 PTSD를 진단받았기에 더 그랬다. 그래도 활동을 계속하고 싶었다. 일단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하던 질문들을 남들과 같이 고민할 수 있었으니까. 

계속 고민했다. 소진되지 않고, 돌봄노동이 동료들 사이에서도 순환이 가능하고, 맨날 내가 하는 일에게 실연당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체력을 쏟아부으며 민주주의를 뜨겁게 외치던 탄핵광장에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허리가 아픈 탓에 부스에서 오래 서 있지 못하고 행진에도 참여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광장을 다녀오면 언제나 심한 근육통으로 하루 혹은 이틀을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동료들의 짐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나는 정말 간절히 동료들과 함께 걷고, 함께 민주주의를 외치고 싶었다.

명확한 해답은 아직 없지만, 옆 사람과 엉덩이로 걷던 그 순간 작은 실마리를 발견했다. 돌봄과 평등.

평등은 민주주의와 쉽게 연결된다. 그러나 돌봄은 늘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군사주의와 폭력의 세계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것으로 여겨져 왔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지키는 가장 단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제도를 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때 돌봄은 제도 밖에서, 우리 삶의 가장 불안정한 순간을 지탱해낸다. 

옳은 일과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렇지만 때때로 우리는 누워야 한다. 지칠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냥. 

가자지구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뉴스에서는 방산주가 강세라고 떠들어 대고, 한국은 무기산업 강국이라 불리니, 평화로 가는 길은 아마 멀 것이다. 

우리는 오래 걸어야 한다. 그러니까, 언제든 어디에서든 잘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자. 그러면 끝이 안 보여도 계속 그리고 같이 걸을 수 있을 거다. 

P.S. 평화캠프가 너무 좋아서 전쟁없는세상 회원가입한 건 안 비밀! 여러분도 후원으로 함께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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