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기후팀)
독일은 세계 3위이자 유럽 최대의 산업 국가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전환과 기후 정책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군사 분야의 탄소배출 감축 노력과 배출량 데이터 보고도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그러나 군사 부문의 기후 투명성 부족이라는, 전 세계 공통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계도 분명하다.
국방 분야의 기후 정책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한국의 현실에서, 독일의 정책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참고할 기준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독일의 사례는 현행 글로벌 탄소배출 보고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군사 부문의 기후위기 책임을 가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국가 정책으로 국방부의 기후위기 대응 책임 명시
독일은 ‘기후보호법’, ‘기후행동계획 2050’, ‘기후 보호 프로그램 2030’ 등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 전략과 프레임워크를 갖추고 있다. 독일의 기후보호법은 2050년 기후 중립국(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35%, 2030년까지 55%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했다가, 2023년 개정을 통해 넷제로 달성 시점을 2045년으로 앞당기고 2030년 감축 목표를 1990년 수준 대비 65%로 강화하였다.
여기에 국방 분야의 역할과 책임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독일 연방 국방부(이하 국방부)의 2020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2030년까지 국방부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40%를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꽤 부담을 느꼈는지, 불과 3년 뒤인 2023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할 ‘로드맵’이 있다고 적어두고는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적극적인 감축 노력보다 탄소배출권 구매와 같은 배출량 상쇄(offset)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듯하지만, 국방부가 ‘안보’나 ‘기밀’을 이유로 책임에서 예외를 주장하지 않고 있는 태도는 한국 정부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비교적 양호한 국방 분야 기후 데이터의 투명성
독일 정부의 ‘통합 국가 에너지 및 기후 계획’에는 국방부 및 독일 연방군(Bundeswehr, 이하 독일군)이 주요 실행기관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독일군은 2017년에 군 시설의 물, 전력 등 에너지 공급을 최적화하기 위한 개념을 발표하고, 탄소 감축 모니터링 결과를 문서화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군용 연료 소비량 데이터는 2005년부터 기록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방부와 군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군 수송(육로, 항공, 해상) 및 군용 자산의 에너지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있다. 2022년 독일연방군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군 탄소배출량을 2008년부터 누적 보고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독일군의 2021년 탄소배출량은 총 171만 톤(tCO2e, 이하 ‘톤’)으로, 2008년(264만 톤) 대비 2/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중 군 시설에서 발생하는 고정 배출량이 93만 톤(54%), 군사 작전에서 발생하는 이동 배출량이 78만 톤(46%)이라고 보고되었다.
이는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은커녕 배출량 데이터도 수집하지 않고, 군사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연구 용역보고서조차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 국방부의 태도와 크게 대비된다.
군사산업 및 공급망의 탄소배출 보고
흔히 방위산업이라 부르는 군사산업, 즉 무기와 군사장비 및 군수품의 생산, 제조,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군사 배출량 보고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기후보호법 및 국가 정책 프레임워크의 영향 때문인지, 독일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군수/방산기업들은 독일 내 탄소배출량 자료를 일부나마 공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내 사업규모 5대 군사기업인 에어버스(Airbus), 라인메탈(Rheinmetall), 탈레스(Thales), 레이시온(RTX),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이 보고한 2019년 탄소배출량 총합이 약 21만 8천 톤에 이르며, 총 24,500명에 달하는 직원 1인당 탄소배출량은 약 8.9톤 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한계 – 여전한 군사분야 배출량 보고 격차 문제
독일의 경우에서도, 현행 배출량 보고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는 뚜렷하다. 군사분야 탄소배출량 연구 기구 ‘The Military Emissions Gap’은 독일의 군사 배출량 보고에 대해 “데이터 접근성은 양호(Data accessibility score: Fair)”한 편이지만 “배출량 보고 격차는 심각하다(Significant gap in reporting)”고 평가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보고된 국가 보고서(NIR)에 따르면 2021년 독일의 군사부문 배출량은 고정 배출량(1A5a) 46만 6천 톤과 이동 배출량(1A5b) 51만 9천 톤를 합쳐 98만 5천 톤이다. 군사 작전 배출량에 해당하는 이동 배출량을 따로 보고했다는 점에서 ‘기밀 문제’를 이유로 전혀 보고하지 않은 프랑스의 사례에 비하면 한결 투명성이 나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군사 배출량 보고의 격차 문제는 여전하다. 독일 연방군의 2022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2021년 탄소배출량을 171만 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유엔에 보고된 배출량의 1.7배가 넘는다. 나토(NATO) 및 유엔평화유지군과 같은 국제 임무 수행시의 배출량이 누락되거나 다른 항목으로 보고된 때문으로 추정된다.
군사 공급망 즉 군사 장비 및 소비재의 생산과 보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 국내에서는 군사 기업들이 어느 정도 자체 탄소배출량을 공개하고 있지만, 국가 보고서의 공식 데이터에서는 누락된다. 때문에 무기산업을 포함한 군사 분야 전체가 얼마나 기후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는지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다.
결론 – 우리가 해야 할 일
기후 정책과 탄소배출량 보고에서 지금까지 가장 선진적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사실은 명확하다.
첫째, 국방부와 군이 군방 분야가 기후위기의 책임에서 예외가 아님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축 목표와 실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탄소배출량 데이터와 감축 노력을 투명하게 보고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둘째, 민간 군사산업 영역에도 탄소배출량 보고와 감축 책임을 부여하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감시해야 한다. 한국군의 군사 공급망 전체에 대한 탄소배출량 파악과 모니터링이 시급하다.
셋째, 현행 글로벌 탄소배출량 보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군사 부문의 기후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기밀 유지’에 가려 기후위기의 거대한 배출원을 파악할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